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목욕탕 "오늘도 목욕합니다" [S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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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9월부터 목욕료가 자율화됐는데 당시 기사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정부는 85년 말 이후 동결된 현재의 요금 950원으로는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요금 자율화가 불가피하다는 업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목욕료 자율화를 시행할 방침이다. 그러나 목욕료가 자율화되면 요금이 크게 뛰고 자칫 업자들 간의 담합으로 시민들이 피해를 보게 돼…”
현재 국내에 1975년 이전 문 연 목욕탕은 330여곳. 서울에선 화곡중앙골목시장에서 1969년부터 영업 중인 ‘대호탕’과 홍제동에서 1971년 개업한 ‘마을탕’이 대표적인 동네 목욕탕입니다. 새벽 5시면 문 열어 누구라도 지친 심신을 달래고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세상에 나갈 수 있도록 50여년째 뜨거운 물을 끓여온 곳입니다.



여탕 안은 여느 대중목욕탕이 그렇듯 바가지탕, 온탕, 열탕, 냉탕이 있고 2개의 세신대와 좌식 샤워기, 입식샤워기, 그리고 사우나실이 있습니다.

문 연 지 40여년 된 목욕탕은 손님과 함께 나이를 먹어갑니다. 단골이 늘 오던 날짜, 시간에 와서 앉던 자리에 앉아 목욕하고 가곤 합니다. “내가 여기 30년을 앉았다”며 자리싸움이 날 때도 있습니다. 오래된 동네 목욕탕은 이처럼 손님도 정으로 오고, 목욕탕도 정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엔 집 근처 동네 목욕탕에서 가족과 함께 옛 기억을 떠올리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보시지 않겠습니까.

대중목욕탕의 역사는 근대화의 역사다. 우리나라에서 목욕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에 나타난다. 그러나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나정’이라는 우물가에서 알로 발견되었고 동천에서 목욕을 하자 비로소 광채를 발했다는 식이다. 목욕이라기보다는 주술성 의례에 가깝다. 목욕에 대한 기록이 풍부하게 남아있는 건 조선 시대부터다. 특히 임금의 온천 행차 등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다. 하지만 조선 시대 역시 목욕 문화 중심은 욕탕이 아니라 ‘대야’였다. 양반집이라도 방안에 대야 서너 개를 갖다 놓고 얼굴, 손, 발 따로 씻는 식의 부분욕이 일반적이었다. 비누는 팥을 곱게 갈아 밀가루처럼 걸러낸 팥 비누로 때를 뺐다고 한다.

각 가정에 현대적 수준의 목욕탕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건 대략 1980년대로 추정된다. 물을 가열할 수 있는 보일러 대중 보급과 맞물려 있다. 그런데도 기름값 등이 비싸서 욕조의 상당수는 예비저수용이나 빨래, 김장용이었고 목욕은 목욕탕에 가야 할 수 있었다.
◆목욕 문화 연구 이인혜 학예연구사

이 연구사는 “어렸을 때 겨울이면 집에선 목욕하는 게 큰 일이었다. 큰 양동이에 물을 데워서 찬물하고 섞어 씻거나 목욕탕에 가지 않으면 겨울철에는 몸을 씻기 힘들었다”며 “집에서 목욕하는 게 보편적이 된 건 불과 십년, 십오년 사이 생겨난 변화”라고 말했다. 가스보일러, 지역난방 등 상대적으로 값싼 난방 시설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기름보일러나 연탄보일러로는 집 목욕이 사실상 힘든 시대였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목욕탕이 등장한 시기는 불분명하다. 이 연구사는 “1910년대라는 설이 있지만 1897년 신문에 목욕탕 광고가 나오는 등 최초의 목욕탕이 무엇인지는 계속 바뀌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목욕탕은 정말 중요한 생활공간이었어요. 일부 지역에는 목욕탕에 VIP층이 따로 있었는데 여기서 지역 유지들이 매일같이 모이는 모임도 있었고, 도난사건이나 여탕에 남자가 여장하고 들어가는 일 등 사건·사고도 비일비재했거든요. ‘목욕료가 치솟아 서민경제에 치명적’이란 신문 기사도 자주 등장하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탕에서 조선인을 차별한다며 ‘조선인 자본으로 만든 탕이 필요하다’는 기사도 나타납니다.”
많은 세신사를 만난 이 연구사는 남탕과 여탕의 때 미는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남성은 수건에 이태리타월을 감아서 쓰지만, 여성은 장갑 형태 이태리타월을 사용한다. 또 남성 세신사가 쓰는 이태리타월이 서울과 경기도에선 짧은 타월이지만 강원도·전라남도·경상남도에서는 대부분 긴 타월이다.
이 연구사는 “지난해 조사를 나갔던 목욕탕에 보고서를 보냈더니 그사이 문을 닫아 반송된 경우가 있었다”며 “동네 목욕탕은 결국 사람들의 기억 속에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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