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선글라스'로 신드롬.. 뉴요커도 두 눈이 휘둥그레

"사람은 누구나 지금과 다르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 점이 바로 몬스터적인 부분이다."
5년 전 '젠틀몬스터'를 창립한 김한국 대표의 말이다. 이 몬스터 기질이 세계를 적중했다. 2011년 첫해 1억2000만원이던 매출은 올 연말 1800억원대(업계 추산)에 오를 전망이다. 베이징, 상하이 매장에 이어 연말 미국 LA에 1020㎡(300여 평) 규모로 문을 연다. 세계 30여 개국에 450여 개 매장을 열었다.
젠틀몬스터의 시작은 "완벽한 아시안핏(fit)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틈새시장 공략. 김한국 대표는 성공 비결을 묻는 외신기자에 이렇게 답했다. "아시아인의 골격이 서양과는 다르기 때문에 얼굴이 작고 더 예뻐 보이게 하는 오버사이즈 선글라스 연구부터 시작했다. 대부분의 아이웨어는 서양 얼굴형에 맞춘 것이다. 아시아 스타일에 완벽하게 맞는 제품을 만드는 것에서 젠틀몬스터의 역사가 시작됐다."
아시아 시장 공략하니 세계가 오더라
제품력은 나무랄 데 없었다. 문제는 판매. 선글라스 같은 아이웨어는 이탈리아 '룩소티카'와 '사필로' 그룹이 양분하고 있다. 샤넬, 구찌 같은 명품 브랜드조차도 그들에게 의뢰해 제품을 생산한다. 국내만 해도 세원ITC, 룩옵티컬 등 기존 강자(强者)들이 포진해 있다.
날개를 달아준 건 PPL이었다. 2013년 말 방송된 '별에서 온 그대'에서 탤런트 전지현이 쓰고 나오면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다. 처음엔 카렌 워커(KAREN WALKER)나 수비(KSUBI) 같은 해외 브랜드이겠거니 했다. 드라마 속 천송이가 누군가. 명품을 휘감은 톱스타 역할이었다. 극중 실내복은 400만원짜리 샤넬 카디건이고, 잠옷은 200만원짜리 끌로에 원피스, 케이프 망토는 900만원이 넘는 에르메스 제품이었다. 그런데 왜 젠틀 몬스터를?
당시 전지현 스타일링을 담당한 정윤기 인트렌드 대표가 답했다. "국산이지만 세계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만큼 좋은 브랜드였어요. 얼굴형에 딱 잘 맞을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얼굴이 예뻐 보일지 아는 제품이랄까. 때로는 거만해 보이고 한편으론 연약해 보이는 캐릭터를 설명하기에도 좋았죠." 이후 탤런트 한가인, 이수혁, 정우성 등 유명 스타도 젠틀몬스터 마니아 대열에 합류했다. 한류 마케팅은 중국으로 이어졌다. 톱스타 판빙빙, 저우제륜, 앤절라 베이비가 젠틀몬스터 팬이 됐다. 정윤기 대표는 "PPL 덕도 봤지만 지속적인 품질 개발이 성공 비결인 것 같다"며 "1㎜의 차이로 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젠틀몬스터가 제대로 잡아냈다"고 말했다.

