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25> 아이 낳은 걸 후회하시나요?

“둘째 낳지 말고 엄마 인생에 집중하면서 살아요.”
앞서 다둥이 엄마가 된 여성들은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절실함을 담아 조언했고, 친정 엄마는 “혼자서도 무탈하게 잘 큰다”며 딸의 인생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나는 “둘째는 언제 낳을 거냐”는 재촉에 시달릴 줄 알았는데 반대로 ‘1자녀 예찬’을 들으며 지내고 있다.
이런 예찬을 펴는 여성들은 “나만의 삶을 찾고 싶다”고 했다. 이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면 조심스럽게 “차라리 아이를 낳지 말걸…”이라는 후회를 내비쳤다. “아이는 사랑스럽지만 지금 나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결혼하지 말걸’ 하고 후회한 적은 있어도 ‘아이를 낳지 말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철저히 부부가 원해서 만난 아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이 아이가 없는 삶은 이제 상상할 수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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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 제공 |
‘차라리 낳지 말걸’이라며 후회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건 불만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건 ‘불안’이었다. 출산을 통해 우리는 삶의 엄청난 보물을 얻지만 동시에 자유를 빼앗긴다. 지금 나는 극장에서 영화보기, 집에서 책 읽기, 자고 싶을 때 잠들기 등을 깊이 소망하면서 살고 있다. 출산 전에는 퇴근 후 마음껏 빈둥거렸는데 지난 20개월 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느껴본 적이 없다. 이런 건 불편이지 불안이 아니었기에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출산과 육아로 인해 삶의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경우는 어떠할까. 전업주부에 대한 시선 중 하나가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편하게 지내지 않냐”는 말인데 내 주변을 보면 전업주부의 삶도 평안해보이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다시 공부하거나 준비해서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싶다”,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나면 난 뭘해야 하나”, “빠듯한 외벌이로 애들 뒷바라지하고 나면 노후 대비는 어떡하나”,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만 살면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생각에 불안해하는 엄마들로부터 ‘아이 낳은 걸 후회한다. 왜 애를 많이 낳아서 가족 모두를 힘들게 만들었을까’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경제적 여유가 없을수록 더욱 그랬다. 정부에서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재교육과 일자리 연계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한 사람의 사회적 위치는 대부분 20, 30대에 결정된다. 육아에 전념하는 시기랑 겹친다.
출산 때문에 직장을 떠나야 했다면 나 역시 후회를 모르고 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애를 왜 낳아가지고’라는 마음이 들 때마다 그 마음을 퍽퍽 때려서 보이지 않게 구겨버리겠지만 어느날 문득 떠오르는 답답함에 한숨을 쉬었을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출산을 후회하는 마음은 쉽게 내보일 수 없는 금기와 같다. 자신의 선택으로 돌봄이 필요한 생명을 낳았다는 점에서 지지받지 못한다. ‘저런 마음으로 아이를 학대하는 거 아닐까’라는 의심만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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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와 아이, 행복한 만남이 아닐 수도 있다. 인디펜던트 캡처 |
최근 영국 인디펜던트에서 실시한 ‘아이를 낳은 걸 후회하시나요?’ 여론조사에서는 4496명 중 9%(404명)가 ‘부모가 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부모가 되어서 좋다’는 답변이 27%로 3배 높았지만 10명 중 1명이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때로 후회하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지낸다’는 사람은 2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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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낳은 걸 후회하시나요?’라는 주제로 실시된 영국 인디펜던트 여론조사. 4496명의 9%가 ‘부모가 된 걸 후회한다’고 답했다. 인디펜던트 캡처 |
주변 사람들을 보면 개인의 못난 부분으로 인한 하소연, 푸념, 징징거림이 아니라 노후 불안, 경력단절에 따른 욕구불만, 경제적 어려움이 출산을 후회하는 마음을 구성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의 문제와 맞물리는 부분이다. 사회안전망 확충 등 개선 없이 개인의 노력과 정신 승리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여러가지 방안이 뒤따라야 하지만 우선 우리 사회에도 토로하고 공감하고 조언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좋겠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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