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일간의 세계여행] 121. 붉은 메디나..푸른 마조렐 정원..까만 모로코의 밤

2016. 8. 12. 09:3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여행을 떠나기 전에 모로코에 대한 정보는 심난할 지경이었다. 모로코 남자들이 외국인 여자들을 쳐다보는 강도는 너무 심하고, 모로코 사람들은 사진 찍히는 것에 극도로 예민하다고 했다. 카메라에 영혼을 빼앗긴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모로코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찍어온 생명체는 길가의 고양이였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마라케시는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날마다 사람들이 모이는 제마엘프나 광장에는 외국인 여자를 빤히 쳐다보는 남자도, 사진을 찍는다고 화내는 여자도 없다. 여행자들과 모로코인들로 가득한 제마엘프나는 전통과 문화가 살아숨쉬는 활기찬 광장일 뿐이다. 


붉은 도시 마라케시의 메디나를 걷다가 ‘환영합니다’를 여러 언어로 적어놓은 담벼락만 봐도 모로코가 융통성 없는 나라로 느껴지지 않는다. 겨우 여행 사흘째지만 막상 모로코에서의 체감온도는 그리 차갑지 않다. 워낙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내가 다가가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진 찍기를 안 해서인지 아직까지는 카메라에 제지를 받지는 않았다. 그동안 모로코의 상황이 변했을 수도 있고 외딴 지역에서는 그런 일들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소문보다는 관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맞다.


사막에 가까운 마라케시의 건물들은 붉은색이 많다. 메디나를 걸어 바이아 궁전(Palais de la Bahia)으로 가는 길이다. 정교한 세라믹 타일로 장식된 객실이 겨우 1900년에 완공된,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은 건물이라는 게 놀랍다. 중세 건축물인 줄 알았는데, 근대 모로코의 건축미와 정원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궁전이다. 타일을 입힌 벽과 바닥이 예쁘고, 팔각형의 분수와 오렌지 나무가 무성한 안뜰도 있다. 특색 있는 분위기의 정원들이 관광객을 매료시킨다. 사하라 사막에서 스페인까지 지배하던 번성한 시절의 자취가 이런 아름다운 건축물로 남았다.


바이아 궁전을 나와 골목을 걷는다. 메디나를 걷다 보면 생각지 못한 색감이 툭 튀어나와 카메라를 들게 한다. 마라케시에서는 어디에 눈길을 두어도 활기찬 원색의 향연이다. 발걸음은 엘 바디 궁전(Palace el Badii)으로 향한다.
이 궁전의 이름은 ‘비견할 수 없는’이라는 뜻으로, 알라에게 바쳐진 아흔아홉 개의 명칭 중 하나이다. 이름만 보아도 알겠지만 거의 전설에 가까울 정도로 호화롭다. 이탈리아산 대리석, 인도산 마노, 아일랜드산 화강암에 수단에서 들여온 금박이 360개 방의 표면을 덮고 있다.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의 무어 양식 설계를 기본으로 한 엘 바디 궁전은 술탄 아흐메드 엘-만수르가 1578년 크사르 엘-케비르에서 ‘삼왕(三王) 전투’를 승리한 직후 술탄의 명으로 세워졌다. 건축 비용의 일부는 전투에서 포로로 잡은 포르투갈 귀족들의 몸값으로 충당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직도 어떤 바닥에는 섬세한 타일이 남아있기도 하지만, 사상 최고의 장관이라던 엘바디 궁전은 기둥과 벽만 간신히 남아 있다. 텁텁하고 건조한 바람만 불어오는 궁터에는 관광객도 별로 없다. 마라케시에 오지 않았다면 미처 알지 못했을 엘 바디 궁전이다. 그렇게 준비 없이 방문한 이방인의 눈에는 이국적인 오아시스 마을의 붉은 궁터일 뿐이다.
황량한 궁전 한쪽 건물에 마련된 전시장에서는 마침 현존하는 최고의 사진작가 돈 맥컬린(Don McCullin)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사실적인 사진들이 발걸음을 붙든다. 진실을 담아 메시지를 전하는 그의 사진 앞에 선다. 사하라 사막의 바람이 불어오는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돈 맥컬린의 멋진 전시회를 우연히 관람한다.


