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동의 사람·사이-박정우 ㅣ 영화 '판도라' 감독]"과장된 허구?..원전 최대 밀집지 영남, 사고 터지면 현실은 그 이상"

서의동 선임기자 2016. 12. 2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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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박정우 감독이 지난 16일 경기 분당의 작업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 감독은 “되도록 많은 분들이 영화를 통해 ‘원전 현실’을 알게 되면서 그로 인해 원전정책이 바뀌게 된다면 스스로를 대견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핵연료는 늘 찬물에 잠겨 있어야 한다. 열을 식히지 않으면 핵반응이 과도하게 이뤄지면서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멜트다운(melt down)’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핵은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나 폭주한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2011년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도 전원이 끊겨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자멜트다운이 시작됐다. 88시간 만에 원전 건물 3곳이 수소 폭발로 무너지고 방사성물질이 대량 누출되는 대참사로 이어졌다. 도쿄특파원으로 파견되자마자 겪게 된 원전사고는 특파원 임기가 끝날 때까지 3년 내내 매달려야 했던 주된 취재 대상이었다. 거주하던 도쿄 일부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된 데다 몇 차례 현지 취재를 하느라 ‘혹시 피폭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한동안 뇌리에 남아 있었다.

영화 의 한 장면.

영화 <판도라>는 세계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인 영남권에서 ‘멜트다운’이 발생할 경우 피해 규모가 후쿠시마의 수십배에 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후쿠시마 원전 반경 30㎞ 이내 거주 인구는 17만명이지만 고리원전 반경 30㎞에는 22배인 380만명이 밀집해 있다. 지난 9월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강진은 영화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에 질감을 불어넣는다.

<판도라>는 12월7일 개봉 이래 2주간 예매율 1위를 달렸다. 지진을 겪은 영남권 관객들의 반응이 특히 뜨겁다. ‘투표 독려하듯’ 타지 친·인척들에게 ‘꼭 보라’는 전화를 돌린다고 한다. 페이스북에는 눈물 젖은 휴지 인증샷이 올라온다. 사고 자체의 참상뿐 아니라 현실을 압축한 장면들이 눈물샘을 자극한다. 사고 대응에 우왕좌왕하는 정부, 주민들을 체육관에 몰아넣고 문을 잠근 뒤 내빼는 경찰, 피폭 위험에 내몰리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박정우 감독(47)을 지난 16일 작업실인 분당의 한 오피스텔에서 만났다. 박 감독은 “영화가 과장됐다는 분들도 있지만 현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라며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 지역이라 대피도 불가능한 현실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 “원전업계 두루 만나 취재했다”

- 영화가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출장도 많이 다니던데.

“동남권 관객 반응이 뜨겁다. 울산의 관객수가 전국 1위다. 지역 시민단체들이 극장을 빌려 시사회를 하니 참석해달라는 요청이 많다. 일본 후쿠시마 주민이 어떻게 알고 시사회(12월4일)를 찾아왔다. 영화 내내 거의 통곡을 하더니 ‘일본에선 만들 수 없는 영화를 만들어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 자료 조사는 어떻게 했나.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관련 서적들을 섭렵했고,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으로 계신 김익중 동국대 교수의 자문을 받았다. 원전 설계 담당자, 원전 하청기업 직원, 원전에서 근무하다 투병 중인 노동자들도 만났다. 고리 1호기와 똑같이 지어진 필리핀 바탄 원전도 현지를 방문해 자료를 수집했다.”

- 업계 관계자들 만나보니 어떻던가.

“발전소 설계 관계자는 ‘100% 안전하다’고 하다가 마지막에 ‘정말로 안전하냐’고 물으니 ‘설계도대로 지어졌다면’이라고 단서를 달더라. 하청기업 직원들은 대부분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일한다. 탱크 안을 닦으라고 해서 닦았는데 고농도 방사능인 원자로 냉각수란 걸 나중에 알게 되는 식이다. 영화가 과장이란 비판도 있지만 현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크고 작은 사고가 부지기수다.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를 오래 담아둬 부식된 드럼통을 기중기로 잡아 올리다가 드럼통 상단이 뜯어져 열려버린 사고가 나자 전 직원이 다 도망갔다. 수습 작업을 한 하청업체 노동자는 결국 피폭됐다고 한다.”

- 원전에 근무했던 지인은 원전 공사 당시 공기가 촉박해 철근을 기준치대로 넣지 않고 남은 철근을 부지에 묻어버린 일도 있다고 전한다.

“고리원전이 지어지던 1970년대에는 공사가 정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내진설계 기준이 규모 6.5라지만 지진이 그 이하로만 난다는 보장도 없다.”

