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주는 여자, 윤여정..50년이 지나도 그녀를 애정 하 는 이 유

박찬은 2016. 10. 1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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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도 그녀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20대 초반이었던 자신의 모습을 더 오래 보고 싶은 걸까. ‘사탄의 여자’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에 수입된 <화녀>(1971)는 당시 국내 흥행 1위작으로 여러 번 리메이크됐다. ‘당돌하게 쏘아대는’ 특유의 말투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데뷔 50주년을 맞아 이곳 저곳에서 ‘윤여정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재용 감독의 신작 <죽여주는 여자>로 최근 실검 1위에 오르기도 한 그녀는 시종일관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솔직했고, 모두를 웃게 하면서도 꽉 찬 성찰로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죽여주는 여자>, <돈의 맛>, <여배우들>

▶데뷔 50주년 맞아 데뷔작 <화녀> 상영

<화녀>는 비틀거리는 카메라와 파격적인 미술, 김기영 감독의 컬트적 연출, 파국으로 치닫는 ‘명자’의 모습으로 대중이 윤여정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만들었다. 감독이 직접 페인트를 사와서 칠한 세트와 흰 쥐에 회색 칠을 해서 만든 쥐, 맥주병을 갈아서 찍은 필터 등 김기영 감독이 각본과 연출, 미술까지 모두 담당했던 <화녀>. 시골 출신 가정부 소녀와 주인집 남자의 불륜과 영아 살해, 사체 유기와 훼손 등 당시로서는 센세이셔널한 소재가 등장했다. 복수·살인의 중심에 서 있는 캐릭터로 한국 사회가 본 적 없는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준 윤여정은 (해외 영화제 출품에 대한 인식도 없던 그때)제4회 시체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유신이라는 시대 정황상 소위 ‘호스티스 영화’로 불리던 에로물이 판치던 당시 한국영화계에서 <화녀>는 최초의 컬트영화로 떠올랐다. 지난 10월4일에는 CGV에서 데뷔 50주년을 맞은 윤여정에 대한 특별전이 열렸다. 영화 데뷔작 <화녀>부터 이재용 감독의 뮤즈로 활약한 <여배우들>, <뒷담화:감독이 미쳤어요>, <죽여주는 여자>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최근작 상영 및 시네마톡이 진행됐다. 배우 임수정, <남극일기> 임필성 감독, 김홍준 감독 등 영화계 인사들이 많이 참석한 GV(관객과의 대화) 현장은 후끈했다. GV에 참여한 <남극일기> 임필성 감독은 ‘윤여정-김기영’ 감독의 관계를 영화 촬영 시 여배우와 몇 달간 매일 만나는 계약서를 쓴 동시대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을 예로 설명했고, 배우 임수정은 “너무 예쁘셔서 깜짝 놀랐고, 계단 내려오는 장면 등은 같은 배우로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었다”고 밝혔다. 윤여정은 <죽여주는 여자>로 몬트리올 판타지아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故김기영 연출 <화녀>

▶<죽여주는 여자> 흥행, 윤여정의 힘

CGV 특별상영전 외에도 지난 9월 윤여정 데뷔 50주년 특별전으로 <충녀><돈의 맛><바람난 가족><여배우들> 등이 상영된 데 이어 지난 10월 1일부터 3일까지 파주 명필름아트센터에서는 ‘배우 윤여정 특별 상영전’이 열렸다. <여배우들><뒷담화:감독이 미쳤어요>를 함께 한 이재용 감독과의 신작 <죽여주는 여자>는 ‘죽여주게’ 잘 한다고 소문난 소영이 죽고 싶어하는 노인들을 진짜 ‘죽여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제20회 몬트리올 판타지아영화제에서 각본상, 여우주연상 수상에 이어, 제17회 아시아티카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10월13일 현재 관객수 6만8000여 명을 돌파했다. 젊은 감독과 배우들, 대중이 그녀를 애정하는 이유를 <화녀>와 <죽여주는 여자> 시사회 현장에서 찾아봤다.

