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가죽 香이냐 5월의 장미香이냐

그라스(프랑스)=변희원 기자 2016. 9.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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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ty] 루이뷔통 對 딥티크.. 가을 향수 전쟁

‘향수를 입는다(wear)’고 한다. 그래서 향수는 하나의 패션이다. 예쁜 옷을 입거나 ‘신상’ 가방을 든 여자보다 나와 다른 향을 풍기며 지나가는 여자를 돌아보는 시대가 됐으니까. 이 무형무색의 ‘향기 나는 물’은 유행의 최정점에 있다. 단지 ‘향’(香) 때문만은 아니다. 누가, 어디서, 어떤 의미를 갖고 만들었는지, 그리고 향수 병과 포장까지도 예술적 감각과 남다른 취향을 드러내는 지표가 됐다. 올가을 럭셔리 하우스의 대명사인 루이뷔통이 긴 공백을 깨고 70년 만에 향수를 선보이고, 니치(소수의 사용자 혹은 작은 시장) 향수의 대명사인 딥디크에서는 브랜드의 전통을 계승하는 ‘특별판’ 향수를 내놨다. 이 시대의 향과 트렌드의 방향을 두 향수에서 맡을 수 있다.

루이비통, 70년 만에 새 향수… 천연가죽 香이 부드럽고 관능적이네

7가지 향수 컬렉션 선보여

루이뷔통은 여행자들을 위한 트렁크와 가방을 만들면서 공방을 시작했다. 주인을 따라 세계 이곳저곳을 다닌 트렁크와 가방에는 온갖 냄새가 배어 있었다. 중후한 가죽 냄새와 뒤섞인 마다가스카르의 바닐라 향기나 중국의 재스민 향기는 글이나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여행의 기록이나 마찬가지였다. 세월 따라 거듭된 여정을 향으로 고이 간직하고 있던 루이뷔통은 70년 만에 이를 7가지 향수로 만들어냈다.

세상과 단절된 '향기의 저택'

패션 하우스들이 인지도를 얻기 시작하자마자 내놓는 게 향수다. 연예인들도 자신의 이름을 딴 향수를 갖고 있다. 루이뷔통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1927년 브랜드 최초의 향수링 외르 답상스(Heures d'absence·시간의 부재)를 선보였고, 1928년에는 주, 튜, 일(Je, Tu, Il;나, 너, 그)과 레미니상스(Rminiscences·추억)를, 1946년에는 오 드 부아야주(Eau de Voyage·여행의 향수)를 출시한 바 있다. 당시 향수를 담은 병은 남아 있지만, 그 안에 담긴 향은 알 길이 없다. 루이뷔통에선 이를 호재로 여겼다. 과거의 향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니 상상력에 한계가 없었다.

모든 향은 그라스로 통한다. 16세기부터 프랑스 리비에라 해안에 있는 이 작은 마을의 골목골목에선 향내가 피어올랐다고 한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향수'의 배경으로 등장할 만큼 향수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루이뷔통 향수도 이 지역 공방인 '레 퐁텐 파르퓌메'(향기로운 분수)에서 만들어졌다. 가죽 장인으로 시작한 브랜드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긴 향수를 만드는 데 최적의 장소다. 그라스는 향수를 만들기 훨씬 전부터 가죽 공방으로 더 유명했다. 무두질할 때 나는 고약한 냄새 탓에 마을 중심에서 떨어진 산이 필요했고, 가죽을 닦아내기 위한 물이 필요했다. 지대가 높은데다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샘물까지 있는 그라스가 딱이었다. 무두장이들이 가죽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가죽에 향을 입히기 시작하면서 향수 산업도 함께 발전했다. 향기가 나는 가죽장갑은 이 지역 유명 특산품이었다.

