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알' 영주 택시기사 살인사건, 여전한 미궁 속 범인(종합)


[뉴스엔 이민지 기자]
영주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범인은 누구일까
2월 22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지난 2003년 발생한 영주 택시기사 살인사건 미스터리를 파헤쳤다.
운명을 바꾼 전화는 늦은 밤 걸려왔다. 만약 그날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태우지 않았다면 남자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경상북도 상주의 한 시골 마을. 이곳 감꽃 마을에 오랫동안 풀리지 않고 있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있다. 그 사건은 17년이나 지났지만 어제 일처럼 손규하 경위의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2003년 5월 23일, 이른 아침 밭으로 향한 마을 주민이 처음 시신을 발견했다. 비스듬하게 누운 모습으로 발견된 남자는 온 몸이 피에 젖은 채 사망한 상태였다. 현장 주변을 둘러보던 손 형사의 눈에 이상한 것이 발견됐다. 시신이 발견된 곳으로부터 50m 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있던 슬리퍼. 손자국과 그 옆으로 피해자의 안경, 단추가 떨어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발견된 것은 피묻은 돌 2개다. 부검 결과 피해자의 머리에 둔기로 맞은 흔적이 있었다. 몸의 상처를 볼 때 범인과 격렬한 몸싸움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피해자는 경상북도 영주에서 개인택시를 몰던 42세 김씨였다. 3남매의 아버지였던 김씨는 성실하고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었다. 당시 고급 차종을 이용해 개인택시 영업을 하고 있던 김씨는 그날 밤도 영주 시내로 심야운행을 하러 나갔다. 그런데 왜 영주에서 1시간 떨어진 상주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걸까.
김씨 아내에 따르면 그날 오후 11시께 김씨의 마지막 모습을 본 사람이 있었다. 영주에서 택시일을 하던 그의 조카였다. 김씨는 상주에 갈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고. 경찰은 이 말을 토대로 김씨의 통화내역을 조회했다. 그런데 손님은 공중전화를 이용해 김씨의 휴대전화로 직접 전화했다. 통화는 한번만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약속 장소도 변경했다. 손님의 목적지인 상주까지 1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로 택시가 다른 손님을 태운 정황은 없었다. 그날 새벽 1시 무렵 상주 한 마을에 도착한 것으로 보이는 김씨. 손님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돌변해 김씨를 살해한 뒤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그날 손님과 함께 사라진 것이 있다. 김씨의 택시였다. 택시는 하루 뒤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됐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택시는 한 상가 건물에서 도착돼 있었다. 그 전날 지역 상인에 의해 한차례 움직인 상태였다. 범인은 김씨의 택시를 몰고 현장에서 빠져나가 안동으로 온 것으로 보인다. 차량 문도 열려있고 열쇠도 꽂혀있던 상황. 상인은 술 취한 택시기사의 불법주차라고 생각했다고.
그날 밤 영주에서 상주로, 다시 안동으로 무려 160km 이상을 이동한 범인. 딱 한곳에서 범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피해자를 살해하고 안동으로 이동하는 3번 국도에서 범인은 자신도 모르게 치명적 실수를 했다. 과속 단속 카메라에 모습이 찍힌 것이다.
