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타임머신 ⑱ 2000년] 20세기 마지막 K리그, 주인은 조광래의 안양
(베스트 일레븐)
한창 뜨거워야 할 피치가 아직 차갑게 식어 있다. 코로나19가 이 땅의 모든 축구를 식힌 탓이다. 덩달아 우리들의 가슴도 달궈지지 않아 서늘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언제고 다시 뜨거워질 K리그를 기다리며, 과거 <베스트 일레븐(월간 축구)>이 전한 기사와 함께 지난 37번의 시즌을 돌아봤다. 큰 이슈부터 작은 기록까지 가능하면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당시의 생생함을 전달하기 위해 잡지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사진으로 옮겼다. 아직 숨죽이고 있는 K리그를 기다리는 데 ‘K리그 타임머신’이 작은 보탬이 됐으면 싶다. / 편집자 주


‘삼성 디지털 K-리그 2000’은 20세기 마지막 해, 2000년대 시작을 함께했다. 당시 <베스트 일레븐>에 칼럼을 기고했던 방송인 서기원 씨는 “5, 60년대 전쟁의 후유증과 가난으로 허덕일 때 축구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고 경제 재건에 몰두하던 70년대 축구는 또 우리의 희망이요, 위안이었다. 생활 안정을 이룬 80년대 프로축구의 등장으로 우리 축구도 기지개를 펴게 되었고 올림픽 개최로 우리 스포츠가 세계 무대에 당당히 서게 된 90년대 월드컵 개최권을 획득하는 등 활성기를 맞았다. 이제 대망의 2000년대, 화려하게 꽃을 피워야 할 우리 축구다”라며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 축구가 수행해야 할 의무와 과업들을 짚은 바 있다.
희망차게 밀레니엄 시대를 열어젖혔지만, 흥행 성적은 참패였다. 전년도 정규 리그에만 187만 1,002명을 불러 모았던 K리그는 2000년 정규 리그 기준 총 135만 1,363명으로 약 52만 명이 감소하며 침체됐다. IMF 외환위기 여파를 무시할 수 없었으나, 1998년과 1999년 동원 관중 수와 비교하면 한참 부족한 수치다. 흥행 상위권 수원 삼성만이 리그 평균 관중 1만 5,424명을 기록하며 자존심을 지켰다. 이러한 점에서는 새 시대로 향하는 K리그에 큰 과제가 주어졌다고 볼 수 있었다.



리그 시스템에는 약간의 손질이 가해졌다. 체력부담을 덜기 위해 1999년 시행했던 연장전 제도를 없앴다. 다만 반드시 승패를 가려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어, 연장전을 승부차기로 대신했다. 수·토·일요일 주 3회 경기 대신 관중들이 더 많이 경기장을 방문할 수 있도록 수요일과 일요일 주 2회 경기를 추진했다. 월드컵과 올림픽 등 국제대회가 2년 주기로 돌아가며 개최된 탓에 정규 리그 일정이 꼬이던 것을 고려, 3월 말 개막을 3월 중순 이전으로 앞당긴 것도 변화 중 하나다. 또 2군리그가 처음으로 시작되면서 유소년 육성의 기반을 다지게 된다.
개막 전 관심사는 ‘뉴 페이스’ 신인 선수들에게 쏠리기 마련이다. 그때도 그랬다. 2000시즌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발탁된 이들 중 훗날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인물로 성장할 재목들이 눈에 띈다. 전체 1순위로 호명된 안양 LG의 이영표, 대전 시티즌의 1순위로 꼽힌 이관우, 성남 일화가 지목한 김대의, 전남 드래곤즈의 첫 선택 김남일 등 쟁쟁한 신인들이 2000년 K리그에 발을 내디뎠다. 고교 선수로는 국가대표 김동진·조재진·최태욱 등이 지명됐다. <베스트 일레븐>은 2000년 1월 호에서 이영표·김대의·이관우를 ‘무서운 신인들’로 소개했는데, 연말 전북 현대 플레이메이커 양현정이 신인상을 가져간다.
한편 1996년 충청남도 천안시로 연고지를 이전했던 일화 천마가 성남으로 다시 한번 연고지를 옮기는 일이 생긴다. 이 시즌부터 천안 일화는 성남 일화로 K리그에 참가했다. 천안시대를 마무리하고 성남시대를 열어 명문구단으로 도약하겠다던 일화 천마는 그 약속대로 2001·2002·2003시즌 K리그 왕좌에 오르며 리그 사상 첫 3연패를 기록, K리그 대표 명문구단으로 입지를 다지게 된다.



