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독: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 자서전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는 자신의 성공을 통해 이런 것들이 성공의 필수 요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원대한 포부도 없었다. 다만 육상 선수 출신으로 러닝화에 관심이 많았고 경영학을 전공한 대학원생으로 일본의 러닝화가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뛰어들었다.
치밀한 계획도, 이를 위한 준비도 없었다. '나이키'라는 이름과 나이키의 상징이 된 스우시(Swoosh) 로고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상표 중 하나인 나이키의 스우시 로고는 포틀랜드주립대에서 만난 젊은 화가에게 요청해 35달러에 얻은 것이고 '나이키'라는 브랜드 이름도 멕시코에 있는 공장에 샘플을 보내기 직전에야 겨우 결정한 것이다.
인생을 거는 승부수도 던지지 않았다. 필 나이트는 신발 회사를 차리고도 5년 이상 회계사로 일했고 대학에서 회계학을 가르쳤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걸지 않고 오랫동안 양다리를 걸친 것이다.


운동을 사랑했고, 신발을 사랑했고, 신발의 가치를 믿었고, 신발을 사랑하는 사람들, '슈독(Shoe Dog)'들을 만났다.
슈독들 각자에게 맡는 일을 맡겼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일을 저질렀고 저지른 일을 밀고 나가면서 그 안에서 해법을 찾았다.
그리고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달리기를 사랑했다.
"나에게는 달리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매일 밖에 나가 몇 마일씩 달리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내가 파는 신발이 달리기에 더 없이 좋은 신발이라고 믿었다."(P87)
그는 달리기에서 삶의 태도를 배웠다.
"나는 나보다 훨씬 더 잘 달리고 신체적으로도 훨씬 더 뛰어난 선수들과 경쟁했다. 그들은 앞으로 올림픽에 출전할 선수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불행한 현실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경쟁은 항상 좋은 것이고,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경쟁을 잊어버릴 수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이야기다. 경쟁의 기술은 망각의 기술이다. 나는 이런 사실을 육상 경기를 통해 배웠다. 나는 나 자신에게 그때의 교훈을 상기시켰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잊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 품었던 의혹을 떨쳐버려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고통과 과거를 잊어버려야 한다. 우리는 '이제 그만하자'는 내면의 외침, 애원을 무시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잊어버리거나 떨쳐버리거나 무시하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과 타협해야 한다." (P96)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했고 그 일에서 깊은 의미를 찾았다.

그는 슈독들을 모았고 그들과 소통했다. 이는 버트페이스(Buttface)라는 나이키의 독특한 회의 문화에 그대로 드러난다.
"정말이지 학대 그 자체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끔찍한 별명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말로 아주 작살을 냈다. 사업 아이디어 혹은 회사가 직면한 위협에 관해 토론할 때, 우리는 상대방의 감정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나한테는 더욱 그랬다. 그들은 나를 '버키 더 북키퍼(Bucky the Bookkeeper)'라고 불렀다. 나는 그들에게 그만두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감정적으로 나오면 완전히 지는 것이다."(P428~429)
일과 맞닥뜨리면 일단 해치우고 본다. 두려움 따위는 잊어야 한다.
"능력 밖의 일이라고? 우리는 모두 능력 밖의 일을 하고 있어. 그것도 엄청나게 밖에 있는 일을 말이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무너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실패했을 때 이를 빨리 털고 일어나 실패를 통해 배우면서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P366)
필 나이트는 이렇게 조언한다.
"인습을 타파하려는 사람, 혁신을 추구하는 사람, 반란을 꾀하는 사람에게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런 이들은 항상 자기 등에 과녁을 달고 다닌다. 승리할수록 이 과녁은 점점 더 커진다. 이는 나 한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이다."
"기업가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한마디로 사기꾼이다. 기업가는 때로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포기해야 할 때를 알고 다른 것을 추구해야 할 때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포기는 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업가는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된다."
"당신 자신에게 믿음을 가져라. 이런 믿음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져라. 믿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이 정의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믿음 그 자체는 당신의 마음속에서 정의된다."
There is no finish line.
Just Do It.
그러니까 이 말은 단순히 나이키의 광고 문구가 아니라
필 나이트가 살아온 방식이고,
나이키가 성공한 비결이다.
◆나이키 탄생의 3가지 장면
1. 스우시(Swoosh) 로고의 탄생
1971년 필 나이트는 당시 포틀랜드주립대 디자인과 학생이었던 캐럴린 데이비드슨(Carolyn Davidson)에게 로고 디자인을 부탁했다.
캐럴린 데이비드슨은 며칠 후 몇 가지 시안을 가져왔다. 하지만 처음에는 필 나이트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했다. "뚱뚱하게 생긴 번개라고 할까? 두툼한 체크 부호라고 할까? 휘갈겨 쓴 자국이라고 할까?" 필 나이트는 다시 그려오라고 돌려보냈다.
몇 주 뒤 캐럴린은 두 번째 작품들을 가지고 왔다. 첫 번째 작품에서 출발해 좀 더 자유롭게 다양한 형태로 변화를 가져왔다. 작품들을 벽에 걸어놓고 몇몇 직원들이 토론을 했다.
누군가 "이게 다른 것들보다 좀 낫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이야기가 이어졌다. "날개처럼 보여요." "바람이 휙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것 같아요." "육상선수가 지나간 자국 같기도 해요."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게 된 로고가 선택됐다. 필 나이트는 캐럴린 데이비드슨에게 35달러짜리 수표를 주면서 돌려보냈다.

2. '나이키(Nike)' 이름의 탄생
공장에서 첫 생산에 들어가기로 한 날까지도 이름을 짓지 못했다. 마지막 날 밥 우델이 필 나이트에게 말했다. "제프 존슨에게서 제안이 하나 들어왔어. 어젯밤 꿈 속에 새로운 이름이 나타났대." "그게 뭔데?" "나이키."
그 순간 필 나이트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의 이름과 2차 대전 참전 용사들에게 승리의 메달을 수여할 때 처칠이 했던 말. "여러분은 이런 질문을 할 겁니다.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가? 나는 한마디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1972년 뮌헨올림픽을 앞두고 미국 육상팀 코치이자 나이키 공동 창업자인 빌 바우어만 코치는 고민에 빠졌다. 새롭게 육상트랙에 깔리는 폴리우레탄 표면에 미끄러지지 않는 운동화 밑창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우어만 코치는 부인과 아침 식사를 하다가 옆에 있던 와플 틀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와플 틀의 격자무늬 패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아내에게 와플 틀을 잠깐 빌릴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는 와플 틀을 차고로 가져가 거기에다 우레탄을 채워넣고는 가열했다.
바우어만 코치는 들뜬 목소리로 필 나이트에게 전화했다. "새로운 밑창 샘플을 공장에 보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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