김씨가 근면성실한데다 고급차를 소유해 장거리 손님들이 그의 택시를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손님은 왜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으며, 장소를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는 "자신의 여러가지가 노출될 위험성을 감소하기 위한 시간적, 공간적 트릭을 썼다"고 분석했다. 또 "이동경로를 선택할 때 평상시 본인의 지리감, CCTV의 위치를 확인해 흔적이 남지 않을 노력을 했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처음 호텔로 김씨를 불렀던 범인. 아마도 사람들의 눈에 띌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장소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호텔 앞에서 손님의 전화를 받고 택시를 돌린 김씨는 공중전화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손님을 태우고 영주로 간 것으로 보인다. 시내 외곽에 있는 LPG 충전소에서 연료를 넣고 밤 12시11분께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밤 12시50분께 상주에 도착한 택시. 더이상 인가도, 가로등 불빛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곳은 손님의 목적지라 보기엔 이상하다. 손님은 이곳에서 살인마로 돌변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입장에서 위기의식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 "차에는 혈흔이 없다고 했다. 범인이 피해자에게 흉기를 사용한 지점은 차 밖이다"고 말했다. 마을 쪽으로 도망치던 김씨를 쫓아간 범인이 흉기 대신 현장에 있던 돌부터 사용했다. 40대로 건장한 체격의 김씨 역시 호락호락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 김씨는 돌에 맞은 뒤 흉기에 찔려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범인은 김씨가 숨졌다고 생각했겠지만 그에겐 의식이 남아있었다. 김씨는 마지막 힘을 다 해 119 버튼을 눌렀지만 마지막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하나같이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다고 말했다. 사건 현장은 마을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야 나오는 외진 곳으로 감농사를 짓는 몇몇 주민 말고는 찾아갈 일이 없는 곳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그 시기 마을을 드나들던 외지인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2003년 당시 사건 현장 근처에서 진행된 청원-상주 고속도로 공사가 있어 50여명의 인부들이 가건물을 짓고 숙식했다고 한다. 그 건물이 사건 현장 주변에 있었다고 한다. 또 하나 의심스러운 점은 택시가 발견된 안동에 공사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공사 현장 관계자 모두를 조사했지만 특이점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범인은 왜 하필 안동으로 향했을까. 차량 유기 장소 주변 상인들은 '버스터미널, 기차역이 있으니까 댔을거다"고 말했다. 차량 유기 현장이 안동역, 버스터미널 인근이라는 것.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살펴본 결과 안동역에서 청량리로 가는 오전 2시 22분 열차가 있었다. 전문가들 역시 그날 범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른 지역으로 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 모든 것이 철저하게 준비된 동선이라면 범인의 다음 계획은 무엇일까. 특히 전문가들은 영주가 범인의 거주지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피해자 김씨의 아내는 사건이 벌어지기 며칠 전, 남편의 모습이 평소와 달랐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남편. 아내에겐 한가지 짚이는 것이 있다고 했다. 남편의 택시를 자주 부르는 단골 손님 중 강원도 카지노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남편이 그 때문에 속앓이를 하곤 했다고. 김씨와 돈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는 손님 최씨는 태양열 보일러 설계업자였다. 그는 뜻밖에도 상주에 살다 이사온 사람이었다. 김씨의 택시 안에서 최씨와 관련된 증거물도 발견됐다. 차용증이었다. 최씨가 다른 사람에게 900만원 가량을 빌리며 작성한 차용증이 왜 김씨의 택시 안에 있었던 것일까. 채권자에게 대신 돌려달라며 김씨에게 돈 심부름을 시켰다는 것이다. 김씨가 거액의 돈 심부름을 하며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당시 형사는 "이 사건과 관련성이 있을 만한 자료는 확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사진 속 범인의 모습과 최씨는 닮지 않은 모습이 많아 용의선상에서 제외됐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원한 관계에서 비롯한 살인사건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원한관계라면 조카에게 어디에 갈 건데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의심해달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피해자 시신의 상처도 이를 뒷받침한다. 전문가는 "원한 관계에 의한 감정적 뒤풀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분석했다. 아마도 범인만 피해자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김씨가 근무했던 콜택시 관계자는 "김씨가 개인 명함도 주고 개인 단골을 만들었다. 장거리 가는 분들도 불러서 많이 탔다"고 말했다. 영주 외곽 장거리 손님을 주로 태워 유명했다는 김씨는 하루 수익도 동료 기사들보다 훨씬 많았다고. 전문가는 "강도하기에 충분한 금액을 갖고 있을 가능성 때문에 선택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전적으로 급박한 상황에서 김씨의 정보를 입수했고 그를 범행 대상으로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과속카메라에 찍힌 사진은 화질이 낮은 상황. 전문가와 화질 개선 기술을 적용해 범인의 몇가지 특징을 살펴봤다. 머리 너비는 15cm, 어깨너비는 45cm로 추정 가능하고 얼굴에 비해 입이 큰 편이었다. 사진 속 남자의 얼굴을 찾기 위해 영주, 상주, 안동에서 탐문을 시작했다. 그런데 탐문 도중 상주에서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상주 한 택시기사가 그 당시 범인으로 보이는 남자를 태웠다는 것.
