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레이건, 문선명, 고르바초프
기록해야 역사가 되고, 기억해야 역사는 살아난다. 망각된 역사는 단지 일어난 일을 끼적거려 놓은 사초(史草)일 뿐이다. 그래서 E H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고, 씨알 함석헌은 “하늘의 뜻을 읽어내는 것이 산 역사이자, 참역사”라 했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를 펴내며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어디 미래뿐이랴. 역사를 잊으면 현재도, 나를 포함한 국민도, 국가도 존재할 수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위대한 인물들이 있다. 미국 40대 대통령을 지낸 로널드 레이건(1911∼2004), 세계적 비국가행위자인 종교지도자 문선명(1920∼2012),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1931∼)가 그들이다. 이외에도 조지 부시(1924~2018) 미국 41대 대통령과 박보희(1930~2019) 한국문화재단 총재, 초대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1931~2007) 같은 훌륭한 조력자가 있었다. 레이건, 문선명, 고르바초프와 이들은 여차하면 제3차 세계대전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냉전을 종식시켰다.
그 첫 계기는 1990년 4월11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고르바초프와 문선명 단독회담이다. 철두철미한 공산주의자였지만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펴던 고르바초프와 한때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가 테러 명령을 내릴 정도로 철두철미한 승공운동가인 문선명의 회담은 당시 미국 언론의 지적처럼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두 거두는 한·소 국교 정상화를 비롯해 소련의 한반도 평화통일 지지와 문선명·김일성 회담 주선, 한국의 유엔 가입, 소련의 종교자유 수용, 한·러 경제교류 등 불가능할 걸로 보였던 난제들을 일시에 합의했다. 실제 두 달 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첫 한·소 정상회담이 열렸고, 5개월 후 한·소 국교가 수립됐다. 이듬해엔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다. 문선명·김일성 회담도 성사됐다.
대통령 당선에 문선명의 결정적 지원을 받은 레이건은 은혜를 잊지 않고 취임하자마자 미국 수도에 워싱턴타임스(WT)를 인가했고,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한 후 WT가 줄기차게 주창한 전략방위구상(SDI)을 정책으로 수용하는 등 압도적 군사력 증강으로 고르바초프와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이끌어냈다. 마침내 무한으로 치닫던 냉전을 끝낸 것이다. 문선명과 레이건은 고도로 기획된 소련·동유럽 공산권 해체 시나리오를 완성한 셈이다. 물론 고르바초프의 호응으로 가능했다. 세 거인은 동기와 방법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70년 동안 인류를 억눌렀던 냉전체제를 종식시킨 주역이 됐다. 우리가 레이건, 문선명, 고르바초프를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조정진 논설위원 겸 통일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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