'원조 대도' 김일권, 루를 훔치는 도둑은 착한 도둑?[타이거즈 열전]

[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야구는 득점을 해야 이기는 스포츠다. 투수가 잘 던져도 타자가 안타를 치든 홈런을 치든 반드시 1루를 지나 2루, 3루를 거쳐서 홈플레이트를 밟아야 득점이 된다. 주루를 하지 않는다면 야구에서 이길 수 없다. 그만큼 홈에서 시작해서 홈에서 끝을 내는 것이 야구라는 스포츠다. 루상에 있는 주자가 다음 베이스로 이동을 하는 것은 득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렇기에 루를 훔치는 도루(盜壘)는 야구를 보는 재미를 극대화 시키는 주루 작전 중 하나다.
도둑질은 다 나빠도 '루'를 훔치는 도둑은 착한 도둑이라고 하지 않나. 성공만 하면 안타가 2루타가 되고 더 나아가서는 3루타에 이어 득점이 된다. 타격을 하지 않아도 득점을 따내는 방법이다. 그리고 KBO리그에서 '도루' 하면 빠지지 않은 인물이 있다. 타이거즈가 최고의 팀으로 불렸던 이유는 공수뿐 아니라 주루마저도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를 보유했기 때문이다. 바로 '원조 대도(大盜)' 김일권이다.

타이거즈 원년 멤버로 합류한 원조 '도루왕' 김일권
1956년 군산 토박이다. 군산남중, 군산상고를 거쳐 한양대를 나왔다. 역전의 명수라 불렸던 군산상고 유격수로 뛰면서 일찌감치 이름을 알렸다.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부산고를 상대로 9회말 2사에 역전 우승을 이끌었던 주역이었고 1973년에는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실업야구 상업은행에 잠깐 몸을 담았다가 한양대에 진학했다. 1977년 니카라과에서 열린 야구 월드컵에 국가대표로 뛰었고 1982년 프로야구가 생기자 해태 타이거즈의 원년 멤버로 합류했다.
첫 시즌부터 날아다녔다. 75경기에 나와 282타수 76안타 타율2할7푼을 기록했다. 중요한 것은 도루다. 모두 53개의 루를 훔치면서 원년 도루왕 타이틀을 따냈다. 주로 1번 타자로 나왔지만 홈런은 11개나 쳤다. 발도 빠르지만 장타력도 갖추고 있는 '호타준족'의 원조이기도 했다. 두 번째 시즌이었던 1983년에도 96경기에 나와 374타수 103안타 타율2할7푼5리 26타점 6홈런 48도루를 기록하며 2년 연속 도루왕에 올랐다. 팀도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따내면서 선수로는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하지만 주동자로 몰렸던 불고기 화형식 사건을 비롯, 본인의 의도와 달리 구단과 사이가 틀어지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렇게 맞이한 1984시즌은 성적이 급감했다. 하지만 발은 죽지 않았다. 모두 62경기에 나와 41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3년 연속 도루왕 타이틀을 지켜냈다. 1985시즌에는 다시금 상승세를 기록했지만 도루는 39개에 그쳤다. 그리고 MBC 김재박의 50도루에 밀려 2위로 밀려났다. 그리고 1986년 OB에서 한대화가 트레이드로 오면서 김일권의 입지는 본격적으로 좁아졌다. 이순철이 3루에 있다가 한대화에 자리를 내주고 외야로 왔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했을까. 보직을 바꾸자마자 공교롭게도 96경기 258타수 48안타 타율1할8푼6리로 추락했고 도루 역시 22개에 그쳤다. 그리고 1987년에는 40안타 16도루를 남기고 팀을 떠나게 됐다.
2년 연속 부진한 성적을 이유로 태평양으로 트레이드가 됐다. 절치부심했다. 1988년 89경기 309타수 93안타 타율3할1리 26도루를 기록했고 1989시즌에는 113경기 383타수 100안타 타율2할6푼1리, 그리고 무려 62개의 도루를 성공 시키며 다시금 도루왕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 1990시즌도 48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도루왕에 올랐다. 그리고 1991년 잠시 LG에 있다가 은퇴했다. 프로에서 10시즌을 뛰며 많은 기록을 남겼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 첫 홈스틸의 주인공이기도 했고, 1982년 골든글러브 외야수로 뽑혔다. 1989년에는 첫 300도루 고지를 넘어서기도 했다. 통산 다섯 번의 도루왕을 따내면서 363개의 도루를 완성했다. 이순철, 서정환, 이종범, 이용규 등 도루에 능했던 여러 선수들이 타이거즈에 있었지만 누가 뭐래도 원조는 김일권이었다.