박 감독은 영화 촬영 때 첫 일성으로 “진짜 원전이 폭발한 것처럼 리얼리티를 살려야 한다”고 스태프에게 강조했다. 시나리오 작가로도 인정을 받아오긴 했지만 워낙 민감한 주제인 만큼 ‘까일’ 빌미를 주지 않으려 각별히 신경 썼다고 한다.

■ 멜트다운되면 ‘완전 복구’는 불가능

- 영화에서는 사고 이후 주민들이 대피하는데 도로가 꽉 막혀 옴짝달싹 못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시나리오 쓸 때 사고 대응 시스템을 살펴봤는데 ‘사고가 안 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듯 허술했다. 고리원전은 비상시 대피 루트가 31번 국도 외길이어서 제때 대피도 어렵다.”

- 영화에서 사고가 나자 정부는 일단 은폐하고 본다. 후쿠시마 원전도 첫날 멜트다운이 시작됐지만 일본 정부는 한 달이 넘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한번 멜트다운이 되면 그 이후는 무의미한 과정이다. 원전사고는 ‘완전 복구’가 없다. 일본에선 ‘결사대가 수습을 위해 사투를 벌였다’고 미화하지만 그렇다고 사고가 완전히 수습된 건 아니지 않은가. 지금도 방사성물질은 계속 배출되고 있다. 제염(除染)을 한다지만 지표면의 흙을 긁어내 쌓아두고 있을 뿐이다.”

- 일본의 경우 고압 살수기로 건물을 씻어내는데 콘크리트의 미세 구멍에 방사성물질이 한번 들어가면 잘 나오지 않는다. 건물 청소를 해도 나무와 숲에 방사성물질이 그대로 남아 바람이 불면 날아온다.

“원자력을 컨트롤할 역량이 안된 상태에서 후세에 통제기술이 개발될 것으로 막연히 기대하면서 일단 돌리기 시작한 거다. 하지만 아직 그런 기술은 완성되지 않았다. 이를 솔직히 인정해야 하는데 무책임하게 계속 지어댄다.”

- 제작 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차피 정진영 선배(현장소장 평섭 역)가 하도 떠들고 다니니(웃음). 큰돈 드는 영화인데 정부에 ‘미운털 박힐’ 위험을 감수할 투자자는 없을 테니 헛고생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공부한 게 아까워 일단 책(시나리오)은 써놓고 좋은 세상 오길 기다리자는 심정이었다. 혹시나 해 책을 투자사들에 돌렸는데 뜻밖에 ‘영화 하는 사람들이 이런 건 해야지’ 하는 반응이더라. 이런 이슈가 오히려 상업적 흥행요소가 있다고 본 거 같다. <판도라> 투자사인 NEW는 <변호인>으로 정부에 당해봐서 그런지 면역력이 있고 노하우도 있었다. 회사 내 의견이 반반으로 갈렸는데 대표가 하루 더 고민한 뒤 결심했다더라. 보통은 ‘○○ 창업투자’ 같은 모태펀드가 일부를 맡는데 안 들어왔다. 대충 감은 잡았다. 결국 NEW가 모든 돈을 대서 출발했다.”

- 촬영 섭외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고리원전 1호기 근처 마을을 섭외했는데 촬영이 임박해 ‘안된다’고 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서 압력이 들어갔던 모양이다. 원전 마을은 강원도 고성에서 촬영했고, 원자로는 춘천에 4층 높이까지 실제로 지은 뒤 상단부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했다. 폐연료봉 저장수조는 광주광역시 세트장에 지었다. 부산역 플랫폼, 여객선 선착장, 인천공항 로비 장면은 각각 꼬박 하루 걸려 찍었다.”

- 한수원은 영화 제작을 미리 알았나.

“어차피 알 것이니 협조도 받을 겸 미리 말해두려 했는데 벌써 알고 있더라.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청와대도 미리 알았다더라. 한수원은 ‘설마 진짜 찍겠느냐’ 싶었던 것 같다. 도중에 ‘맘껏 찍도록 지원할 테니 원전 안전하다는 영화 할 생각 없느냐’고 하더니 마지막엔 ‘원자로 폭발만 빼달라’고 하더라.”

- 영화 만들면서 심적 부담이 컸겠다.

“사찰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미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았나.) 그건 귀여운 수준이다. 영화 시작하면서 법률 자문을 많이 받았다. 시나리오도 문제 소지가 없는지 체크받고, 영화 속 지명도 바꿀 건 바꾸고. 계좌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이렇게까지 해서 찍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반골 기질이 발동하더라.”

