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아바이 순대
[경향신문]

월남한 분들은 함경도식 ‘아바이 순대’를 잊지 못한다. 실향민들이 즐겨 먹다가 1990년대 들어 국밥집 간판에 떳떳이 걸리게 되었다. 지역마다 순대 종류가 다르고 국밥도 차이가 제법 있다. 어버이날 아바이 순대를 먹으면서 철조망 건너편 아슴아슴한 고향을 생각하리라. 고향에 두고 온 일가친척. 입맛은 그리움의 진한 냄새이고 단단한 끌텅이다.
돼지의 창자에 담긴 것은 양념만이 아니라 기억하고 싶은 이름들이다. 순대를 채우던 아바이와 순대를 써시던 오마니, 맴소(염소)와 새지(송아지)가 울던 초저녁 그늘. 백두산에는 호개(호랑이)가 뛰댕기고 메구락지(개구리)는 논에서 뛰댕기는 늦봄 어느 날들이 아른거리리라. 남북 철도가 연결되고, 평화가 무르익으면 원조 아바이 순대를 원 없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게다.
긴 날 해외를 떠돌 때 순대국밥 생각이 문득문득 혀를 간질이곤 했다. 술국으로 후후 불어 떠먹다가 한잔 반주를 곁들이면 부러울 게 세상에 없을 국밥. 배가 불러야 잠도 오는 것이다. 낯선 타국에서 춥고 배고프면 상거지 신세. 순대 한 접시가 천장을 빙빙 맴돌곤 한다.
이곳 담양에도 순대국밥 골목이 있는데 가끔 들러서 한 그릇 사갖고 온다. 먹다가 질리면 개랑 나눠먹기도 하는데, 전에 살던 차우차우는 유전자에 흐르는 북녘땅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일찍 찾아온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국밥을 먹는다. 이것은 국밥이 아니라 겨레의 수수만년을 나누는 성찬식이다.
변고를 바라고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자들이 바라는 세상엔 아바이 순대의 맛난 냄새는 없다. 고약한 화약 냄새뿐이다. 고작 햄버거를 씹어 먹으면서 졸부의 우위를 뽐낸들 어디에 그리운 고향산천 가는 길이 있겠는가. 길을 끊고, 길을 막아 세우면서 포크와 나이프로 썰어대는 스테이크에 과연 행복한 배부름이 생겨날까. 아버지가 젊어서 이북 땅을 떠돌며 드셨다던 음식. 아버지 청춘이 문득 그리워질 때 아바이 순대집이 어디 있는지 검색해보곤 한다.
임의진 목사·시인 shodance@hanmail.net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민주당 충북지사 후보에 신용한···결선서 노영민 전 비서실장에 승리
- 대기권서 소멸했나···아르테미스 2호 탑재 국산 초소형 위성, 끝내 교신 실패
- “우리가 깼지만 네가 치워라”···트럼프 적반하장에 분노하는 유럽
- “미워도 다시 한번” 보수 재결집?···“김부겸 줘뿌리란다” 국힘 심판?
- 3시간 만에 ‘일반 봉투 쓰레기 배출’ 뒤집은 군포시···온라인 시스템 도입 철회, 왜?
- 이란 공격에 호르무즈 좌초 “태국 배 실종자 시신 일부 발견”
- 신현송, 다주택 82억 자산가…강남 아파트·도심 오피스텔 보유
- 노인 막으면 지하철 덜 붐빌까…‘무임승차’ 논쟁에 가려진 것
- ‘프로젝트 헤일메리’, 일일 박스오피스 1위···‘왕사남’ 51일 만에 2위
- “이란을 석기시대로 되돌리겠다”…트럼프 대국민 연설은 ‘종전’ 아닌 ‘확전’ 선언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