▷<죽여주는 여자> 소영은 성을 팔고, 죽음을 조력하는 역할입니다. 출연 결정 계기는 무엇인가요? 오래 알았던 이(재용) 감독이 시나리오를 보냈길래 “나보고 하라고 거냐” 그랬더니 “그러면 누구보고 하라고 보냈겠습니까?” 그래서 그냥 별 고민 없이 시작했어요. 나중에 후회는 했지만요(웃음). 감독이 노인, 빈곤, 코피노, 트랜스젠더 등의 소재를 자극적이지 않고 따뜻하게 그릴 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촬영하면서 후회했다’고 하셨는데, 어떤 순간에 그랬나요? 성매매 신 찍을 때죠. 이재용 감독은 디테일에 강한데, 보통 그런 신은 현장이 삼엄하고, 배우나 감독 모두 긴장합니다. 대본대로 했더니 감독님이 ‘주사를 놓을 때 공기가 빠져나가게 해야 한다’고 지적하길래 나중에 간호사들 보니까 맞더군요. 다시 찍었는데, 이번엔 ‘서비스를 하면서 리액션을 좀 봐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또 다시 찍었어요. 맞는 지적이지만 당시는 정말 막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습니다(웃음).

▷농약을 먹여 자살을 조력하는 신도 힘드셨을 것 같아요. 첫 번째 고객이 움직일 수 없는 중풍 환자 할아버지였는데 죽일 때의 마음, 죽인 후 리액션 때문에 감독님과 고민을 많이 했어요. 실제 성매매 여성들은 일당 3만원 중 1만원을 여관에 줘야 하는데, 그것마저 며칠에 한 번 벌어요. 소영은 자신의 아이를 입양 보냈을 때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성매매로 연명하지 않았을까요? 이 때, 어떤 사람이 죽여달라고 하면, ‘나도 당신처럼 죽고 싶었다. 나는 못 죽었지만 당신 마음 잘 안다’ 이런 심정 아닐까요? 상대 역인 전무송 씨도 리딩하면서 “이 여자는 천사야”라고 그랬어요. 아직 젊은 분들은 공감 못할 수 있지만 전 공감이 갔어요.

<죽여주는 여자>
▷한 인터뷰에서 ‘이제 잘 죽는 것에 대해서 고민한다’고 하셨는데요. 이제 칠순이기 때문에 죽음이란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백세시대가 과연 행복일까요. 물론 이 영화가 정답은 아니죠. 하지만 문제 제기를 하고 노인 빈곤이나 소외 문제를 공론화시키는 시작이 되었으면 합니다.

▷영화 데뷔작 <화녀>를 45년 만에 다시 보셨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귀엽네요, 하하. 어색하고 이상했어요. 몇십 년 만에 보니까 너무 무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내가 저렇게 연기를 못했구나, 싶고.

▷최무룡·남궁원 등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한 영화 데뷔작인데다 내용도 셌는데 출연 계기는? 당시 대부분의 영화는 사랑하다 죽거나, 삼각관계 등의 뻔한 시나리오였는데, 이 영화는 대본이 신선했어요. 계단에서 머리를 찧으며 쿵쿵 내려가는 <엑소시스트> 주인공 같은 신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너무 고생을 해서요, 하하. 김기영 감독님이 두 달 동안 매일 2시간씩 영화도 보여주고, 조언해주셨어요. 근데 그게 지겨워서 “30분 뒤 수영장 가자고 불러라”라고 이장희, 윤형주 같은 친구에게 부탁해서 도망도 갔죠. 촬영 거부하고, 민낯으로 찍고도 했는데, 감독님은 촬영 전 관찰한 제 손짓, 몸짓, 표정 같은 것들을 영화 찍을 때 디렉션으로 활용하시더라고요. 시체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고 어리둥절했지요.

▷윗니로 아랫입술을 깨물며 웃는 장면도 그렇게 탄생한 건가요? 그 외에도 많았는데, 그것도 제 버릇이었어요. 감독님이 이래라 저래라 하니까 제가 실제로 입술을 많이 깨물었대요. 그런 습관을 포착을 하신 거죠. 그 영화 찍고 습관을 고쳤습니다(웃음). V질 셀카 같은 것도 감독님이 시켜서 한 건데, 요즘 세대가 그런 것들 하는 거 보면 정말 감독님이 앞서가셨다 싶네요.

