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제복과 제식훈련이 군대의 전통이 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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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다녀온 사람에게 군 생활 시절의 회고담을 듣게 되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의 군부대에서는 장병들이 제식훈련을 하며 대형을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고, 군 간부들은 몸에 꼭 맞는 제복을 입은 채 각종 행사에 참석해 ‘각’을 잡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한다. 이런 식으로 대규모 전투에서 수십만명이 사망하자 은폐와 각개전투 위주의 전술훈련이 각광받았고 제식훈련은 군대의 상징과 같은 존재로 성격이 바뀐다. 이러한 추세는 근대로 접어들면서 군사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약해졌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투에 쓰이는 군복과 공식 행사에서 착용하는 제복으로 구분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식훈련과 제복이 현대전에서 전술적으로 큰 의미가 없어진 지금에도 군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군을 존재하게 하는 근본적인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잠을 자다 군에 재입대해 제식훈련을 받거나 제복을 입고 행사장에서 목석처럼 서있는 꿈을 꾸고 몸서리치며 깨어나는 경험을 했다면 그 사람의 무의식 중에는 여전히 군인의 의식이 남아있는 뜻이다. 그것이 바로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 수백만의 예비군을 운영하는 우리나라에서 제식훈련과 제복 착용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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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장병들이 행진을 실시하고 있다. 미 국방부 제공 |
장교나 부사관 등 직업군인들은 소속 부대에서 공식 행사가 열리면 전투복 대신 제복을 입고 모습을 드러낸다. 화려한 색상과 디자인에 바탕을 둔 군복을 입어 적군의 기를 꺾는 방식의 전쟁은 20세기 들어 사라졌다. 땅바닥에 구르고 기어가며 적군이 쏘는 총탄을 피해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현대 전장에서 양복점에서 맞춘 제복은 실용성이 떨어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형을 갖춰 움직이는 것 역시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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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3월 계룡대에서 열린 합동임관식에 참가한 여군 의장대. 국방부 제공 |
◆ 전투력 강화의 유산이었던 제식훈련과 제복
인류가 중국, 이집트 등에서 문명사회를 이루고 나라를 세우면서 그 힘을 과시하고 영토를 넓히는데 동원된 것은 군대였다. 강력한 군대를 동원해 주변 국가들을 점령한 고대 국가들은 제국을 건설하고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다. 대포 등과 같은 최신무기가 없던 시절, 군대의 전투력을 끌어올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병사들을 조직화해 집단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 ‘300’을 떠올려보자. 테르모필레에서 페르시아군과 대치한 스파르타군은 서로의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밀집한 형태의 대형을 유지한 채 페르시아군을 공격을 저지하며 창으로 반격을 한다. ‘팰렁크스’라 불리는 이 대형은 그리스 세계를 지중해의 중심으로 부상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스의 팰렁크스 대형을 깨고 제국을 건설한 로마는 기병과 보병의 유연한 움직임을 강조했지만 밀집대형은 여전히 유지됐다. 그리스와 로마군에서 밀집대형은 전투력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였다. 따라서 전투 도중에도 밀집대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강도 높은 제식훈련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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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안중근 의사 추모행사에 참석해 안 의사를 추모하고 있다. 육군 제공 |
이러한 전술은 18세기 나폴레옹이 포병을 이용한 전술을 중시하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후 19세기 소총과 대포 기술의 발달로 발사속도와 정확성이 높아지면서 중요성이 약해졌다. 제식훈련의 전술적 효용성에 결정타를 안긴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다. 개전 당시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전투에 나선 젊은 병사들은 일렬로 늘어서서 적진으로 전진했다. 이들을 향해 맥심 기관총이 불을 뿜자 총탄을 피할 곳이 없던 병사들은 수숫단처럼 쓰러졌다. 이런 식으로 대규모 전투에서 수십만명이 사망하자 은폐와 각개전투 위주의 전술훈련이 각광받았고 제식훈련은 군대의 상징과 같은 존재로 성격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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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이 62기 졸업식에서 분열을 실시하고 있다. 공군 제공 |
◆ 군의 기강 유지와 사회화 도구로 바뀌어
제식훈련과 제복이 현대전에서 전술적으로 큰 의미가 없어진 지금에도 군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군을 존재하게 하는 근본적인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군에 입대하는 젊은이들은 20여년을 자유롭게 살며 성장한 사람들이다. 성격도 행동도 각양각색인 젊은이들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군인으로 키워내려면 군인으로서의 의식을 주입해야 한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젊은이들에게 “여러분의 어깨에 국가의 운명이 걸려있습니다. 나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기를 바랍니다”와 같은 연설은 통하지 않는다. 자장가인지 설교인지 구분이 안가는 지루한 연설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신병들에게 군복을 입힌 뒤 연병장에서 조교가 외치는 “왼발! 왼발!” 구령에 맞춰 몇 시간씩 제식훈련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제식훈련을 통해 대형을 갖추는 방법을 배운 병사들은 신병교육기간 동안 연병장에서 훈련할 때도, 밥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할 때도, 일요일에 종교활동을 하러 갈 때도 제식훈련에서 배운 것처럼 대형을 갖춰 움직인다. 이러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아, 내가 정말로 군인이 됐구나’하는 인식을 스스로 깨우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군에서의 사회화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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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1월 동명부대 17진 환송식에 참석한 동명부대원들이 전방을 향해 경례를 하고 있다. 육군 제공 |
제복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개방된 사회라 할지라도 군복을 입은 군인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공식행사에서 착용하는 제복을 입었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군인들은 제복을 입었을 때는 일반인들이 함께 하는 행사이거나 군 통수권자가 참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행사에서 제복을 입은 군인은 군을 대표하는 존재로 비춰진다. 따라서 제복을 입은 군인은 개인적인 욕망을 억누르고 군인의 자세에 걸맞는 엄격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사관생도나 학사장교후보생들이 교육 기간 동안 제복을 입고 다니는 것도 군인의 자세와 기강을 내재화하기 위한 교육적 차원이다.
다양한 교육 방법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바로 ‘몸으로 배우는 교육’이다. 아이돌 그룹들이 칼군무를 할 수 있는 것도 음악이 나오면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댄스 연습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제식훈련과 제복은 장병들을 군의 일원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몸으로 배우는 교육’이다. 물리적인 경험을 통해 체득한 교육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교육효과가 의심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잠을 자다 군에 재입대해 제식훈련을 받거나 제복을 입고 행사장에서 목석처럼 서있는 꿈을 꾸고 몸서리치며 깨어나는 경험을 했다면 그 사람의 무의식 중에는 여전히 군인의 의식이 남아있는 뜻이다. 그것이 바로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 수백만의 예비군을 운영하는 우리나라에서 제식훈련과 제복 착용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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