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의세계,세계인] 막말과 독설 난무하는 세상

“두뇌가 없으니 입 닥쳐라.” 뒷골목 조폭의 언사가 아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발언이다. 대상은 자이드 라드 알후세인 유엔인권최고대표다. 마약과의 유혈전쟁을 추진하고 있는 필리핀의 상황에 유엔 인권수장이 개입하면서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과거 시장 재직 시 범죄 용의자 3명을 직접 죽였다고 밝히자, 자이드 최고대표는 필리핀 사법당국에 대통령에 대한 살인 혐의 조사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분노한 대통령이 유엔을 공격한 것이다.
2016년만큼 정치인의 막말이 세계 언론을 장식한 적은 없었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의 막말도 도를 넘었다. “중국이 미국을 계속 강간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여자를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할 곳은 창녀촌밖에 없다.” 특정 국가, 종교, 여성 등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대중은 이런 막말에 열광한다. 기존의 점잖은 정치인이 못했던 ‘가려운 곳 긁어주기’를 적극적으로 해주기 때문이다. 두테르테의 최근 지지율은 78%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됐다.
막말은 ‘마지막 말’의 준말이다. 뒤에 반박의 여유조차 주지 않는 말이다. 상대를 전혀 배려치 않기에 답하기도 싫은 말이다. 보통 사람의 수준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성과 논리를 찾을 수 없다. 욕설 수준인 것이다. 최근 마초주의 남성 정치인은 대중의 불만과 혐오를 동력으로 삼으며 막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무기력한 소수 기득권층이 주도하던 정치판에 피로감을 느끼는 대중에게 무언가 다른 것을 보여준다는 방식이 막말인 것이다.
막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배경에는 정보통신의 발달이 있다. 24시간 뉴스 및 토론 채널, 인터넷, 스마트폰 등을 통해 단어 한 마디가 순식간에 확산한다. 좋은 평판이 나쁜 평판보다 낫지만, 나쁜 평판이라도 평판이 전혀 없는 것보다 나은 시대가 된 것이다. 윤리보다는 관심이 더 정치경제적 득이 될 수도 있는 21세기 정보통신 시대다. 국민의 표를 받아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에게 유혹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로 ‘성공적인’ 사례가 세계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막말과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는 있지만 표현 방식이 약간 다른 독설도 있다. 사전적으로 독설은 남을 해치거나 비방하는 모질고 악독스러운 말이다. 그러나 독설은 나름 논리를 가진다. 영어 사전에도 막말은 험한 말인 반면, 독설은 악의적인 혹은 독을 품은 발언이다. 독설도 분명 나쁜 정치적 의도를 가질 수 있지만, 논리적인 공격적 발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타깝게도 독설보다는 막말이 더 회자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몸에 좋은 약처럼 쓴 독설가의 논평보다는 인기를 위해 혹은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막말에 더 귀 기울인다. ‘타 죽고 싶나’, ‘혁명’ 등을 언급하는 정치인, 욕설을 내뱉는 연예인 등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이성과 논리가 아닌 감정과 선동을 위한 막말이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된다. 더욱이 익명성의 공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더 심한 막말과 욕설이 난무한다. 막말 방지를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고 법적 장치도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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