2013년 LVMH그룹은 루이뷔통 향수를 개발하기 위해 레 퐁텐 파르퓌메를 매입했다. 이 공방의 거대한 철제문을 통과해 들어가는 순간 바깥세상과는 단절된 '향기의 저택'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관광객들 웅성이는 소리 대신, 새들 지저귀고 샘물 졸졸 흐르는 소리만 들린다. 정원 옆 넓은 길가의 나무 그늘을 따라 걷다 보면 그라스의 샘물 라 푸(La Foux)가 있다. 가죽을 무두질하거나 꽃밭에 물을 대는 역할을 한 이 샘물은 돌 운하를 따라 이 공방을 관통해 흐른다. 중앙 건물에 들어서면 장미 꽃밭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홀 한가운데에 있는 '향기로운 분수'에서 흘러나오는 장미수가 풍기는 향이다. 1월엔 미모사, 2 월엔 제비꽃, 4 월엔 오렌지 꽃, 수확기 끝자락인 가을엔 재스민 향기가 물에서 난다. 예전엔 공방에서 향수를 산 사람들이 여기서 향기로운 물을 담아갔다.

묵직하고도 달콤한 천연가죽 향기

그라스 출신의 조향사 자크 카발리에는 지난 4년간 이 공방에서 루이뷔통의 향을 찾았다. ▲그라스의 장미꽃 향기를 머금은 '로즈 데 벙(Rose des Vents)', ▲은방울꽃과 재스민 꽃잎, 목련 향이 어우러진 '아포제 (Apogée)', ▲진한 월하향의 '튜뷸렁스(Turbulences)', ▲천연 가죽의 독특한 향기가 달콤한 살구와 어우러진 '덩 라 포(Dans la peau)', ▲아가우드와 화이트 플라워가 만난 '마티에르 누아르(Matière Noire)', ▲진한 바닐라 향기를 구현해낸 '콩트르 무아(Contre moi)', ▲산딸기와 가죽 향이 조합된 '밀 푸(Mille feux)', 이렇게 일곱 가지다.

시향을 하는 순간, '이게 바로 루이뷔통의 향'이라고 할 만큼 신선했던 향수는 '덩 라포'다. 처음 맡는 향은 아닌데, 비슷한 향수를 도무지 떠올릴 수가 없다. 묵직하면서도 달콤한 가죽향이 나기 때문이다. 시중에는 가죽의 향기를 제조할 수 있는 공식이 여럿 있지만, 자크 카발리에는 루이뷔통의 여러 공방을 방문하면서 온화한 천연 가죽의 향을 찾았다. 바로 루이뷔통 트렁크와 가방의 핸들과 끈에 사용되는 옅은 베이지색 가죽이었다. 사향(musk)보다 꽃향기에 가까운 향의 미묘함에 매료된 카발리에는 공방에 이 가죽의 향 추출을 요청했다. 가죽을 알코올에 담가두면 어두운 톤의 수지성 물질로 변하며, 그 후 맑은 톤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정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얻은 고유의 향기는 강렬한 향나무 향도, 흐릿한 자작나무 향도 아니다. 부드럽고 관능적이다. 월하향과 재스민꽃이 섞인 '튜뷸렁스'와 산딸기 향이 바탕이 된 '밀 푸'에도 이런 가죽 향이 잔잔히 감돈다. 일곱 가지 향수를 하나씩, 찬찬히 맡다 보면 질 좋은 가죽 가방을 들고 프랑스 남부를 시작해 아프리카, 남미를 거쳐 동남아시아, 중국까지 다녀오는 세계 여행을 다녀온 듯한 호사를 누리게 된다.

미테랑이 사랑한 딥티크… '5월의 장미'로 진하고 풍성한 香 가득

'34번가 컬렉션' 특별판 내놔

1961년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34번가에 예술적 감각과 섬세한 취향을 공유한 세 친구가 모였다. 극장에서 세트 디자인을 하는 이브 쿠에슬랑, 영국 출신 화가 데스먼드 녹스 리트, 모자이크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고트로는 그 자리에 가게를 열어 섬유 원단을 팔기로 했다. 가게 입구 양쪽에 창문이 두 개 있는 모습을 본떠 가게 이름을 ‘딥티크’라 지었다. 고대 그리스어인 ‘딥티코스’는 둘로 접을 수 있는 목판화를 뜻한다. 이후 생제르맹 34번가는 파리지앵의 대명사이자 향수와 향초를 유행시킨 진원지가 됐다.