엘 바디 궁전에서 메디나의 거리를 조망하고 나오니 시간이 한참 지났다. 정신없는 수크의 미로 같은 길과 제마엘프나 광장의 번잡함의 뒤안길에는 오아시스 마을로 번성한 마라케시의 역사가 숨어 있었다.
좁은 골목을 더듬어 찾아간 다르 시 사이드(Dar Si Said)는 원래 궁전이었다가 나중에는 사이드라는 관리가 살던 집으로, 지금은 박물관이다. 이곳 역시 정교한 타일과 팔각형의 분수를 포함해 모자이크 무늬의 벽과 천정이 아름답다. 주택의 문, 칼과 총, 냄비, 악기 등 민속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절의 유적인데도 유구한 세월이 지난 듯하다. 그만큼 타일의 세공기술이나 건축방법에 전통이 살아있는 것이리라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이것으로 메디나의 궁전 투어는 끝난다. 다르 시 사이드에서 수크를 따라 나와보니, 이곳에도 노점이 모여 있다. 바구니며, 가방, 낙타 인형 같은 수제품이 놓여있기도 하고 알록달록한 모자들을 쌓아놓고 파는 곳, 예쁜 접시를 파는 가게, 반짝 세일을 하고 있는 어느 남자의 작은 바구니 앞에서는 티셔츠가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다.
점심을 먹으로 들어간 식당 바깥에서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크지도 않은 식당 앞에서 예닐곱 명의 젊은이들이 서커스를 방불할 만큼의 묘기를 보이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공연(?)에 여행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박수를 친다. 모자에 동전을 걷은 그들은 바로 옆 식당에서 다시 쇼를 이어간다. 점심식사와 더불어 서커스 관람도 끝이 난다.


마라케시에 올 때는 동행이 있어 덜했는데 혼자 택시를 타려고 하니 바가지가 심하다. 기본요금이 7디람인 택시들은 미터기를 켜지 않고 무조건 40디람, 50디람하며 흥정만 하려 한다. 택시에 승하차를 두 번이나 반복한 후, 여자 혼자 택시를 잡고 미터기를 켜도록 하는 게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게 된다. 세 번째 택시와 겨우 흥정을 해서 15디람에 마조렐 정원(Jardin Majorelle)으로 간다.
마라케시의 명소인 마조렐 정원으로 들어가는 매표소에는 서양인 관광객이 줄을 서 있다. 오전 내내 입장료 10디람이면 궁전이나 박물관에 들어갔는데, 50디람이라는 거금의 입장료를 내는 이 정원은 무엇이 다를까? 입구에는 아름다운 푸른 타일로 꾸며진 분수와 붉은 사막의 도시 마라케시와 어울리지 않게 무성한 초록의 나무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정원의 길은 파랑, 빨강, 노랑의 세라믹 화분들이 늘어서 있는 모로코의 원색으로 관람객을 반긴다. 길옆에는 처음 보는 열대 식물들이 앞다투어 자라고 있다. 여기저기 작은 연못들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와 아름답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각종 새소리들이 들리는 소리의 전부다. 어떤 곳은 연꽃 같은 수중생물들이 자라고 어떤 연못가에는 갖가지 선인장들이 물소리를 듣고 있다.
이곳은 원래 마라케시를 사랑했던 프랑스 화가 자크 마조렐(Jacques Majorelle)이 살던 집과 정원이다. 마조렐이 사망 후 마조렐 가든이 호텔로 개조한다는 소식을 들은 입생로랑과 그의 파트너 피에르 베르제가 사들여 관리했고, 입생로랑 사후에는 이곳에 그의 유골이 뿌려졌다고 한다.