“성매매 신을 찍으며 굉장히 우울해졌죠. 배우는 감정노동자지만 그래도 겪지 않고 싶은 인생이 있어요. ‘부러 겪지 않아도 될, 모르고 죽었음 좋겠다 싶은’ 세상이 있지요. 죽지도, 죽이는 것도 안 겪어봐서 모르는 거잖아요. 이게 뭔가 했죠. ‘저 사람도 무슨 사정이 있을거야’ 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양반이에요. 노인 빈곤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고, 영화를 통해 그런 세상까지 알려주셨기 때문에 굉장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정서적으로도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신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쥐를 만지고, 고문을 당하고, 다리에 매달린 저를 남궁원 씨가 질질 끌고 계단을 내려가는 신은 도저히 못하겠다고 해서, 김기영 감독님이 대신 하셨어요. 영화 찍고 끝나면 감독님을 모른 척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김기영 감독(1998년 사망)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으시다고요?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는데, 굉장히 스마트하셨고 시대를 앞선 기인이셨어요. 농담도 많았고 촬영 안 한다고 할 때마다 연예인 가십을 하나씩 알려주면서 꼬셨죠. 영화가 워낙 파격적이라 아무도 투자를 안 하는데, 치과의사였던 부인이 “내가 이빨 뽑은 돈이 거기 다 들어갔어”라고 하셨죠(웃음). <화녀> 이후 피해 다니다가 당시 신성일 선생님보다 10만원을 더 주겠다고 출연한 것이 <화녀> 리메이크작인 <충녀>였습니다. <이어도>(1977) 촬영 시 방에 숨어 혼자 고기를 구워먹다 정일성 촬영감독한테 걸려 촬영이 중단된 이야기는 전설이죠. 김기영 감독님이 계속 “미스 윤이 사놓은 아파트가 많이 올랐는데 안 나올래?” 이런 식으로 미국으로 편지를 계속 쓰셨어요. 개인사가 복잡해지면서 활동을 많이 줄였는데, 생활이 곤궁할 때마다 꼭 연락을 주셨어요.

▷고현정, 이재용, 임상수 등 젊은 영화계 후배들이 따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1970년대는 부모님 약값을 마련하는 정도의 절박한 상황이 아니면 ‘하면 안되겠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영화 현장이 열악했어요. 당시에는 제작부장(프로듀서)들이 신성일 같은 인기배우를 다른 현장에서 주먹을 써서 뺏어오는 역할이었는데, 요즘은 너무 세련됐죠. 물론 이상한 PD, 감독도 있지만요(웃음). 타이밍인 것 같아요. 김(기영) 감독님한테 참 못되게 굴었었는데, 사죄하는 의미로 영화를 계속 하자, 생각했었죠. 그 친구들이 다 김기영 감독의 수혜자죠.

▶<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감독, 윤여정, 윤계상, 전무송, 안아주 외

-SYNOPSIS “나랑 연애하고 갈래요? 잘 해 드릴게”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65세의 ‘박카스 할머니’ 소영. 노인들 사이에서는 ‘죽여주게 잘 하는’ 여자로 입 소문을 얻으며 박카스들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트랜스젠더인 집주인 티나(안아주), 장애를 가진 가난한 성인 피규어 작가 도훈(윤계상), 성병 치료차 들른 병원에서 만나 무작정 데려온 코피노 소년 민호 등 이웃들과 함께 힘들지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소영. 한 때 자신의 단골 고객이자, 뇌졸중으로 쓰러진 송 노인으로부터 자신을 죽여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받고 죄책감과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다 그를 진짜 ‘죽여주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은 고객들의 부탁이 이어지고, 소영은 더 깊은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글 박찬은 기자 사진 CGV아트하우스, 명필름아트센터, 영화스틸컷]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50호 (16.10.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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