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희 "음악이 좋은 걸 숨길 수 없어..음악인생 총정리하는 무대 만들 것"
[경향신문] ㆍ‘데뷔 50주년 콘서트’ 앞두고 소회…“이제 황혼의 감정 노래하고 싶어”

“내 나이 육십 하고 하나일 때, 나는 그땐 어떤 사람일까.”
트레이드마크였던 콧수염도, 치기 어린 젊음도 이제는 없지만 청춘의 감성이 담긴 그의 음악은 여전히 마음을 울린다. 한국 포크의 전설 싱어송라이터 이장희(73)가 데뷔 50주년을 맞아 오는 3월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50주년 기념 콘서트 ‘나의 노래, 나의 인생’을 연다. 그는 30일 서울 종로구 한 공연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50년 음악인생과 공연을 앞둔 소회를 밝혔다.
통기타 한 대를 들고 무대에 오른 이장희는 ‘내 나이 육십 하고 하나일 때’를 부르며 간담회를 시작했다. 스물 일곱, 그는 먼 훗날 다가올 노년을 상상하며 이 곡을 만들고 불렀다. “공연 전 급하게 3시간 만에 만들었던 곡인데요, 지금도 이 노래를 부르면 그 시절과 비슷한 감정이 들어요.” 그래서일까. 어느덧 일흔을 훌쩍 넘긴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달뜬 청춘의 표정이 비쳤다.
“국민학생 때 길거리 전파상에서 조그마한 확성기로 나오던 외국 노래를 듣고 음악을 좋아하게 됐어요. 10대에 노래를 시작해 20대에 데뷔를 했는데 벌써 50년이 흘렀다니 감격스럽습니다.” 그는 지난 세월 자신의 인생에서 음악이란 “가장 가슴을 울리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장희는 아름다운 노랫말과 귀에 꽂히는 멜로디로 1970년대 젊은이들 마음을 사로잡은 청춘의 아이콘이었다. 1960년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공연을 하던 그는 1971년 ‘겨울이야기’로 데뷔했다. 이후 발표한 ‘그건 너’ ‘한잔의 추억’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등은 당시 청춘의 연가로 널리 사랑받았다. 그는 이 시절을 “음악 속에 살았던 때”로 기억했다.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음악 활동을 전면 중단하기 전까지 그랬다. 이후 그는 미국에서 사업가로, 울릉도에서 농부로 살며 대중의 기억에서 잊히는 듯했다.
그런데 2010년 뒤늦게 불어닥친 ‘쎄시봉 열풍’이 이장희를 재조명했다. 그는 그렇게 다시 관객 앞에 섰다. 세대를 막론하고 ‘그건 너’를 흥얼거리는 이들이 늘어났다. 원조 ‘슈가맨’의 귀환이었다. “처음 음악을 그만두고 나선 사람들이 알아보는 게 불편했어요. 콧수염도 그때 깎았죠. 그런데 35년 만에 다시 노래를 하니 자세가 달라지더라고요. 이젠 음악이 좋은 걸 숨길 수 없어요. 그게 저니까요.”
그는 자신의 음악이 널리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생활에서 누구나 느끼는 걸 포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새로운 소망은 지금 겪고 있는 황혼의 감정을 담은 곡을 만드는 것이다. “제 나이의 사람이 느끼는 허전함, 안온함, 평화로움이 담긴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이장희는 다가온 콘서트에서 “음악인생을 총정리하는 무대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1세대 세션인 밴드 동방의빛 멤버 기타리스트 강근식, 베이시스트 조원익이 함께 무대에 올라 주옥같은 명곡을 연주한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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