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축구 명경기 열전⑥] 안정환 칩슛-박지성 잉·프에 연속골, 2002 믿음을 갖다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2020. 3. 2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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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스포츠한국에서는 ‘韓축구 명경기 열전’이라는 시리즈를 통해 수많은 경기 중 한국 축구사에 전설로 기억된 위대한 한 경기를 파헤쳐 되돌아봅니다.

-2002년 5월 A매치 3연전(스코틀랜드-잉글랜드-프랑스)

[韓축구 명경기 열전①] 홍명보-서정원, 5분의 기적으로 무적함대를 세우다
[韓축구 명경기 열전②] 황선홍-홍명보에 당한 독일 "5분만 더 있었다면 졌다"
[韓축구 명경기 열전③] 역사상 최고 한일전 ‘도쿄대첩’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韓축구 명경기 열전④] TV 역대 최고 시청률의 전설, 투혼의 벨기에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⑤] 어떻게 한국은 ‘세계 최강’ 브라질을 이겼나
[韓축구 명경기 열전⑥] 안정환 칩슛-박지성 잉·프에 연속골, 2002 믿음을 갖다

그동안 [韓축구 명경기 열전]은 한경기를 집중적으로 다뤘지만 이번 6편은 2002 한일월드컵 직전 열린 A매치 스코틀랜드-잉글랜드-프랑스 3연전을 총괄해서 다룹니다. 이 A매치 3연전이 가지는 연속성의 의미를 살리기 위한 선택임을 밝힙니다.

연합뉴스 제공

▶경기전 개요

2001년부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고 시간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음에도 월드컵을 한달 앞둔 2002년 4월까지도 상황은 좋지 못했다. 그 유명한 2001 컨페드레이션스컵 프랑스에 0-5 패배 후 체코에 0-5 패배 등을 당하며 히딩크 감독은 ‘오대영’이라는 수치스러운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2002년 초에 열린 골드컵에서도 준결승에서 코스타리카에게 지고, 3-4위전도 캐나다에게 지며 대회를 반년 앞두고 혹평에 시달렸다. 그리고 4월 인천에서 열린 중국전마저 0-0으로 비기며 큰 실망을 안겼다. 어느팀도 아닌 중국에게 비겼다는 것은 분명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회의론 가득한 상황에서 한국은 월드컵 본선 무대를 직전에 두고 5월, '11일간 3경기'라는 다소 혹독한 평가전 일정을 잡아놨다. 스코틀랜드(5월 16일 부산), 잉글랜드(5월 21일 서귀포), 프랑스(5월 26일 수원)로 이어지는 갈수록 강해지는 A매치가 그것.

스코틀랜드는 당시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고 잉글랜드 마이클 오언, 데이비드 베컴 등 스타 군단이 버티던 팀이었다. 프랑스는 지난 월드컵 챔피언이자 지네딘 지단, 티에리 앙리, 패트릭 비에이라 등으로 대표되는 ‘아트 사커’의 진수로 1998 월드컵-유로 2000 석권으로 세계 축구계를 꽉 쥐고 있던 팀이었다.

부정적 여론을 딛고 반드시 일어서야만 했던 거스 히딩크호에게 5월 A매치는 6월 4일로 예정된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폴란드전은 물론 2002 한일월드컵 성패를 엿볼 가늠좌였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안정환의 아름다운 골, 스코틀랜드를 초토화시키다

가장 먼저 스코틀랜드전. 5골이나 나온 경기였고 한국은 4골을 폭발시킨다. 전반 14분만에 유상철의 중앙선에서의 긴패스를 이어받은 이천수가 골키퍼까지 젖히는 엄청난 개인기로 선제골을 넣는다. 여기에 후반 안정환과 윤정환의 연속 중거리슈팅이 골망을 갈라 3-0을 만든다.

스코틀랜드는 후반 29분 만회골을 넣으며 저항했지만 후반 42분 한국 축구사에 기술적으로 가장 멋진 골인 안정환의 칩슛이 작렬한다.

이을용이 왼쪽에서 안정환을 보고 밀어준 공을 안정환은 공을 잡을 듯 하다가 그대로 뒤로 흘려주고 앞으로 뛰쳐나간다. 안정환 움직임의 의도를 알아챈 윤정환이 그대로 오른발로 밀어줘 수비벽을 깨뜨리는 패스를 해주자 안정환은 이 패스를 잡지도 않고 골키퍼가 살짝 나온 것을 보고 왼발 칩슛을 한다. 이 슈팅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골키퍼 키를 넘겨 그대로 골망을 흔든다.