당시 해설위원 3인방이 분석한 2000년 K리그 판도는 3강 4중 3약이었다. 3강에는 직전 시즌 국내 전관왕 수원 삼성을 비롯해 부천 SK와 안양 LG가 속했고, 포항 스틸러스·전남 드래곤즈·울산 현대·부산 대우가 4중, 성남 일화·전북 현대·대전 시티즌이 3약으로 꼽혔다. 이용수·신문선·강신우 해설위원은 각기 의견 차를 보이기는 했으나, 공통적으로 수원 우승을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수원 1강 체제 붕괴 후 리그 판도는 ‘대혼전’으로 흘렀고, 조광래 감독이 이끈 안양 LG가 챔피언을 차지했다. 당시 안양은 드래프트에서 최대어를 쏙쏙 골라잡는 수확으로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탈 고교급 최태욱·박용호·김동진, 올림픽 대표를 거친 이영표 등이 가세했다. 이들 모두 즉시 전력감으로 평가받으며 시즌 준비에 나섰다. 조광래 감독은 당시 인터뷰에서 ‘새천년 프로젝트’를 통해 1999년 하위권의 아쉬움을 덜어내겠다고 다짐했다. 유럽 키프로스에서 전지훈련을 진행하며 전술을 갈고 닦은 조 감독은 ‘컴퓨터 미드필더’의 본능과 감각을 감독직에 시나브로 녹여내고 있었다. 안양에 우승을 안긴 후 그에게 붙은 별명은 ‘컴퓨터 감독’이었다.


조광래의 안양은 지난 몇 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차츰 극복해나갔다. ‘독수리’ 최용수(現 FC 서울 감독)를 앞세운 공격진,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영입으로 보완한 중원, 이영표·무탐바·김도용 등이 자리한 수비진을 꾸려 완성도를 높였다. 또 골키퍼 보강을 위해 3월 샤리체프(신의손)가 귀화하며 상승세에 더욱 탄력을 받았다. 40세에 한국인이 된 신의손은 2000시즌 리그 24경기(시즌 32경기)를 뛰는 등 건재함을 과시했으며, 이후 네 시즌을 더 활약하며 안양의 부흥기를 주도했다.
정규 리그 우승을 차지한 안양은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훨훨 날았다. 안양은 부천 SK와 우승컵을 놓고 다퉜다. 11월 12일 챔피언 결정전 1차전은 안양의 4-1 대승으로 끝났다. 신의손이 전반 39분 부상으로 빠지게 됐는데, 교체 명단에 골키퍼가 없었다. 조광래 감독은 곧장 평소 판단력과 센스가 좋다고 여긴 미드필더 진순진에 골키퍼 장갑을 맡겨 위기를 탈출했다. 진순진의 센스와 수비진의 철벽 수비로 안양은 3점 차 승리를 거뒀다. 사흘 뒤 열린 2차전에선 1-1 무승부 뒤 승부차기 끝에 안양이 우승을 차지했다.


2000년의 히어로는 조광래 감독 지휘 아래 우승을 달성한 최용수였다. MVP 최용수는 변화무쌍한 조광래 기술 축구에서도 늘 선발 한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정규 리그 25경기에서 10득점 8도움을 기록했다. 최용수보다 두 골을 앞선 김도훈이 득점왕에 올랐고, 최용수의 많은 골을 어시스트한 안드레(前 대구 FC 감독)가 도움왕의 영광을 안았다. 신인상은 많은 재능을 제치고 전북 신예 양현정이 가져갔다.
많은 별들이 반짝인 2000시즌이었다. 하여 시즌 베스트 11에는 의외로 우승 팀 안양 선수 이름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GK 포지션에서 신의손, MF 부문의 안드레와 FW 부문의 최용수가 베스트 11에 선정됐을 뿐이다. 수비수로는 강철·이임생(이상 부천 SK), 김현수(성남 일화), 마시엘(전남 드래곤즈)가 뽑혔고, MF에는 안드레를 비롯해 신태용(성남 일화), 전경준(부천 SK), 데니스(수원 삼성)가 이름을 올렸다. FW에는 MVP 최용수와 득점왕 김도훈이 자리했다.



글=김유미 기자(ym425@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그래픽=박꽃송이·김주희(www.bestelev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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