딥티크에 온 고객들은 원단보다 창업자 세 명이 직접 만들거나 수집한 장식용 소품들을 더 많이 사 갔다. 특히 잘 팔린 것이 향초와 영국에서 들여온 포푸리(꽃잎이나 나뭇잎, 나무 껍질 등을 말려 만든 방향제)였다. 이들은 향초와 향수 만드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처음 만든 향수 ‘로(L’eau·1968)’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어릴 적 살던 장소나 여행지에서 맡았던 향을 떠올리며 꾸준히 향수를 만들었다. 파리지앵의 정수가 담긴 이 가게는 생제르맹 주민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자 곧 니치 향수 브랜드의 상징이 됐다. 고(故)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도 이곳에 들렀을 땐 여느 파리지앵과 똑같이 줄을 서서 향수와 향초를 사갔다.

‘위대한 유산’은 향으로 이어진다

세 친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이들의 추억과 브랜드의 정수는 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창립 50주년인 2014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34번가 생제르맹’ 컬렉션(이하 34번가 컬렉션)은 전문 지식과 장인 기술, 예술적 감각이 만나 이뤄졌다. 창립자들이 직접 만든 제품과 외부에서 수집한 물건들로 가게를 꾸몄듯이 이 컬렉션도 딥티크와 외부 예술가, 장인들이 협업하는 셈이다 .

컬렉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에성스 엥성세’는 매년 프랑스 그라스에서 수확한 꽃 중 가장 품질이 좋고 향이 풍성한 것을 골라 만든다. 일명 ‘천 송이의 꽃’이라고 불리는 딥티크의 전통이다. 올해에는 세계 희귀 장미로 알려진 로즈 드 메이(Rose de mai)의 향을 담아냈다. 증기 증류 방식을 통해 에센스를 추출해 진하고 풍성한 향기를 머금고 있다. 딥티크가 한국에서 빨리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은 향수 이외에도 방향제, 향초와 같은 홈컬렉션 구성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34번가 컬렉션에도 향초가 빠질 수 없다. ‘라 마들렌 캔들’의 부드러운 향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묘사돼 있던 푹신한 질감, 싱그러운 레몬향이 풍기던 달콤한 마들렌의 향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장인의 손길, 브랜드의 개성 그대로

생제르맹 34번가에 있는 첫 부티크는 집안을 장식할 수 있는 소품이나 꽃병, 섬유 원단으로 시작했다. 여러 가지 잡동사니를 파는 ‘바자’를 연상시킨다. 그 시작을 기리기 위해 34번가 컬렉션은 그 자체로 우아한 꽃병이나 빈티지 보석을 연상시키게끔 만들어졌다. 에성스 엥셍세가 담긴 검은색 보석 같은 유리병은 수백년간 명품 향수와 최고급 브랜드의 와인병을 제작해온 월터스퍼거(Waltersperger) 장인의 손길로 완성됐다. 노르망디 브레즐 계곡에 있는 유리 공방 중 하나다. 라 마들렌은 포르투갈 아베이로 지역에 위치한 엔지 포셀린에서 만든 향초 용기에 담겨 있다. 도자기 공예 장인들의 손길을 거쳐 완성되기까지 3일이 걸린다.

올해 컬렉션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티크에서만 판매하는 두 가지 캔들 홀더(향초 받침대)다. 고정된 스탠드에 앤티크한 거울이 부착돼 있는 ‘레프레 캔들 홀더’는 앤티크한 거울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이탈리아 장인 마시모 보르냐(Borgna)와의 만남으로 탄생했다. 원형의 거울은 받침대에 고정돼 있으며, 캔들 길이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다. 불을 켜는 즉시 후광이 비치듯 은은하게 주변으로 퍼진다. ‘크리스토 캔들 홀더’는 유리 공예 장인인 뱅상 브리드(Breed)가 손으로 만들었다. 표면을 갈라지고 불규칙하게 만들어 사방으로 빛이 퍼질 수 있게 고안했다. 촛불이 벽난로에 타오르는 불처럼 유리 표면에 보인다. 브리드는 “촛불과 유리의 색, 질감이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 여러 차례 실험했다. 금이 많은 유리를 만들기 위해 여러 차례 깨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개 만드는 데 일주일 걸린다. 전 세계 1000개 한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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