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스페셜' 크리스·박지훈·남보라가 전한 정인숙 피살 사건, 70년대 정치 이면

현혜선 기자 2020. 3. 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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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페셜 / 사진=SBS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SBS 스페셜' 정인숙 피살 사건이 재조명됐다.

8일 방송된 SBS 교양프로그램 'SBS 스페셜'은 '너에게 들려줄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3월 이야기' 첫 번째 편이 공개됐다.

이날 방송에서는 정인숙 피살 사건을 두고 3명의 스토리텔러가 등장해 이야기를 전했다. 첫 번째 스토리텔러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한 미국인 크리스였다. 그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부터 한국사에 대한 놀라운 지식을 뽐냈다.

두 번째 스토리텔러는 변호사 박지훈이었다. 그는 역사를 좋아한다고 밝히며 대한민국의 굵직한 사건들의 연도를 줄줄이 외워 놀라움을 자아냈다. 세 번째 스토리텔러는 10년 차 배우 남보라였다. 그는 "역사를 잊어버리면 지금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더라"고 전했다.

제작진은 이들에게 1970년 3월 발생한 정인숙 피살 사건을 자신의 시점에서 해석하라고 말했다. 이에 박지훈은 "이 사건에 대해서는 잘 안다. 가장 미스터리하고 추문에 가까운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크리스와 남보라는 정보를 모으는 데서 시작했다.

이후 이들은 각각의 대상을 정해 해당 사건에 대해 스토리텔링을 시작했다. 크리스는 헤어디자이너, 남보라는 절친, 박지훈은 딸에게 해당 사건을 전했다.

정인숙 피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께 서울 마포구 합정동 앞 강변로의 승용차에서 정인숙은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고 숨졌다. 그리고 운전을 하던 그의 오빠 역시 총상을 당했다. 정인숙의 오빠는 자신이 살인범이라고 자백을 했으며, 이렇게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의 오빠는 "동생에게 그동안 무시를 당하고 열등감이 많았다. 동생의 문란한 사생활 때문에 가문이 수치를 당해 살해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정인숙은 당대 최고의 권력층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여러 소문이 돌았다. 당시 정인숙의 집에서는 2000달러의 현금이 발견됐다. 또 여권 발급 자체가 힘들었고, 일반적으로 단수 여권만 발급됐던 시대에 회수 여권을 갖고 있었다. 회수 여권은 횟수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여권으로 고위층만 가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인숙이 남긴 수첩에는 유력 정치인들의 전화번호와 신상정보들이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결혼도 하지 않은 정인숙에게는 3살짜리 숨겨둔 아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들의 아빠가 수첩 속 인물 중 한 명이라는 소문도 났다. 정인숙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던 그때 취재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당시 3선을 노리던 박정희 정권은 개헌을 위해 언론을 더욱 통제한 것이다.

SBS 스페셜 / 사진=SBS


사건 발생 1년 뒤 외국에서 정인숙 피살 사건이 보도됐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정인숙은 요정의 기생이었던 것이다. 정인숙은 당시 서울 3대 요정 중 하나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요정은 은밀한 일들이 진행되는 공간이었다. 어둠의 공간에 모여 은밀하게 부패한 정치를 했다. 당시 정치가들은 국회에서는 졸고 요정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이런 정보를 알기 위해 요정에 일하는 기생들이 스파이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때는 중앙정보부에서 요정을 관리하는 미림팀까지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술시중을 들고 연회를 여는 것뿐만 아니라 매춘까지 했던 기생들. 그리고 국가는 이를 이용한 '기생관광'이라는 상품까지 만들어 충격을 안겼다.

남보라는 국회 도서관에서 방문해 기생 관광에 대하 보고서를 발견했다. 그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할 정도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떻게 그게 관광상품이 되냐. 될 수 없지 않냐"라고 말했다. 당시 기생관광으로 방문한 외국인들은 65만 명에 달했고 특히 일본인의 비중이 많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70년대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들 중 7~80%가 남성 관광객이었고 이들은 대부분 기생 관광을 즐기러 온 것으로 알려졌다.

나라는 기생들을 관리까지 했다. 교정과를 만들어 기생을 관리하고 기생들에게 관광종사원이라는 등록증까지 발급했다. 이것이 있으면 통금시간에도 출입이 가능했고 고급 호텔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당시 나라는 "너희가 벌어들인 외화가 경제를 성장시킨다. 너희가 한 매춘 행위가 애국이다"라며 매너 교육도 시키고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들은 박지훈의 딸은 "여자들이 너무 불쌍한 거 같다"라고 했다.

이렇게 80년대까지 이어진 기생관광을 온몸으로 막던 이들이 있었다. 선봉에는 여성운동가 이우정 선생이 있었다. 이우정 선생은 일본인 관광객의 변태적 행위로 자살한 기생 사건을 접하고 취재를 통해 기생관광에 대한 실체를 알게 됐다. 정부 관계자는 이우정 선생에게 "필리핀은 화대가 겨우 60달러인데 우리나라는 100달러다. 지금은 과도기이니 조금만 참아달라"고 했다. 이에 이우정 선생은 "그게 그렇게 자랑스러우면 네 딸부터 내놓아라"고 강력하게 말했다.

당시 관광여행사를 운영했던 김문숙 선생은 공항에서 기생관광을 막았다. 김문숙의 항의에 대해 일본인들은 "옛날에 전쟁 시에는 군인이라 돈이 없어서 몸 팔러 온 한국 여성들에게 돈을 못 줬는데 이제는 부자가 되었으니 돈을 주고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망언했다. 이에 김문숙 선생은 일본과 한국 공항에 직접 가서 일본인들의 입국을 막고 피켓 시위를 벌였다.

끝으로 정인숙의 피살 사건에 대해 자백을 했던 그의 오빠는 "내가 왜 내 동생을 죽이겠냐"라며 사건 발생 19년 후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리고 정인숙의 아들은 친자 소송을 벌였으나 당사자가 사망해 친아버지는 끝내 밝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크리스의 지인은 "이 슬픈 역사를 외국인보다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창피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보라는 "내가 하기 싫으면 남도 하기 싫다. 하늘 아랫사람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전했다.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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