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타임머신 ② 1984년] 제대로 된 '리그'의 초석을 닦다
(베스트 일레븐)
한창 뜨거워야 할 피치가 아직 차갑게 식어 있다. 코로나19가 이 땅의 모든 축구를 식힌 탓이다. 덩달아 우리들의 가슴도 달궈지지 않아 서늘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언제고 다시 뜨거워질 K리그를 기다리며, 과거 <베스트 일레븐(월간 축구)>이 전한 기사와 함께 지난 37번의 시즌을 돌아봤다. 큰 이슈부터 작은 기록까지 가능하면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당시의 생생함을 전달하기 위해 잡지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사진으로 옮겼다. 아직 숨죽이고 있는 K리그를 기다리는 데 ‘K리그 타임머신’이 작은 보탬이 됐으면 싶다. / 편집자 주

1983년 출범한 한국 프로축구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평균 관중이 2만 명을 넘었으니 다른 부연은 필요 없지 싶다. ⓵편에서 언급했듯 많은 인기 비결 중에는 ‘경품’도 있었다. 특히 자동차 등을 경품으로 내건 대우 로얄즈의 홈경기에는 더 많은 팬이 몰리곤 했다. 그렇다 해도 프로축구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없었더라면, 평균 관중 2만 명을 유치하는 건 어려웠을 테다. 아직은 프로답지 못한 프로였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등장한 프로축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분명 뜨거웠다.
1984년엔 두 번째 프로축구 리그가 열렸다. 첫해에 얻은 폭발적 인기를 잇고, 2년 뒤로 다가온 1986 국제축구연맹(FIFA)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할 좋은 선수를 발굴하자란 또 다른 의미가 더해졌다. 한국 축구는 1954년 스위스에서 열린 제4회 월드컵에 출전한 후 계속 본선에 오르지 못하고 있었기에, 멕시코 월드컵 출전에 대한 관심은 실로 대단했다. 그런 국민적 관심을 프로축구까지 연결하자는 것이었다.
1984시즌은 몇 가지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일단 명칭이 바뀌었다. 수퍼리그에서 ‘축구 대제전 수퍼리그’로 바뀐 것인데, 이건 당시 시대상이 반영된 결과다. 외래어인 수퍼리그만 쓰는 데 정부를 비롯한 여러 유관 기관에서 거부감을 표시한 것이다. 이에 수퍼리그 앞에 축구 대제전이란 단어를 사용해 한글로 시작하는 명칭으로 바꿨다. 참가 팀 수도 늘었다. 기존 다섯 개 팀에다 세 개 팀이 더 참가했는데, 럭키금성 황소·현대 호랑이·한일은행 축구단이 가세하며 규모가 커졌다.
여러 변화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리그 제도의 변경이다. 1983년에는 단일 리그로 진행됐는데, 특정 지역에 모여 주말에 경기하는 형태였다. 이에 다섯 팀 중 세 팀은 토요일과 일요일 거푸 경기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경기력과 선수들의 컨디션은 떨어졌다. 그래서 1984년에는 전기와 후기로 리그를 나눴고, 경기 일수까지 늘리면서 이틀에 두 번 경기하는 폐단을 없앴다. 아울러 더 많은 골이 나오도록 승리 시 3점, 유득점 무승부 시 2점, 무득점 무승부 시 1점, 패배 시 0점으로 승점 제도도 손질했다.


