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타임머신 ⑦ 1989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유공의 '우승'
(베스트 일레븐)
한창 뜨거워야 할 피치가 아직 차갑게 식어 있다. 코로나19가 이 땅의 모든 축구를 식힌 탓이다. 덩달아 우리들의 가슴도 달궈지지 않아 서늘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언제고 다시 뜨거워질 K리그를 기다리며, 과거 <베스트 일레븐(월간 축구)>이 전한 기사와 함께 지난 37번의 시즌을 돌아봤다. 큰 이슈부터 작은 기록까지 가능하면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당시의 생생함을 전달하기 위해 잡지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사진으로 옮겼다. 아직 숨죽이고 있는 K리그를 기다리는 데 ‘K리그 타임머신’이 작은 보탬이 됐으면 싶다. / 편집자 주

전년도와 비교했을 때, 1989시즌의 가장 변화한 점은 경기 수의 ‘대폭 증가’였다. 1988년엔 올림픽 등의 외부 요인이 작용해 각 팀당 24경기만 치렀다면, 1989년은 팀 당 40경기를 소화했다. 40라운드, 무려 40라운드였다. 현재 매년 리그 38경기를 치르는 K리그 클럽들보다 두 경기를 더 소화하는 기나긴 시즌을 보낸 셈이다. 당시 <베스트 일레븐>은 1989년 4월 호 기사의 헤드라인을 이렇게 적어뒀다. “89 한국프로축구대회 개막, 프로축구 120게임의 대장정에 돌입.”
120게임이 됐던 또 하나의 이유는 1989년엔 반갑게도 새로운 팀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바로 일화 천마(現 성남 FC)였다. 지금도 K리그의 전통 명문으로 꼽히는 일화는 1989년 첫 발을 뗐고 그때는 서울을 연고로 활동을 시작했다. 홈구장으로는 동대문운동장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을 동시에 활용하며 도시의 관중들을 불러 모았다. 초대 사령탑은 1983 FIFA U-20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4강에 올렸던 박종환 감독으로 낙점됐다. 박 감독은 이때부터 1996년까지 여덟 시즌 동안 일화를 지휘했고, 이 기간 동안 명가의 초석을 닦았다.
한편 포항제철 아톰즈(現 포항 스틸러스)는 이 시절부터 홍보에 관심을 기울였다. 포항제철은 1988년 한국프로축구대회에서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했던 팀이었고, 때문에 1989년은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젓는다는 각오로 경기당 1만 1,000명의 팬들을 끌어들이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내걸었다. 그래서 포항제철은 포항 종합운동장에서 한 해 내내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연간회원권을 판매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때 포항제철이 내걸었던 연간회원권 세트를 보면 왠지 미소가 피어오른다. 특석의 가격은 3만 원이었고, 일반석은 2만 원이었다. 아울러 연간회원권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는 소형 라디오와 문구 세트 등을 증정했다. 가격대와 사은품 구성에서 시대상이 읽힌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모여 출발한 1989 한국프로축구대회는 대략 77만 명의 팬들을 모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기록에 따르면 경기당 그해의 평균 관중은 6,483명으로 집계됐다. 경기 수가 작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난 덕분에 전체 관중 수도 36만 명에서 77만 명으로 증가했고, 평균 관중 역시 1988년의 6,011명보다는 소폭 상승했다. 드라마틱한 증폭은 아니었지만, 상승세를 그렸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또한 1990 FIFA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전으로 각 구단 스타플레이어들의 국가대표팀 차출이 잦았음에도 일군 의미 있는 수치였다.



