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평 냉이밭서 기합자세로 괭이질.. 봄향기 캐기 힘드네
봄의 전령사 냉이 캐기 체험
냉이 뜯다 허리 끊어질라
괭이 들고 엉거주춤.. 10분만에 허리 아파와
오전 8시부터 9시간.. 130명이 1t 정도 수확
냉이 볶으면 해산물 맛
봄채소 중 단백질 최다.. 인삼의 사포닌 성분도
김치·튀김·부침개나 김밥에 넣어도 별미
"할머니들 앞에서 너무한 거 아녀? 벌써 힘들다고 그만하는 겨?"
잠시 허리 펴려고 일어서니, 맞은편에서 냉이를 캐던 어르신들이 놀렸다. 냉이 뜯어보겠다고 쪼그려 앉은 지 10분이나 지났을까. 농사에 익숙하지 않은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오전 8시에 도착해 2시간째 작업 중이라는 어르신들은 힘든 기색이 없었다. "허리 안 아프세요?" "그럼 어떡햐? 돈 줘야(받아야) 하니께, 일이니께. 그냥 계속 앉아야 혀. 그것도 요령이여."

잠시만 캐도 허리 끊어질 듯 아파
쌉쌀하면서도 향긋한 대표 봄나물 냉이. 요즘 한창인 냉이를 어떻게 채취하는지 알기 위해 박수용(63) 충남 홍성 갈산 압곡황토냉이영농조합 대표에게 전화하자, "18일은 서산에서 작업하니 여기로 오라"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도로명 주소 사진 하나를 찍어 보냈다.
요즘 시장에 나오는 냉이는 산과 들에서 뜯지 않고 밭에서 생산한다. 그리고 국내 냉이 생산의 중심은 충남 홍성이다. 홍성을 중심으로 서산, 태안 등 충남 일대에서 국내 생산량의 80%가 나온다. 박 대표는 40여년 전 처음으로 논가 주변 들판에서 드문드문 나던 냉이를 농경지에서 재배해 작목화했다고 한다. 따로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지는 않지만, 대형마트나 수퍼마켓에서 판매되는 냉이 대부분이 그의 조합에서 유통하는 것이라고 했다. "제 고향이기도 하지만, 홍성이 해안 지역이라 냉이가 잘돼요. 해풍을 맞으며 자라야 잎이 잘고 뿌리가 길쭉하니 야무져가지고 좋아유."
오전 9시 30분쯤 서산에 도착했다. 야트막한 황토 언덕에 펼쳐진 전형적인 농촌 풍경. 냉이 채취 작업은 이미 한창이었다. 이날 작업은 오전 8시 시작했다. 박 대표는 "냉이 채취는 해 뜨는 시간에 맞춰 시작된다"며 "볕을 쬐면 꽁꽁 얼었던 땅이 스스로 녹는다"고 했다.
1000평쯤 된다는 냉이밭 주변 여러 군데 불이 피워져 있었고, 일대 농가에서 모여든 130여 명이 1000평쯤 되는 냉이밭을 둘러싸고 앉아 냉이를 캐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나 결혼 이주 여성이 대부분인 작업자들이 냉이를 캐서 비닐 부대에 모으면, 관리직 남성들이 큼직한 플라스틱 통에 냉이를 모아 담았다.
엉덩이에 북처럼 생긴 깔방석(농작업용 의자)을 차고, 손에는 목장갑을 끼고 작업자들 옆에 앉아 냉이 캐기를 해봤다. 한 손에 쥔 괭이로 찍어서 흙을 헐겁게 한 다음 나머지 손으로 냉이를 뽑고 뿌리에 붙은 흙을 털어내기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다리와 허리였다. 살이 쪄서 그런지 아니면 익숙지 않아서인지 쪼그려 앉기가 힘들었다. 깔방석이 땅에 닿아야 몸을 지지해주는 동시에 체중을 덜어줘 덜 힘든데, 완전하게 쪼그려 앉지 못하고 엉거주춤 기합받는 자세로 냉이를 캐다 보니 허리와 다리가 고통이었다. 그렇다고 털썩 주저앉으면 무게중심이 뒤로 이동해 작업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어르신들 주문대로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몸이 익숙해졌는지 쭈그려 앉기가 조금씩 수월해지면서 허리와 다리도 덜 아팠다.