마조렐 정원을 압도하는 색은 단연 파랑이다. ‘마조렐 블루(bleu Majorelle)’라는 이름의 파란색은 메디나의 붉은 건물과 대비된다. 어느 곳에 눈길을 두어도 마조렐 블루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길을 뗄 수 없는 청량감이라고 하면 맞을까?
입생로랑은 1970년부터 연말에 카드를 디자인해서 사람들에게 보냈다고 한다. 마조렐 정원 한편에 마련된 ‘러브 갤러리’에는 그가 만든 ‘LOVE’ 카드의 디자인들이 전시되어 있다. 독특하고 감각적인 디자인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만,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던 한 사람의 인생이, 디자이너로서의 세계적인 명성보다 더 부럽게 느껴지고 멋지게 보인다.
푸른 마조렐 정원은, 사막과 멀지 않은 마라케시이기에 더욱 돋보인다. 글자 그대로, 마조렐 정원은 ‘사막의 오아시스’다. 정원을 산책하다가 벤치에 앉았다가 열대 식물들 속에서 마조렐블루에 흠뻑 빠져 오후를 보낸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문을 닫을 시간이 된다. 제마엘프나로 돌아가려고 택시를 잡는다. 관광객이 많은 마조렐 정원 앞에서 대기하던 택시기사들이 아예 담합을 한다. 15디람에 왔던 거리를 모두들 100디람이라고 우기며 서로 눈짓을 한다. 마조렐 블루에 심취해 영혼까지 세탁하고 온 것처럼 상쾌해진 마음이 일순간 짜증으로 바뀐다. 지도를 보니 대략 걸을 만한 거리다. 이래 봬도 내가 900킬로미터의 순례길을 한 달간 걸은 여자라는 것을 이들이 알 리 없다. 짐도 없는데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걷기로 한다. 


대형 건물과 아파트들이 있는 시내를 걸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덕분에 깨끗한 모로코의 거리를 걸으며 친절한 경찰관을 만나 길을 묻고 관광객과 관계없는 일반인들의 오후를 만날 수 있다. 남자들만 앉아있는 모로코식 카페를 지나가고, 검은 스카프를 두르고 아이들과 벤치에 앉아있는 여자들을 지나친다.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가로수들이 신기해서 보고 또 보며 걷는다.
그렇게 걷다 보니 반가운 쿠투비아 모스크의 첨탑이 눈에 띈다. 며칠 전 세비야 대성당에서 보고 온 히랄다 탑이 이 쿠투비아 첨탑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한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남유럽과 북아프리카의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게 당연하면서도 흥미롭다. 유럽과 아프리카,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별개로 인식하고 있던 탓이다. 이베리아 반도와 모로코를 함께 여행하면서 그런 류의 편견은 깨진다. 


제마엘프나 광장은 노점들이 모여들어 준비가 한창이고 관광객들도 모여들기 시작한다. 일단 오렌지주스를 한 잔으로 목을 축인다. 택시기사들 덕분에 한 시간 걷고 100디람 벌었다고 생각하기로 하니 마음 편하다.
고개 든 코브라를 선보이며 악기를 손질하는 뱀장수, 옷 예쁘게 입은 원숭이를 데리고 와 안고 사진 찍게 해주는 사람, 약병을 한가득 늘어놓은 약장수, 헤나를 그려주는 여자들, 집중하는 사람들에 둘러 싸여 이야기를 해주는 할아버지, 장난감 파는 아저씨, 사람들과 복싱을 하며 돈을 받는 사람 등등 글자 그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자리를 잡고 있다.
막 시작된 전통공연에는 서양인 여행자가 나서서 춤을 추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모로코 사람들의 얼굴에 흐뭇함이 번진다. 광장의 가운데에 달팽이를 삶아 파는 노점은 모로코인들로 바글거린다. 뜨끈한 국물을 좋아하는 나지만 달팽이는 도전하고 싶지 않아 근처만 어슬렁거린다.
돼지머리 고기를 파는 아줌마도 불을 피워 올리고 이제 광장은 음식들이 익는 흰 연기와 음식 냄새, 음악소리, 호객하는 소리, 구경꾼들의 탄성 같은 것으로 가득 찬다. 광장을 돌아다니다가 어제 마라케시에 함께 온 한국인 두 사람을 우연히 만나 저녁을 먹기로 한다. 광장 근처의 높은 건물 레스토랑에 들어가 내려다보며 식사를 하기로 한다. 혼자였다면 생각 못했을 텐데 이 우연한 만남이 고맙다. 


