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웃지 않는 개그반>-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는 재난의 시대
우리는 ‘사과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사과에 목말라 있다. <웃지 않는 개그반>은 그러한 ‘재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교실에 걸린 3박4일의 저주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미 더욱 긴 저주와 재난을 목도하고 있다.
대학에서 강의하던 때, 한 번 늦잠을 잔 일이 있다. 오전 9시 수업이었는데, 침대에서 눈을 떠 보니 9시였다. 꿈인가 싶어 멍하니 있다가 이내 정신이 들었다.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고, 옷을 입고, 가방을 챙겨서 뛰어나오는 데까지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차에 타서 시동을 걸고는 반장에게 “30분 정도 늦을 것 같습니다. 공지를 부탁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러고는 정신없이 엑셀러레이터를 밟다가, 학교가 가까워오자 그제서야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무어라 말해야 하지?”
한 개인의 가혹한 과거를 외면하는 교실
사실 간밤에 마신 술 때문이었다. 어느 모임에서 거절할 수 없는 술자리가 마련되었고 새벽까지 그들과 함께했다. 그래도 학생들에게 “술 때문입니다”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학생들이 나를 어떤 인간으로 볼까, 하는 걱정도 되었고 혹시 학과장이나 선배 강사들의 귀에 그런 소식이 들어가기라도 하면 더욱 끔찍할 것이었다. 책임감이 없다는 평판은 둘째 치고 다음 학기 강사 선정이 어려워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는 길에 사고가 났다고 할까?” 아니면 “자동차 기름이 떨어져 보험을 불렀다고 할까?” 하고 오만가지 핑계를 상상해냈다.
그런데, 그러다가 문득 부끄러워졌다. 내가 하려는 것은 사과가 아닌 변명이었다. 당장을 수습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 이후 강의실에서 당당하게 학생들과 마주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용서를 구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사과’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네이버에서 연재되는 웹툰 <웃지 않는 개그반>은 사과해야 할 주체들을 한 공간에 모아둔다. 왕따를 당한 학생의 원혼이 교실에 저주를 걸어 3박4일 동안 그 누구도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독특한 설정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웃으면 린치를 당하게 되는데, 흑인이 백인으로 변한다거나 얼굴이 사슴처럼 변한다거나 수염이 자란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그 교실에는 우선 학생들과 담임교사가 있다. 그들은 모두 왕따의 공범이다. 한 학생을 따돌리는 데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고, 담임교사 역시 그러한 분위기를 감지하면서도 오히려 그를 가혹하게 대했다. 시간이 지나며 각 과목의 담당교사들과 교장까지도 교실에 들어와 저주의 희생양이 된다.
그러나 교실에서 린치를 당하는 그 누구도 자신들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한 상황에 놓인 것을 그저 한탄하고 분노할 뿐이다. 2015년 10월에 연재를 시작한 작품은 이제 56화에 이르렀지만, 그러는 동안 아무도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왕따를 당한 학생이 교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며 스피커를 통해 대화도 가능한 상황이지만, 저주를 피하는 데만 모두 힘을 쏟는다. 저주에 빠진 교실은 분명한 ‘재난’이지만, 그 이전에 한 개인이 더욱 큰 재난에 직면했던 과거를 모두 외면하는 것이다.

| 현용민 작가의 만화 <웃지 않는 개그반>에서 교장은 왕따를 당한 학생에게 사과하는 대신 굿판을 벌인다. 무당에게 교실의 운명을 맡기고는, 정작 자신은 책임의 자리에서 이탈한다. / 네이버웹툰 |
특히 학교의 수장이자 책임자인 교장은 처벌, 회피, 생존, 이 세 가지에만 관심을 둔다. “선생님들께서 학생들 케어를 아주 잘 하셔서 이런 이벤트가 벌어진 것 아닙니까?”라며 교사들에게 책임을 묻고, “상황만 끝나면 이 일을 만든 원흉… 반드시 찾아내서 아주 인생 끝내줄 테니까!”라고 벌써부터 ‘처벌’을 이야기한다. 교사가 저주의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자 “모르긴 뭘 몰라…. 누군가는 알겠지”라며 해당 교사와 학생들을 노려보는데, 모두가 땀을 흘리며 그 눈길을 피한다. 그러나 교장은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더라도, 모두를 대표해 사과해야 할 책임을 가진 존재이다. 왕따를 당한 학생에게 원인제공자를 찾아 처벌해주겠다고 장담할 것이 아니라, 우선은 사과를 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 역시 처벌받아야 할 가해자이다. 결국 그가 선택하는 해결 방법은 ‘굿’이다. 무당을 불러 원혼을 달래는 굿을 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교실에서는 굿판이 벌어진다.