안정환은 결혼반지에 키스를 했고 너무나도 멋진 골에 수려한 외모, 그리고 세리머니까지 삼위일체가 된 이 골 이후 안정환의 별명은 ‘테리우스’에서 ‘반지의 제왕’으로 불린다.

아무리 월드컵 진출 실패팀이라 할지라도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4골을 넣으며 초토화시킨 것은 중국전 0-0의 상처를 잊게하기 충분했다.

ⓒAFPBBNews = News1

▶무명의 박지성, 전국민에 이름을 각인시키다

스코틀랜드전 이후 5일뒤 열린 잉글랜드전. 비록 잉글랜드의 간판 베컴이 나오진 않았지만 오언, 폴 스콜스, 리오 퍼디난드, 솔 캠벨, 에밀 헤스키, 오언 하그리브스 등 핵심급 선수 다수가 나섰다. 사실상 베컴과 데이비드 시먼 골키퍼를 빼곤 모두 베스트 선발라인업이었다.

잉글랜드는 전반 26분만에 스콜스의 슈팅이 이운재 골키퍼 맞고 나온 것을 오언이 재차 차넣으며 1-0으로 앞서갔다. 아무래도 ‘축구 종가’ 잉글랜드라는 타이틀은 한국 선수들에게 버거워보이는가 했다.

하지만 후반 6분. 한국은 오른쪽에서 올린 코너킥을 수비수 최진철이 공격가담해 헤딩으로 돌려놓는다. 이 패스를 21번 무명의 선수가 다이빙 헤딩슈팅으로 동점을 만든다. 당시 국민들은 기뻐하면서도 '쟤는 누구야?'라고 했다. 훗날 한국축구의 전설이 되는 박지성이었다.

이 경기전만 해도 박지성은 냉정하게 그저 축구팬들과 전문가들만 아는 선수였다. 그리 눈에 띄지 않는 플레이 스타일상 늘 대표팀 탈락 1순위 후보로 손꼽히던 그였다. 하지만 히딩크는 박지성을 믿었고 박지성은 스코틀랜드전 후 잉글랜드전도 선발로 나서 결국 동점골을 넣는다. 이것이 박지성의 A매치 100경기 총 13골 중 2번째 골이자 2000년 나온 A매치 데뷔골 이후 무려 2년만에 넣는 골이었다. 이후 프랑스-포르투갈-이란-일본 등 강팀 킬러로 활약한 박지성의 시발점이었다.

세계적 스타플레이어들이 많기에 큰 관심을 받았던 이 경기에서 아직 국민적 인지도는 부족했던 무명의 박지성이 골을 넣으면서 이 경기를 계기로 박지성은 국민들에게 ‘들어본 선수’ 이상의 인지도를 갖게 된다. 이후 프랑스전을 통해 ‘확실히 각인된’ 선수가 됐다면 2002 월드컵 포르투갈전을 통해 ‘국민적 영웅’이 된다. 박지성의 국민적 인지도의 시작이자 강팀 킬러로서의 시작이 바로 이 잉글랜드전부터였다.

ⓒAFPBBNews = News1

▶‘세계 1위’ 프랑스에 ‘졌잘싸’… 한국, 월드컵 희망을 보다

잉글랜드전 후 5일뒤인 2002년 5월 26일. 수원에서 프랑스를 만난다. 잉글랜드와도 겨우 비겼는데 다음에 기다리는게 당시 피파랭킹 1위이자 1998 월드컵-유로 2000 연속 우승팀 프랑스라니.

히딩크 감독도 가혹하긴 참 가혹했다. 하지만 이 평가전을 통해 히딩크 감독은 단순히 1승이 아닌 16강, 아니 그 이상을 내다보고 있었다.

앙리, 다비드 트레제게가 투톱에 서고 지단 등 프랑스는 완전한 베스트11을 모두 가동했다. 오히려 한국이 결과적으로 월드컵에서 한경기도 나오지 못한 최태욱, 김병지를 선발로 내세우고 교체로 이민성, 최성용, 윤정환 등을 투입하며 베스트멤버에 힘을 뺀 모습이었다.

