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마세라티 제냐 에디션, 대나무 시트가 필요 없네!


김송은 사진 이영석

마세라티 홍보팀에서 메일이 왔다. 역시나 신차 소식이 아닌 ‘에디션’ 소식이다. 기대감 없이, 왼손으로 턱을 괴고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보도자료 파일을 열어본다. 그런데 어쩐지 척추가 꼿꼿이 세워지고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몸이 기운다. 이번 에디션 소식이 범상치 않아서다. 망설일 것 없이 마세라티 홍보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시승 날짜를 잡았다. 르반떼 S 그란스포트 제냐 펠레테스타 에디션이다. 은근히 뜨겁고 습한 날씨에 지쳐있던 어느 날 오후, 시승차가 도착했다. 


선물 포장을 뜯어보듯, 운전석 문을 활짝 열었다. 실내를 뒤덮은 제냐 펠레테스타 소재가 반겼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나파 가죽을 쓴 것도 모자라 나파 가죽 스트립을 교차 직조해 만든 소재라니. 컬러는 시커멓지만 시원해 보이는 격자 패턴에 기분까지 상쾌해졌다. 과장이 아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여름이 되면 창고에서 꺼내시던 자동차용 대나무 시트커버가 떠올랐다. 통풍시트 기능이 따로 필요 없어 보였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펠레테스타’는 가죽을 뜻하는 ‘Pelle’와 직물을 의미하는 ‘Tessuta’를 합친 이태리어로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상표 등록한 소재다. 지갑과 가방에 주로 쓰인다. 긴 설명은 필요 없어 보였다. 누구든 단번에 특별한 소재라는 걸 알아볼 수 있다.


명품백처럼 애지중지하기는커녕 귀한 소재를 과감히 깔고 앉았다. 반바지를 입고 앉으면 맨살인 허벅지에 시트가 닿는 감각이 거칠까 봐 조금 걱정됐다. 대나무 방석을 깔고 앉았을 때의 딱딱하고 부대끼는 느낌이 떠올라서다. 우려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가죽이 와 닿았다. 나파가죽인 데다 격자 패턴이 작고 촘촘한 덕분이다. 시동을 걸자 V6 트윈터보 엔진이 “그르렁”거리며 인사한다. 최고출력 430마력 최대토크는 59.2kg·m를 내뿜는다. 지난 가을에도 만나봤던 엔진이라 익숙할 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짜릿하다. 그저 시동 걸리는 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달릴 때의 감각은 자세히 말해 뭐 하나. 속도를 높이고 줄이고 돌 때마다 실실 웃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운전의 즐거움과 편안한 승차감 덕에 기분 좋은 웃음이 난다. 확실히 SUV임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만드는 8기통 르반떼 GTS에 비해 친절한 감각이다.


50km 정도의 퇴근길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미처 살펴보지 못했던 구석구석을 둘러본다.센터 콘솔 한가운데에 ‘에르메네질도 제냐 펠레테스타’ 한정판 헌정 배지가 붙어있다. 필기체로 적힌 ‘펠레테스타’라는 이름이 더없이 멋스럽다. 과연 마세라티 폰트 맛집! 차에서 내려 외관을 쓱 돌아본다. 르반떼. 현재 판매 중인 SUV 중에서 가장 늘씬한 SUV라고 생각해왔다. 다시 한번 그 생각에 확신을 더했다. 제냐 펠레테스타 에디션의 겉옷, 3중으로 코팅한 브론즈 외장 컬러는 햇빛 아래서 고혹적인 빛깔을 드러낸다. 마치 오감을 자극하는 음악회 아니면 전시회를 경험한 것같이, 피곤한 저녁 시간에 기분 좋은 에너지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