무당에게 교실의 운명을 맡기는 동안, 무당은 작두를 타며 원혼을 달랜다. 평소 학생이 좋아했다던 치킨을 가져와 썰어내는 퍼포먼스도 곁들인다. 그러면서 모두에게 저주를 풀고 싶으면 무릎 꿇고 빌라고 말한다. 그제서야 학생들은 무릎을 꿇고, 교사들은 “당신들은 뭐 용가리 통뼈야?” 하는 말을 듣고서 마지못해 그에 따른다. 무당이 빙의가 된 연기를 시작하자, 곧 스피커에서는 “뭐하세요? 혼자” 하는 원혼의 비웃음이 들려온다. 난처해진 무당은 “죄 없는 사람들부터 풀어주고 나랑 다시 얘기하자”고 하는데, 학생은 “내 걱정은 개뿔… 푸힛” 하면서 웃는다. 교실의 모두는 ‘잘못’을 한 사람들이고 사과해야 할 주체들이다. ‘죄 없는 사람’이라는 규정은 가해자의 언어일 뿐이다. 결국 요란한 굿판을 벌이고서도,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분노케 만든 ‘대통령의 사과’
사실 ‘사과’라는 것이 흔한 행위가 되어버린 시대다. SNS에는 어느 연예인의 사과문이 올라오고, 여러 정치인들이 대중매체를 통해 사과 담화를 발표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들에게서 ‘미안’과 ‘죄송’의 수사를 듣기란 좀처럼 힘든 일이다. 버티고 버티다가 내어 놓는 사과는 듣는 이들을 오히려 분노케 한다. 얼마 전 ‘대통령의 사과’ 역시 그랬다. 그는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송구스럽다, 죄송하다, 하고 표현하면 될 것을 “~하게 생각한다”면서 사과하는 주체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자신을 행위의 주체가 아닌 제3자로 묘사하면서 뒤로 한 발 물러서는 것이다.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라는 핑계를 더해 당위성의 확보를 이끌어 내려고 했고,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는 표현을 통해 동정에 호소하기도 했다. 이것은 사과가 아니라 변명과 핑계이고, 나아가 자기 정당화일 뿐이다.
술을 마시고 늦잠을 자서 30분만큼 강의에 늦었던 그날, 나는 아마도 거의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강의실에서 오랜 시간 나를 기다린 학생들에게 “지각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하고 사과했고, “여기 오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어요. 어떤 핑계를 대야 할지요. 그런데 그냥 솔직하게 말할게요. 어제 늦게까지 술을 마셨어요, 그리고 늦잠을 잤습니다” 하고 말했다. 학생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여러분께 성실함을 강요하고 오히려 제가 지각을 했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오늘은 여러분 마음속으로 저에게 F학점을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학생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드니 모두가 잔잔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몇몇이 괜찮아요 교수님, 하고 말했고, 누군가는 고맙습니다 교수님, 하고 말했다.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려 해서 칠판을 향해 돌아서서 그날의 강의 주제를 적었다. 나는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온전히 사과하는 법에 대해 배웠다.
우리는 ‘사과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사과에 목말라 있다. 나 역시 ‘미안’과 ‘죄송’의 수사가 없는 자기 보호를 위한 사과만 해 온 인간이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제대로 사과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웃지 않는 개그반>은 그러한 ‘재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교실에 걸린 3박4일의 저주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미 더욱 긴 저주와 재난을 목도하고 있다. 나는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미안’과 ‘죄송’의 주체로서 온전히 사과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우리들 역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는 재난의 시대를, 이제 마감해야 한다.
<김민섭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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