앙리의 크로스에 트레제게의 거짓말 같은 슈팅에 선제골을 내줘 0-1로 뒤진 한국은 전반 26분 김남일의 긴패스를 이어받은 박지성이 침착한 트래핑과 폭발적인 순간 스피드로 프랑스 수비사이에서 왼발 슈팅으로 동점골을 만든다. 세계 최강 프랑스를 상대로 골을 만든 한국은 1년전 0-5로 졌던 팀과는 완전히 달라졌음을 보인 골이기도 하다.

프랑스에 역전골을 넣은 설기현. ⓒAFPBBNews = News1

전반 41분에는 이영표가 프리킥을 문전으로 올려놓은 것을 한국의 ‘9번’ 설기현이 완벽한 헤딩골까지 넣었다. 2-1 역전. 피파랭킹 1위이자 당대 세계 최강이던 프랑스를 상대로 전반전을 2-1로 이기고 라커룸에 들어가자 전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더 이상 한국이 스코틀랜드를 4-1로 이기고, 잉글랜드에 1-1로 비긴 것이 우연이 아님이 증명된 결과였다.

비록 후반 8분 뒤가리에게 동점골을 주고 후반 45분 프랑크 르뵈프에게 역전골을 내줘 2-3으로 역전패 당했지만 말 그대로 ‘졌지만 잘 싸운(졌잘싸)’ 경기였다. 한국 축구사에서 가장 뛰어난 '졌잘싸' 경기였다.

▶경기 후 개요

스코틀랜드전에서 안정환은 후반 교체투입됐음에도 2골 1도움을 기록했다. 이후 안정환이 ‘조커’로서 후반 교체투입돼 경기를 바꾼 활약을 돌이켜보면 이때부터 조커 안정환의 시작이라 봐도 무방했다.

또한 1-1로 종료된 잉글랜드전에서는 잉글랜드의 오언, 한국의 박지성이 골을 넣었다. 당시 오언은 23세, 박지성은 21세였다. 이 경기 후 7년뒤인 2009년, 두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함께 뛸지 당시만해도 누가 알았을까. ‘리버풀의 상징’이었던 오언이 라이벌팀인 맨유를 간것도, 당시까지 무명이었던 박지성이 맨유를 간 것 모두 ‘알 수 없는 인생’이라는 이문세의 노래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7년후 맨유에서 재회한 오언과 박지성. ⓒAFPBBNews = News1

프랑스전은 지단이 부상을 당해 유명한 경기이기도 하다. 지단은 전반 38분만에 부상으로 이탈했는데 전담마크맨이었던 김남일과 충돌했기 때문이다. 1년전인 2001년 유벤투스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세계 이적료 1위(7500만유로-약 1050억원)를 기록했던 지단의 부상에 전세계가 놀랐다. ‘쿨남’으로 유명했던 김남일은 지단을 다치게 한 선수로 비난받자 ‘치료비를 내 연봉에서 까라’라고 말해 화제를 남기기도 했다.

한국에게도 이 경기가 중요했지만 프랑스에게도 기억될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전력의 핵인 지단이 부상을 당하면서 결국 조별리그 1,2차전에 모두 지단을 기용하지 못했다. 세네갈전 0-1패, 우루과이전 0-0 무승부로 벼랑 끝에 몰린 프랑스는 3차전 덴마크전에 무리하게 지단을 기용했고 지단은 부상 여파로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며 프랑스가 0-2로 패해 1무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원흉이 되고 만다.

한국은 갈수록 강해지는 11일간 3경기의 월드컵 직전 평가전을 1승1무1패로 마치며 전국민적 신뢰를 얻게 된다. 4월 중국전까지만해도 여전히 히딩크를 의심하는 시선은 많았지만 이 3연전을 통해 온국민이 대표팀에 신뢰를 보내게 됐고 선수들 역시 자신들을 믿을 수 있게 됐다.

믿음을 주고, 또 믿음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야말로 이후 한달간 ‘광란의 6월’을 보낸 한국의 월드컵 4강 신화 직전에 가진 이 A매치 3연전이 가지는 중대한 의미다.

김남일에게 부상을 당해 이탈한 지단의 모습. ⓒAFPBBNews = News1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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