1989시즌 중반까지는 대우 로얄즈(現 부산 아이파크)의 페이스가 굉장히 좋았다. 첫 3라운드에서 3연승을 거두며 기세를 올렸고, 20라운드까지 단 4패만을 기록하며 창단 이후 세 번째 우승을 노리는 듯했다. 그러나 1989시즌은 2019년의 K리그처럼 퍽 흥미롭게 흘러갔다. 유공 코끼리(現 제주 유나이티드)와 럭키금성 황소(現 FC 서울)가 스퍼트를 올리며 대우를 추격했고, 서서히 격차가 좁혀지며 순위표에 변동이 일어서다.
그야말로 엎치락뒤치락이었다. 8월말부터는 럭키금성이 황소 같은 뚝심으로 기어이 리그 선두에 올라섰다. 차상해와 윤상철의 공격력을 앞세워 현대 호랑이(現 울산 현대)전에서 승리하고 시즌 첫 단독 선두로 뛰어올랐다. 그런데 럭키금성의 질주조차 끝내 시즌 끝까지 이어질 순 없었다. 앞서 언급했던 흐름 좋던 팀 중 하나인 유공이 코끼리 같은 발걸음으로 묵직하게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유공은 1989시즌에 다른 어떤 클럽보다도 야망을 불태웠다. K리그 원년부터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트로피가 없었고, 때문에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1989년을 그저 흘려보낼 순 없었다. 그래서 동구 코끼리(?)를 수입했다. <베스트 일레븐> 1989년 9월 호를 살펴보면 “유공, 동구 코끼리 수입해 허리 강화”라는 대목이 있다. 그해 7월 전력 강화를 위해 폴란드에서 데려온 두 명의 외국인, 레첵 이바니츠키와 타데우스 즈비아덱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바니츠키는 한국에서 레스라고 불렸고, 즈비아덱은 테드였다. 각각 공격형과 수비형 MF였던 레스와 테드는 유공의 막판 역주에 대단한 기여를 했다.
안양 종합운동장에서 벌어졌던 38라운드 유공-럭키금성전은 사실상의 결승전이었다. 당시 승점 1점 차로 럭키금성에 밀려있던 유공은 이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자력으로 우승을 노릴 수 있었다. 이때 유공의 승점은 43, 럭키금성은 44였다. 유공의 의지는 기어이 승리를 불러왔다. 시즌 내내 걸출한 활약을 이어왔던 노수진이 첫 골을, 김봉길이 후반 44분 매직 같은 두 번째 골을 터뜨리며 윤상철이 한 골을 넣는 데 그친 럭키금성을 2-1로 제압했다. 유공이 1위에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이후 유공은 39라운드부터 최종전이었던 40라운드까지 모두 승리하며 기어이 무관의 한을 풀었다.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렸던 마지막 포항제철전에서는 임고석·테드·노수진이 연속골을 터뜨리며 챔피언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 우승은 유공의 첫 우승이었고, 그리고 지금까지도 마지막 우승으로 남아있다.


MVP는 유공의 핵심 선수 노수진의 차지였다. 노수진은 그해 30경기에 출전해 16골 7도움을 기록했고, 팀이 우승까지 차지했으니 최우수선수가 되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반면 득점왕과 도움왕은 모두 포항제철에 돌아갔다. 조긍연은 20골을 넣어 1989시즌 최고의 공격수로 인정받았고, 이흥실 역시 11도움을 적립해 어시스트 머신의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 포항제철로는 당시 아쉬웠을 수밖에 없는 게 조긍연과 이흥실이라는 리그 최고 수준의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팀 성적이 고작 4위에 그치고 말았다.
감독상은 역시나 김정남 감독의 손에 쥐어졌다. 유공의 역사적 첫 우승을 이끈 김 감독은 “열심히 뛰어준 선수들과 적극적 뒷바라지를 해준 구단에 영광을 돌린다”라는 담담한 수상 소감을 남겼다. 그러나 김 감독의 업적은 담백한 소감 이상의 엄청난 결과였다. 시즌 초 약체로 꼽히던 유공은 김 감독의 조련으로 강팀으로 변모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그토록 갈망하던 정상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1989시즌 베스트 11은 각 팀에서 고루 분배된 게 특이점이다. 먼저 우승팀 유공에서는 FW 부문의 노수진과 DF 부문의 조윤환·최윤겸이 꼽혔다. 아깝게 2위가 된 럭키금성에서는 공격수 윤상철과 수비수 이영익, 그리고 골키퍼 차상광이 이름을 올렸다. 득점왕과 도움왕을 차지했던 포항제철 콤비 이흥실과 조긍연도 역시나 베스트 11에 포함됐고, 대우에서는 조덕제가, 현대에서는 강재순이, 일화에서는 임종헌이 각 팀의 자존심을 지켰다.


글=조남기 기자(jonamu@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그래픽=김주희 디자이너(www.bestelev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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