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시간여행] [43] 60년대 강도·폭력배, 선글라스 애용.. 당국 "경찰은 근무 중 색안경 끼지 말라"
"모든 경찰관은 근무 중 선글라스를 끼지 말라". 서울시경찰국이 1962년 5월 26일 내린 지시다. 시민에게 위압적이고 좋지 못한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다만 교통경찰관과 특수 수사 요원들은 예외로 착용할 수 있게 했다. 이로부터 7년 뒤엔 교통경찰관까지도 위반자 단속 땐 선글라스를 벗으라는 지시가 추가됐다. 이렇듯 국내 보급 초창기 선글라스엔 '비호감' 이미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1950년대까지도 국내에서 선글라스를 패션 소품으로 쓴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수사기관원이나 범죄자가 얼굴을 가리려고 쓰는 물건처럼 여겨졌다. 특히 강도에게 검은 복면과 검은 선글라스는 환상의 궁합 같았다. 1960년부터 1963년 사이에 선글라스를 끼고 저지른 강도·폭행 사건은 보도된 것만 11건이나 된다. 1960년 '3·15 부정선거' 때 울산에서는 군복 차림에 선글라스를 낀 괴한 8명이 야당 선거운동원을 집단 폭행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까만 색안경은 1960년대 들어 한국 멋쟁이의 액세서리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신문은 "프로페셔널한 어느 직업 여성들만이 사용하였지, 여염집 부녀자들은 거의 쓰지 않던 선글라스가 1961년쯤부터 일반화됐다"고 썼다(조선일보 1962년 6월 6일자). 선글라스란 자외선 차단용 액세서리만이 아니라 '표정 차단 액세서리'이기도 하다. 감정 표출의 중요한 수단인 두 눈을 가려줘 상대방에게 위압적이거나 신비한 느낌을 준다. 6세기쯤 중국에서 유리알을 검댕으로 그을려 처음 만들었다는 투박한 검정 안경도 법정에서 재판관이 표정을 감추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 멋내기 소품으로 아무리 유행해도, 새카만 유리알의 거만하고 어두운 느낌이 하루아침에 날아갈 리 없었다. 1968년 6월 21일 서울시경의 '폭력배 일제 소탕 작전' 땐 22세 청년이 단지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는 이유로 폭력 우범자 의심을 받아 연행됐다. 이날 또 다른 청년은 '인상이 험악하다'고 끌려갔고, 남자 친구와 걸어가던 여대생은 '학교에 가지 않고 데이트를 했다'는 이유로 연행됐으니 선글라스가 의심을 받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 시기 신문에서 선글라스에 관한 비판론이나 주의 사항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색안경을 썼을 때 모자를 깊이 눌러쓰지 않도록 하라. 깡패로 오인되기 쉽다"거나 "연장자 앞에선 색안경을 슬쩍 벗는 것이 에티켓"이라는 충고가 보인다. 신문 칼럼은 선글라스 패션 자체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서울 여인들 간에 열풍처럼 번지고 있는 색안경 취미는 기껏 좋게 보아 자기 과시의 욕구이거나 열등감의 발로"라고 썼다.
오늘날 선글라스란 위압적인 치장도, 오만함의 표현도 아니다. 멋과 개성을 표현하는 소도구일 뿐이다. 지금 국정을 농단하다 구속돼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한 여성은 과거 촬영된 여러 사진에서 선글라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착용하지 않을 땐 머리에 얹고 다녔다. 그냥 멋으로 쓴 것일 수도 있겠지만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자기 과시욕의 표현일까, 얼굴빛을 감추려는 수단이었을까.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나 벌어졌던 구악들을 21세기 한국에서 저지르며, 시곗바늘을 반세기 전으로 돌려놓았던 그녀가 선글라스의 옛추억을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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