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 Story >'한국인보다 더 한국 사랑한 마음'이 遺産.. 6代까지 이어져와

김수민 기자 2016. 10. 1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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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득한(앞줄 왼쪽 세 번째) 전 서울외국인학교 교장 등 언더우드 선교사의 후손들이 지난 12일 연세대 언더우드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2·3·4代, 延大서 교편 이어

거북선 복원 - 민주화운동도

5·6代 “내 고향은 대한민국”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한국명 원두우·1859∼1916) 사망 100주년을 맞아 지난 11일 열린 연세신학공개강좌 ‘언더우드의 유산’에서 손자인 원득한 전 서울외국인학교 교장은 “할아버지의 유산은 조선인보다 더 조선을 사랑한 그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언더우드가(家)의 한국 사랑은 5대, 6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언더우드 사망 100주년 행사에는 모두 28명의 언더우드 후손이 모였다.

구한말 선교활동을 펼쳤던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는 역사교과서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언더우드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국립 서양의료기관인 제중원에서 호러스 알렌을 돕다가 정동의 가옥 한 채를 빌려 고아들을 가르쳤다. 이 교육시설이 나중에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오늘날의 연세대가 됐다.

언더우드는 기독교청년회(YMCA) 초대 회장을 맡아 청년 운동의 불씨를 지피는 한편, 한영사전 편찬 등 한반도 근대화를 위해 힘썼다. 그는 명성황후의 시의로 일하던 제중원 여의사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와 결혼해 이듬해 아들 호러스 호턴 언더우드(한국명 원한경·1890∼1951) 박사를 낳았다.

언더우드 2대인 원한경 박사는 아버지를 이어 연희전문학교 교장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3·1운동, 제암리 사건을 알리는 일에 힘쓰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거북선 선체에 노 구멍을 뚫어 서양식 노를 젓는 방식의 거북선 복원도를 제시하는 등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흔히 보는 거북선 모형은 대개 이를 따르고 있다.

3대에도 한국 사랑은 계속됐다. 원한경 박사의 4남 1녀 중 3명의 아들(일한·재한·득한)이 6·25전쟁에 참전했다. 그중 장남인 원일한 박사는 연희전문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일제의 기독교 탄압으로 인해 강제 추방당했다. 또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해외에 알리다 강제 추방된 뒤 전두환 정권 실각 후 복권돼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내 비록 미국인이지만 내 몸속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말은 원일한 박사의 어록 1호다. 그는 연세대 영문학과 교수, 재단이사, 한미협회 부회장, 대한성공회 이사 등을 지냈다.

4대로는 원일한 박사의 장남 원한광 박사가 연세대 영어영문학과에서 30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인의 영어교육론에 대해 연구했으며, 한미교육위원단장을 역임했다. ‘퍼스트 무버’ 등의 저자로도 잘 알려진 3남 원한석 씨는 한국에서 경영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추천했다고 알려져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언더우드가 5대, 6대의 페이스북에는 고향을 ‘SOUTH KOREA’라고 표시한 이도 많다는 후문이다.

김수민 기자 human8@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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