전기 리그는 1984년 3월 31일부터 7월 22일까지 열렸다. 당시 여덟 팀은 다른 일곱 팀과 각각 두 번씩 경기를 치렀다. 전기 리그는 3파전 양상이었다. 원년 멤버 유공 코끼리와 대우가 각축을 벌였고, 여기에 신생 팀이지만 현대家의 자본을 등에 입은 현대 호랑이가 선전하며 3강을 형성했다. 할렐루야 독수리·럭키금성 황소·포항제철 돌핀스·한일은행 축구단이 4중이었고, 원년 멤버인 국민은행 까치는 최약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기 리그 챔피언은 유공이 차지했다. 유공은 탄탄한 수비력을 기반으로 승승장구했으며, 전반기 열린 14경기에서 9승 2무 3패 승점 31점의 우수한 성적으로 1위 자리에 올랐다. 2위는 유공에 승점 1점 모자란 승점 30점(9승 2무 3패)을 얻은 대우였는데, 똑같이 9승 2무 3패를 기록했지만 유공이 유득점 무승부를 2회 기록하는 바람에 1회에 그친 대우가 아쉽게 2위에 머물렀다.
7월 28일부터 11월 4일까지 열린 후기 리그에서는 대우가 1위를 차지하며 전기 리그 2위의 아쉬움을 털어 버렸다. 대우는 현대와 마지막까지 치열한 1위 다툼을 벌였고, 그 결과 승점 29점으로 승점 28점이었던 현대를 1점 차이로 따돌리고 정상에 깃발을 꽂았다. 후기 리그에서 유공은 승점 22점으로 5위에 그쳤다. 유공이 5위로 뚝 떨어진 건, 전기 리그 1위를 통해 이미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는 안도감이 가장 큰 이유로 작용했다.
전기 리그 1위 유공과 후기 리그 1위 대우의 챔피언 결정전은 11월 10일과 11일 이틀에 걸쳐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렸다. 챔피언 결정전이 리그에서도 안 하던 격일제로 열렸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어쨌든 두 차례 경기를 통해 나온 챔피언은 대우였다. 대우는 1차전에서 유공을 1-0으로 제압했고, 이튿날 열린 2차전에서는 1-1 무승부를 거두며 통합 1승 1무로 챔피언에 등극했다.


대우 우승의 일등 공신은 전년도에 할렐루야 소속으로 뛰며 도움왕을 차지한 박창선이었다. 당시 수퍼리그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한 박창선은 팀이 치른 28경기에 모두 출전하며 6득점 7도움이란 빼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당연히 시즌 MVP도 박창선의 몫이었다. 박창선은 팀이 어려울 때마다 구심역을 했으며, 팀 전체를 끈끈한 하나로 연결하며 2년 연속 감투를 쓰는 경사를 누렸다.
초대 박윤기에 이은 2회 득점왕은 백종철(현대)이 차지했다. 백종철은 28경기에서 16골(4도움)을 뽑아내는 폭발적 득점력을 뽐냈는데, 도움도 네 개나 기록하며 총 20개의 공격 포인트를 생산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도움왕은 외국인 선수 렌스베르겐(현대)의 몫이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렌스베르겐은 골도 아홉 개나 성공시키며 팔방미인다운 면모를 뽐냈다. 현대는 신생 팀이었음에도 전기와 후기 리그에서 모두 2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는데, 이는 득점왕 백종철과 도움왕 렌스베르겐을 중심으로 한 공격력의 덕이 컸다.
1984시즌이 끝난 후 선정된 베스트 11의 면모를 보면 화려하다. 골키퍼엔 유공의 전기 리그 우승을 수호한 오연교가 선정됐고, 수비진엔 직전 시즌 MVP에 올랐던 박성화(할렐루야)를 필두로 박경훈(포항제철)·정종수(유공)·정용환(대우)이 뽑혔다. 미드필더로는 현대를 이끈 허정무와 MVP 박창선, 마지막으로 신생 팀 럭키금성의 에이스 조영증이 선발됐다. 공격수 세 자리는 최순호(포항제철)·이태호(대우)·백종철(현대)의 몫이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1984년 베스트 11에 선정된 11명 중, 2년 뒤 열린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선수가 무려 아홉 명이나 됐다는 사실이다. 수비수 박성화와 공격수 백종철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돼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했다. ‘수퍼리그를 통해 우수한 선수를 발굴,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할 좋은 선수를 기르자’란 시즌 목표에 참으로 잘 부합했던 셈이다.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그래픽=박꽃송이(www.bestelev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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