상주에서 30년 넘게 택시를 운전하고 있다는 황씨는 "난 잡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미궁에 빠졌다고 하더라"며 사건을 언급했다. 그는 "1시 가까이 됐다. 가로등에서 이만큼 내려와서 컴컴한 데
2003년 5월 어느 날 새벽, 가로등도 없는 캄캄한 길 위에서 황씨의 택시를 세웠다는 남자. 손님은 택시에 켜둔 실내등을 껐고 황씨는 실내등을 다시 켰다고 한다. 그 틈에 슬쩍 남자의 얼굴을 쳐다봤다는 황씨는 "덩치가 좀 있다. 모자도 썼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남자는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한 뒤 담배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손님은 택시에서 내릴 때도 처음 탈 때와 마찬가지로 캄캄한 길에서 내렸고 내린 후에도 그 자리에 한참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는 황씨. 황씨는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건넨 사진을 보자마자 "이 사람이다"고 말했다.
경찰은 범인이 처음부터 김씨를 노리고 접근한 것을 보고 원한관계, 금전 관계를 팠다. 그러나 피해자는 일 밖에 모르는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당시 택시 기사 하루 수긱은 10만원 정도. 범인은 눈에 보이는 돈만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 금품을 노린 택시강도 사건이라면 굳이 영주에서 상주까지 갈 필요가 있었을까. 도주하는 피해자를 굳이 쫓아가 죽여야 했을까. 무엇보다 10만원은 계획적인 범행을 하기엔 아주 적은 돈이다. 범인의 진짜 목적은 범인만이 알고 있다.
상주에서는 뜻밖의 소식이 들렸다. 현장 근처에서 사진 속 범인과 닮은 손님을 태운 택시기사의 제보. 그날 밤 남자를 만난 곳은 횡한 도로가였다. 캄캄한 새벽, 그곳에서 내려 담배를 피웠다는 남자는 어디로 향한 것일까. 도로가에서 이 남자가 이동할 곳은 다리 건너 마을 뿐이었다. 그곳은 다름아닌 사건이 일어난 감나무밭 아래 마을이다. 그날 새벽 1시께 마을 앞 도로에서 택시를 타고 내렸다는 의문의 남자.
황씨의 제보를 토대로 수사를 펼친 경찰은 그 마을에 연고가 있는 한 남자 한씨를 긴급체포했다. 출소한지가 얼마된지 얼마 안됐던 남자. 그의 통신기록을 조회한 결과 사건 다음날 안동, 영주를 거쳐 서울로 이동한 것을 확인했다. 국과수 분석 결과 사진과 귀와 입모양, 아랫턱 형태가 유사하다는 결론도 나왔다. 하지만 직접 증거가 없었고 한씨는 피해자와 연결고리가 없어 풀려났다.
한씨 어머니는 당시 아들이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알' 제작진과 전화통화에서 대화를 거부한 그는 늦은 밤 다시 찾아가자 제작진을 맞아줬다. 제작진이 건넨 범인의 사진을 본 한씨는 수염을 기른 적도, 안경을 쓴 적도 없다고 말했다. 또 영주와 상주, 안동까지 모두 가본 적이 없지만 2003년에는 줄곧 서울에만 있었다고 주장했다. 휴대전화 위치가 안동에서 잡힌건 명의 도용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당시 휴대전화가 없어 공중전화를 주로 이용했다고 했다. 그는 사건 당일 업소 출입 알리바이도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씨를 이 사건의 범인으로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황씨가 태운 손님은 새벽 1시께 아랫마을로 내려와 택시를 탔다. 이후 피해자의 택시를 몰고 도주했다는 것인데 택시에서 내린 곳에서 사건 현장까지 2km 거리다. 1시 27분께 3번 국도를 지나기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한씨를 전혀 범인과 관련 없다고 하기도 힘들다. 담당 형사는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의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범인일 가능성이 있거나 범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황씨도 "처음에는 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까 아니더라. 덩치도 더 크고 더 뚱뚱하고. 근데 닮았다"고 말했다. 경찰이 체포해 데려온 한씨와 손님이 닮은 듯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날 태운 남자가 한씨가 아닌 한시와 닮은 사람이었다면 그는 또 누구였을까. 당시 식당에 찾아오곤 했다는 한씨의 교도소 동기들. 하지만 자신은 물론 교도소 동기들도 사건과 관련 없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는 "핵심은 택시 강도 살인인가. 금전을 목적으로 한 범행인가, 그 과정에서 피해자를 살인한 것인가. 아니면 택시 강도로 위장한 또다른 범행 동기가 존재하는가를 밝히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측은 과속카메라 사진을 이용해 만든 범인 몽타주를 공개하고 제보를 당부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뉴스엔 이민지 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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