0.01㎜ 오차도 가차없이 버린다
신정인 디자인팀장은 "젠몬이 가장 중요시하는 게 속도감"이라고 했다. "어제 마음에 들어도 내일이면 맘에 안 들 수 있고, 내일모레면 또 달라지죠. 회사 초기에도 고민이 많았어요. 편의성으로 갈지 패션성으로 갈지. 하지만 현실에 안주한다면 브랜드의 정체성을 국한시켜버릴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했죠.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설렘을 주자는 목표로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어요."
1년에 새롭게 선보이는 제품만 40여 개. '200~300달러 제품군에선 세계 1위가 되자'는 게 회사 목표다. 다른 브랜드가 보통 10개 안팎으로 신제품을 선보이는 것에 비하면 상당한 숫자다. 대중적인 제품, 도전을 자극하는 패션성 강한 제품,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한 실험적인 제품군 등 3단계로 나뉜다. "보통 디자인에 6개월 정도 걸려요. 그중 석 달은 대표님이 아무 일도 안 시키시죠. 영감을 얻기 위해 밖으로 많이 돌아다닙니다."
대리석 안경테, 동물뼈 안경테는 그렇게 탄생했다. 40년 넘는 경력의 중국 공장 엔지니어링 실장은 신 팀장이 올 때마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나를 괴롭히려느냐"며 웃는단다. 렌즈는 독일 광학전문회사인 자이즈 제품을 쓴다. 얼굴에서 너무 가까우면 어지러울 수 있어 적절한 거리를 실험 또 실험한다. 다음 시즌 제품은 플랫바. 편평함(flat)에서 오는 세련미를 극도로 표현해볼 생각이다.
실험과 실패도 기꺼이 반복한다. "다리 사이에 들어가는 경첩을 구조적으로 여러 개 나누어 만들어보려 한 적 있어요. 3D프린터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중국 공장을 오가며 샘플링을 열 번도 넘게 받아봤죠. 많이 노력했는데도 결과물이 좋지 않으면 출시하지 않아요. 안경이란 게 매우 예민한 구조라 0.01㎜ 오차만 나도 우리가 원하는 정교함이 구현되지 않거든요." 그러고 보니 '혁신'의 아이콘인 전자제품 브랜드 다이슨과 닮았다. 5년에 걸쳐 무려 5127개 시제품을 제작한 끝에 듀얼 사이클론 진공청소기를 개발한 제임스 다이슨 회장이 안경을 만든다면 젠틀몬스터 같지 않았을까.

목욕탕을 개조한 특별한 안경점
젠몬의 실험은 공간으로도 이어진다. 작년 5월 문 연 서울 계동 쇼룸은 50년 가까이 주민들이 애용한 '중앙탕'을 개조했다. 하늘색 목욕탕 타일을 원형 그대로 살렸다. 수영장을 개조하면서 바닥 타일을 보존시킨 파리 에르메스 세브르 매장보다도 한 단계 진화시켰다. 물 끓이는 기계를 노출시켜 '에너지 전환을 보여주는 예술 설치물'로 만든 것도 인상적이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쇼룸은 또 다르다. 침실과 벽장, 욕조가 한가운데 놓인 화이트 톤의 욕실, 남성용 이발 의자가 놓인 바버숍을 인테리어 삼았다. 고급스러운 유럽풍 인테리어를 즐기며 선반 곳곳에 있는 안경을 골라 써볼 수 있다.
홍대 플래그십 스토어에 '퀀텀 프로젝트'를 선보일 때부터 '몬스터적' 기질은 드러났다. 하예진 비주얼 총괄팀장이 설명했다. "요즘 시내는 1년만 지나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화하죠. 퀀텀 프로젝트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공간이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 깊음'이란 주제로 시작했어요. 이제는 그 변화 자체도 많은 사람에게 '당연한 것'이 되었죠. 우리 플래그십의 가장 큰 특징은 예측 불가능한 것에서 오는 감정이기 때문에 새롭게 계획하고 있는 홍대 플래그십 1층은 퀀텀만큼이나 특별한 공간이 될 겁니다."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회사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투자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철학. 인테리어·설계 등을 담당하는 공간팀원 16명과 오브제, 설치작업 등 20명으로 구성된 비주얼팀이 서로 협업해 공간을 설계하고, 폐기하며 채워나간다.
3년 전만 해도 20명뿐이던 작은 회사가 200여 명 직원을 둔 회사로 성장한 동력은 '아이디어'였다. 신나정 브랜드 팀장은 "누구나 아이디어를 내는 '코멘트 제도'가 있다"며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업무 경계를 파괴하고 다른 직원들과 협업한다"고 말했다.
배재호 공간총괄팀장은 말한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새내기부터 30대 중반이 직원의 대다수입니다. 이제 막 세상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집단이죠. 그만큼 더 할 수 있다는 투지와 겪어본 적 없는 어려움에 대한 걱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죠. 하지만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며 최대한 빠르게 진화하는 브랜드가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세상이 우리에게 집중하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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