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엄과 프린스라는 대우차의 새로운 명기

로얄 왕가는 1980년대 우리나라 고급 승용차 시장을 장악했다. 유럽 설계(GM V-플랫폼)를 바탕 삼은 품질도 인기에 한몫했지만, 대우차의 노력도 주효했다. 끊임없는 상품성 개선과 다양한 파생 모델로 빈틈없는 라인업을 구축했다. 대우차는 수익성 높은 자동차 시장의 노른자위를 차지한 채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급기야 1983년엔 달콤한 열매를 맺는다. 대우차는 1978년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 지분을 인수한 후 5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경영을 벗어났다. 턱걸이로 벗어나지는 않았다. 무려 104억 원 흑자를 기록한다. 성공신화는 멈추지 않았다. 2년 후인 1985년 11월, 로얄 시리즈 누적판매 또한 10만 대를 넘어섰다. 당시 시장 규모와 로얄 시리즈가 고가 세단이란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대기록이었다.



로얄 시리즈의 성공으로 ‘로얄’은 하나의 브랜드로 거듭난다. 1980년대 중반 대우 버스에 로얄 이름이 녹아들었고, 대우 전자 여러 제품에도 로얄이 붙는다. 현 부산 아이파크 축구단도 당시 대우 축구단에서 대우 로얄즈로 이름을 바꿨을 정도. 이렇듯 로얄 시리즈가 대우그룹과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했다. 대우차는 여세를 몰아 한 걸음 더 나아간다. 1986년 로얄 살롱 윗급으로 로얄 살롱 슈퍼를 출시한다. 로얄 시리즈 GM V-플랫폼을 길게 늘린 오펠 제나토어가 밑바탕. 로얄 살롱 슈퍼는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디지털 계기판을 품었고, 연료 분사를 전자식으로 제어하는 EFI 2.0L 엔진을 얹었다. 덕분에 기존 2.0L 엔진보다 강력한 128마력 최고출력을 냈다. 화려한 구성과 함께 1986년 3저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이라는 경제상황이 맞물리면서 주문이 또 밀려들었다.




고인 물은 썩는다

“신뢰받는 영원한 명품, 로얄 살롱” 로얄 살롱 후기형 홍보 문구다. 대우차는 로얄 시리즈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었다. 판매가 꾸준했기에 독자개발, 고유모델 같은 큰 변화를 주저했다. 실수였다. 대형 세단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던 현대차는 그 틈을 파고든다. 1986년 7월 미쓰비시와 손잡고 개발한 대형 세단 그랜저를 내놓았다. 그랜저는 스텔라처럼 무르지 않았다. 악천후에도 안정적인 앞바퀴 굴림 구동계와 권위적인 스타일, 넓은 실내 공간 등 현대차가 개발에 직접 참여한 만큼 우리나라 시장 취향을 여실히 담고 있었다. 더욱이 온갖 전자장비는 물론, 국산 대형 세단 최대 배기량 2.4L 엔진을 달아 국산차 최고봉을 자처했다. 그랜저는 순식간에 로얄 살롱 슈퍼 수요를 잠식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우차는 로얄 살롱 슈퍼 출시 단 1년 만인 1987년 3월 슈퍼 살롱으로 부분변경을 단행했다. 권위적인 스타일을 입히고 호화 옵션을 더했다. 1989년 2월엔 국산차 최고 왕좌를 되찾기 위해 직렬 6기통 3.0L 임페리얼도 출시했다. 임페리얼은 국산 세단 최대 배기량과 더불어 실내를 천연 송아지 가죽으로 덮는 등 로얄 시리즈 역사상 가장 화려했다.



그러나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그랜저 역시 V6 3.0L 가솔린 엔진으로 맞불을 놓았고 더 화려한 장비를 품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페리얼은 품질 문제까지 불거졌다. 결국 그랜저는 대형 세단 시장 80% 이상을 장악한다. 굳건했던 로얄 시리즈 기수가 꺾인 희대의 사건이었다. 이후 중형 세단 로얄 프린스마저 현대 쏘나타(Y2)에 시장을 내주면서 중형 세단 왕국을 이뤘던 로얄 시리즈는 빠르게 몰락한다.



1991년 대우차는 프린스와 슈퍼살롱 브로엄 두 차종으로 로얄 시리즈를 정리해 반격을 노린다. 그러나 여전히 오펠 레코드 E를 밑바탕 삼은 품질로는 그랜저와 쏘나타를 넘어설 수 없었다. 프린스와 브로엄은 근근이 판매를 이어가다 1999년 12월 판매를 끝낸다. 1980년대 최고의 자리에서 군림했던 로얄 시리즈의 쓸쓸한 결말이었다.(5부에서 계속)




글/윤지수(로드테스트 기자) 사진/한국지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