1972년 역전의 군산상고 명승부, 그 중심에 있던 김일권
군산 토박이였던 김일권은 몸집은 작았지만 누구보다 빨랐고 야구 감각도 뛰어났다. 군산남초등학교에서 야구를 하다가 특기생으로 군산남중에 입학, 이어 군산상고로 진학했다. 혹자는 김일권이 가장 빛났던 시기를 군산상고 시절이라 말한다. 2학년 때부터 1번 타자 겸 유격수로 뛰면서 주전으로 활약했고 타격과 주루, 모든 부분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줬다. 아직도 고교 야구 최고의 팀을 꼽으라고 한다면 빠지지 않는 팀이 바로 1972년 군산상고다. 역전의 명수라는 타이틀도 여기서 시작했다. 최관수 감독이 이끌었던 군산상고는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야구 명문이었던 부산고와 만났다. 영호남의 맞대결, 그야말로 자존심 싸움이었다. 당시 군산상고에는 김봉연, 김준환이 있었고 김일권도 주역 중 한 명이었다.
초반에는 막상막하의 경기력을 펼치다가 8회 부산고가 대거 3득점에 성공했다. 그렇게 9회말 마지막 공격 전까지 군산상고는 1-4로 밀리고 있었다. 아웃카운트 3개면 끝이다. 모두가 질 것이라 생각했고 군산상고의 돌풍도 끝인듯 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만 살아서 나가면 된다며 응원하고 격려했다. 포기란 없었다. 선두타자 김우근이 나와서 안타를 쳐내며 경기를 흔들기 시작했다. 부산고 마운드에 있던 편기철의 제구가 틀어지면서 고병석과 송상복이 볼넷으로 출루, 만루 기회를 얻어냈다.
그렇게 만루에서 김일권이 타석에 들어섰다. 빠른 발이 주특기였지만 김일권은 타석에서 공을 고르는 눈도 탁월했다. 참고 참다가 날아온 공이 몸에 맞았다. 만루에서 밀어내기 사구로 출루, 1-4에서 2-4가 됐다. 이게 시작이었다. 이어 나온 좌타 양기탁이 적시타를 쳐내며 2-4에서 4-4가 됐다. 동점, 그렇게 1, 2루에서 3번 김준환이 안타를 쳐냈고 상대 부산고의 주루방해로 5-4로 군산상고가 역전 우승을 차지하게 됐다. 전설이라 불리는 이 경기로 고교 야구의 인기는 호남까지 퍼지며 절정에 이르렀고 지금의 프로야구의 토대를 닦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점점 옅어지는 도루의 가치, 도루는 할 필요가 없다?
도루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가장 익숙한 것은 주자가 1루에 있는 상황이다. 2루로 가야 팀에 도움이 된다. 점수 차가 적다면 상대 1루수가 수비 대신 1루 베이스에 붙어있다. 주자는 1루수의 눈치를 보면서 슬며시 1루에서 발을 뗀다. 서서히 리드 폭을 늘리면서 동시에 투수를 본다. 투수도 여러 유형이 있다. 왼손도 있고 오른손도 있다. 그리고 정통파, 사이드암, 그리고 잠수함도 있다. 자세를 낮추고 투수의 투구를 지켜본다.
동시에 포수도 본다. 공을 갑자기 빼거나 작전이 나오면 당할 수 있기에 레이더를 계속 작동 시킨다. 그리고 투수가 모션을 취한다. 도루에 능했던 한 선수는 "오른손 사이드암 투수의 왼쪽 무릎 끝이 살짝 구부러지는 순간, 그게 신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게 전력을 다해서 2루 베이스로 달려간다. 타이밍이 빠르든 늦든 일단 몸을 날리고 상대 야수의 미트를 피하면서 베이스를 터치한다. 도루가 완성이 되는 순간이다.
김일권은 이 모든 것에 능했다. 1982년 7월 18일 광주에서 그는 한 경기 최초로 5개의 도루를 성공했다. 그리고 7월 21일 인천에서 삼미와의 후기 1차전에서 4-4로 비기고 있던 2사 3루 상황에서 그는 단독으로 홈스틸을 성공시키며 팀의 5-4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당시 한 기사에서는 프로야구 최초로 단독 홈스틸에 성공한 그를 두고 "김일권은 발도 빠르지만 투수의 모션을 파악, 스타트를 빨리하는데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말 그대로 눈과 발로 뛰었던 선수였다.
프로 10년을 뛰며 통산 363도루, 그리고 364득점을 따냈다. 성공한 도루만큼 홈에 들어와서 득점을 따냈다는 이야기다. 스탯티즈를 보면 1982년 당시 김일권의 WAR은 3.12, 1983년은 3.05나 됐다.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라는 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중요한 것이 또 있다. 바로 삼진이다. 도루를 하려면 어떻게든 출루가 먼저다. 김일권은 삼진이 적은 타자다. 그것도 매우 적다. 1987년 규정타석 175타수를 뛰며 허용한 삼진이 딱 8개다. KBO리그 역대 한 시즌 최소 삼진이다. 통산으로 따져도 2817타수를 뛰면서 삼진 187개가 전부였다. 타석에서 어떻게든 죽지 않고 살아나갔고 도루로 루를 훔치고 득점을 해서 팀에 승리를 안겼다.
예전에 비해 도루의 가치는 낮다. 가장 큰 이유는 부상이다. 1루에서 2루의 거리는 27.43m다. 짧다면 짧은 거리를 놓고 1루에서 리드 폭을 길게 잡다가 타이밍을 잡는 순간, 폭발적으로 뛰어야 한다. 부상의 위험도가 높다. 상대 야수와의 충돌 위험은 당연하다. 주전 선수의 부상은 팀 전력의 가장 마이너스 요소이며 도루라는 하나의 주루 '작전'보다 한 경기라는 '전투' 그리고 한 시즌이라는 '전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단기전에서 도루의 중요성은 여전히 크다. 프로야구 감독 역시 선수를 구성하는 데 있어 경기 후반, 대수비와 더불어 발 빠른 대주자 요원을 엔트리에 꼭 포함 시키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1점이 아쉬운 상황에서 도루가 가능한 발 빠른 주자의 유무는 팀 승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실패하면 그 여파도 크지만 성공하면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올 수 있는 것이 도루다. 타이거즈가 강팀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경기의 흐름을 도루 하나로 완벽하게 가져올 수 있었던 김일권이라는 선수가 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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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 dkryuji@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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