- 영화에서는 “원전 밸브가 3만개, 배관 길이는 170㎞라 40년이 지나면 모든 부식을 파악할 수 없다”는 현장소장 발언이 나온다. 한수원은 밸브와 배관은 정기검사를 하고 모든 설비는 식별 고유번호가 있어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영화의 사고 원인을 두고 ‘맞다 안 맞다’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다른 원인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후 원전에서 가장 위험한 건 증기발생기다. 원자로에서 끓은 물이 증기발생기를 거쳐 터빈을 돌리는데, 오래되면 방사능에 부식돼 충격에 깨질 수 있다. 그런 트러블도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가능성이 0%가 아니면 언제든 사고는 날 수 있다. 김익중 교수도 ‘과학적 타당성이 낮다는 지적은 심야 토론을 해서라도 반론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 배 하나도 못 구하는데 원전 터지면…

박 감독은 사람들이 원전 현실을 너무 모르는 데 새삼 놀랐다고 했다. 고리 1호기가 부산에 있지만 부산 사람들조차 어디 있는지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마지막에 ‘한국이 원전 밀집도 세계 1위이고 전체 원전 단지 반경 30㎞ 이내에 9개의 광역자치단체와 28개의 기초자치단체가 밀접해 있다’는 자막이 등장하는데 이런 사실을 처음 접하고 충격받았다는 관객들도 꽤 있었다.

- 관객들과 대화를 많이 했을 텐데 어떤 반응들이 많은가.

“영화를 본 관객들은 정부의 무능, 원전 운영의 허술함이 영화보다 더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바닥인 거다. 배 하나도 못 구하는데 원자로가 터지면 어떻게 수습하겠나. 물론 원전 종사자들은 자부심을 갖고 일하실 거다. 하지만 ‘안전을 더 챙겨야 한다’는 게 영화의 메시지다.”

- 원자로 폭발 이후 응급조치까지가 영화의 스토리지만 원전사고는 그걸로 끝이 아니다. 폐로기술도 채 확립되지 않았고 막대한 비용이 든다. 방사능 오염 제거, 핵연료의 안전한 처리 등 끝이 안 보인다. ‘값싼 에너지’ 논리는 이를 외면한다.

“영화를 통해 노후 원전의 사고 위험성과 함께 사용후 핵연료의 부실한 관리를 부각시키고자 했다. 그런데 ‘끝이 없다’는 식으로 만들면 관객들이 ‘이건 뭐냐, 절망 아니냐’는 마음이 들 거 같았다. 되도록 많은 분들이 봐야 힘이 되니 상업영화 틀 안에서 풀어나갔다. 좌절하는 대신에 ‘가족들 생각해서라도 사고는 무조건 막아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시라고 ‘가족애 장면’도 넣었다. 신파라고 욕먹긴 했지만.”

<판도라>는 직유법으로 한국의 현실을 드러낸다. 사고가 심각해지자 방송에 나온 전문가가 ‘나라를 빨리 떠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탈조선)고 한다. 총리(이경영 분)는 ‘개나 소나 마음대로 지껄인다’(‘민중은 개·돼지’ 발언파동)며 화를 낸다. 주민들을 체육관에 몰아넣고 문을 잠근 것은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 사고와 판박이다. 주인공 재혁(김남길 분)이 “위험하다 할 땐 안 듣다가 사고 나면 은폐한다. 마지막 수습은 국민, 그것도 맨 밑바닥 사람에게 맡긴다”고 한탄하는 장면은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19세 외주업체 직원을 떠올리게 한다.

- 영화의 여러 장면들이 지금의 현실과 닮아 있다.

“우리 사회는 어느 때부턴가 인명을 경시하게 됐다. 지도자들이 국민 안전 소중한 걸 알면 원전을 절대 저렇게 지을 수 없다. 국민을 인격체가 아니라 ‘머릿수’로 보는 거다. 사고방식의 일대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시민 수준이 높아졌으니 스스로 깨달아 운동을 벌여야 한다.”

<판도라>가 개봉하자 신규 원전 예정지로 결정된 강원 삼척시와 고리원전이 있는 부산시의 공무원들, 원전정책을 맡은 산업통상자원부 고위공무원들이 영화를 관람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등도 영화를 보고 원전정책의 재검토를 강조했다.

- ‘반핵 운동가들이 계속 주장해왔지만 실감하기 어려웠던 우려가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는 평가도 있다.

“‘가르치려 든다’고 욕먹더라도 ‘잘사는 것보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신파조’라거나 ‘설명조’라는) 비판은 감수할 수 있다. 다만 ‘우리 원전 현실이 이렇구나’라는 걸 되도록 많은 분들이 알게 돼 원전정책의 방향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면 스스로를 대견해할 거다.”

<서의동 선임기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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