따진과 함께 모로코의 대표 요리인 “꾸스꾸스(Couscous)”를 주문한다. 밀가루를 으깨 좁쌀처럼 잘게 만들어 놓은 음식으로 채소 스튜를 얹어 먹는 요리다. 꼬치요리와 샐러드까지 주문한다. 두 사람은 내일 사막으로 가는 투어를 예약했다고 한다. 나는 사막은 가지 않기로 했다고 말해준다. 마라케시가 오아시스 도시여서 사막으로 가는 관문이기는 하지만, 이미 인도의 자이살메르 사막과 남미의 우유니 사막의 밤을 경험한 나는 사막투어가 내키지 않는다. 사하라 사막은 다음 여행을 위해 남겨두기로 한다.
이야기하는 사이 제마 엘 프나 광장에 어둠이 내린다. 저 많은 노점들에게서 피어나는 흰 연기와 불빛,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움직임과 소란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여행지에서 많은 석양을 본 나에게도 이 일몰은 감동이다. 멀리 쿠투비아 모스크의 실루엣이 보이고 하늘이 붉게 물들다가 검푸르게 변한다. 그 아래를 수놓은 헤아릴 수 없는 불빛들은 자연과 사람이 함께 그린 걸작이다. 해진 뒤의 바람이 차가워도 꼼짝하지 못하고 이 광경을 바라본다. 


완전히 해가 지고 나서야 광장으로 내려온다. 가지런히 번호가 매겨진 노점과 어두운 광장을 수시로 순찰하는 경찰이 있는 마라케시의 밤은 듣던 것처럼 무섭지 않다. 광장 중앙의 노점 식당을 돌아다니다 보면, 옷깃만 잡지 않을 뿐이지 호객이 심하다. 어느 식당으로 들어갈까 방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음식을 먹어댄다.
밤이 새도록 먹고 마시고 사고 팔 요량인지, 가게마다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밤이 깊어갈수록 사람들은 더 많아진다. 아무도 살 것 같지 않은 잡동사니들을 펼쳐놓은 아저씨는 그것만 다 팔면 집으로 돌아갈 것 같은 얼굴로 어두운 광장 한편을 지킨다. 불빛 하나에 의지해 연극을 보는 모로코 사람들의 얼굴은 이미 몰입 그 자체다.
전통복장을 입은 아저씨 아줌마의 푸근한 뒷모습을 따라 걷는 마라케시의 다이내믹한 밤이 좋다. 마라케시의 색감은 온종일 이방인의 눈을 호강시킨다. 붉은 메디나와 푸른 마조렐 정원, 제마엘프나의 역동적인 밤에 매료되는 도시, 마라케시는 찬란하다.

정리=강문규 기자/mkkang@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우리아이 영어글쓰기, 어떻게 교육하나요]
[리우올림픽] 멕시코, 한국에 골먹고 폭력행사…비난 봇물
GS건설이 분양하는 “마포자이3차”... 입주 때는 “분양가가 전세가
[리우올림픽] '10-10-10' 기보배 "2연패 생각했지만…홀가분하다"
도박사들 “한국, 온두라스 꺾는다”…금메달 후보 5위
6호 태풍 ‘꼰선’ 온다는데…폭염 날릴 ‘착한 태풍’될까
“모든 것은 후지하루 자살골 ”…예선탈락에 충격 日반응
최여진 엄마, 끝까지 사과 없었다…계정폐쇄
“한국 결승까지 갈지도몰라”…한국 8강행에 日 현지반응
[리우올림픽]손흥민 “솔직히 병역 혜택 의식된다, 행복한 시간”
GS건설이 분양하는 “마포자이3차”... 입주 때는 “분양가가 전세가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