겨울다운 겨울 겪어야 향 좋고 연해
요즘 농산물 대부분이 하우스에서 나오지만 냉이는 여전히 노지에서 키운다. 감자나 양파를 수확하고 빈 밭에 8월 말~9월 초 냉이 씨앗을 뿌려서 11월부터 4월 전까지 수확한다. "냉이는 겨울이 겨울답게 추워야 향도 좋고 연하고 맛있쥬. 올겨울은 너무 따뜻해서 냉이가 덜 좋아유. 파종 시기에 태풍이 와서 종자가 많이 떠내려갔고, 가을비·겨울비가 자주 내려서 뿌리 흡착도 저조했구, 뿌리썩음병도 돌았구. 그래서 다른 해보다 흉년이쥬."
냉이 채취 작업은 오후 5시쯤 끝났다. 박 대표는 "한 사람이 8㎏씩, 총 1t 정도 수확했다"고 했다. 박 대표가 수확한 냉이를 트럭에 실어 홍성 갈산에 있는 영농조합 작업장으로 가져갔다.
맛과 향은 좋지만 흙이 씹혀서 냉이 먹기가 꺼려진다는 이들이 꽤 있다. 냉이를 캐보니 잔뿌리가 워낙 많다. 작업자들이 털어낸다고 털어내지만 흙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는 구조다. 그래서 세척에 신경 써야 한다.
압곡황토냉이영농조합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꼼꼼하게 세척한다. 우선 냉이를 물에 담가 일일이 손으로 헹군다. 이렇게 1차 세척을 마친 냉이는 다시 '버블 세척기'에 들어간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버블 세탁기'가 공기 방울을 이용해 옷에 낀 때를 빼준다면, 버블 세척기는 같은 원리 또는 기술로 냉이 뿌리와 줄기에 끼어있는 미세한 흙 입자를 제거한다.
이렇게 씻어 출하해도 완벽하달 수는 없으니, 집에서 먹을 때는 냉이를 물을 충분히 받아 담가두거나 흐르는 물로 씻어야 흙 씹을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
그 나물에 그 밥? 냉이김밥 말아봐요
냉이는 한약재로도 쓰일 만큼 몸에 이롭다. 특유의 쌉쌀한 맛은 사포닌 때문이다. 사포닌은 인삼의 주요 성분이다. 단백질 함량은 봄 채소 중 가장 많다. 비타민A, 비타민C, 칼슘도 풍부하다. "냉이 맛과 효능은 뿌리에 다 있쥬. 뿌리가 좋아야 해요. 크기가 적당해야 해요. 뿌리가 너무 굵고 길면 억세고, 얇고 어리면 향이 덜 나고." 등급이 따로 매겨지지는 않는다. 박 대표가 말하는 "적당한 크기"는 잎부터 뿌리까지 길이가 대략 손바닥을 가득 채우는 정도였다〈사진 참조〉.

냉이는 대개 나물로 무쳐 먹는다. 된장과 모시조개를 넣고 끓인 된장국은 봄 향기가 물씬하다. 소설가 김훈은 '남한산성'에서 냉이 된장국을 "겨우내 묵은 몸속으로 냉이 국물은 체액처럼 퍼져서 창자의 맨 끝을 적셨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경상도식으로 콩가루를 넣고 끓여도 맛나다. 냉이 캐던 어르신들은 "돼지고기나 소고기에 넣고 볶아도 좋고, 부침개로 지지거나 튀김을 해 먹어도 맛있다"고 했다. 김치를 담가도 별미다. 냉이를 액젓에 절이거나 살짝 데쳐 약간의 양념에 버무리면 끝이다.
샘표 우리맛연구팀은 '나물은 반드시 데치고 무쳐서 먹어야만 하나?'란 의문을 품었다. 데치고 끓이는 전통적인 '습열(濕熱)' 조리법 외에 볶기·굽기 등 '건열(乾熱)' 조리법과 갈기·절이기 등 '비가열' 조리법, 전자레인지 등 현대식 조리도구 활용 요리법을 두루 실험했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나물에서 새로운 맛과 향을 찾을 수 있었다. 냉이를 볶았더니 오징어 등 해산물 맛이 확 올라왔다. 프라이팬에 살짝 볶은 냉이에 참깨, 참기름, 연두 순으로 살짝 양념해 김밥을 만들면 색다른 별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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