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불혹의 프로레슬러 제프 하디의 황혼기.."명예보다 자유, 그리고 가족"

조형규 2016. 12. 15.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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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조형규 기자] 동북아시아 인문학의 원형이 된 고대 중국의 사상가 공자는 ‘논어’ 위정편을 통해 학문 수양의 발전 과정에 대해 자세하기 이야기했다.

여기에서 공자는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는 뜻이 확고하게 섰다. 마흔에는 미혹하지 않았고, 쉰에 하늘의 뜻을 알았다. 예순에는 타인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일흔에 이르러야 법도를 넘어서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이중 마흔을 가리키는 ‘불혹(不惑)’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말이다. 나이 40은 즉 잘못된 행동이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나이로 이미 마흔, 만 나이로도 따져도 마흔까지 불과 보름 가량을 앞둔 프로레슬러 제프 하디(39, 미국)는 지금 그 누구보다도 ‘불혹’의 의미를 잘 실천하고 있다. 한때 방황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이제는 TNA에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안정적으로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다. 최근 미 CBS 로컬 스포츠(CBS Local Sports)를 통해 공개된 인터뷰는 그의 굴곡진 인생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제프 하디는 1990년대 후반 WWE에 입단했다. '애티튜드 시대'라고 불리우던 프로레슬링 최고의 황금기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사진=ⓒWWE)

■ 동기부여의 상실···첫 번째 WWE 탈단

제프 하디는 굉장히 독특한 포지션의 프로레슬러다. 준수한 외모와 흡입력 넘치는 카리스마로 어린이와 여성 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화려한 공중기와 위험한 스턴트 액션으로 경기력 지상주의의 성인 남성 팬들에게도 환호를 이끌어낼 수 있는 선수였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였고, 마침 그의 전성기는 국내에서도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극에 달했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가 보여준 존재감은 굉장히 컸다. 아마 정도(正道)를 성실하게 걸었다면 지금쯤 스티브 오스틴, 더 락을 잇는 3세대 아이콘이자 존 시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전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신은 그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재다능한 하디에겐 치명적 결점이 있었다. 바로 예술에 대한 충동적인 창작욕으로 인한 본업의 불성실성, 그리고 약물의 유혹이었다.

첫 번째 위기는 바로 동기부여의 상실로부터 시작됐다.

1998년 친형인 매트 하디와 함께 WWE에 입단한 제프 하디는 데뷔 초 ‘하디 보이즈’라는 태그팀 전문 프로레슬러로 활동했다. 크지 않은 체격과 곱상한 외모의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1999년도부터였다. ‘애티튜드 시대(Attitude Era)’를 표방했던 당시의 WWE는 성인 지향적인 스토리라인과 자극적인 경기 연출을 추구했는데, 이러한 경기 연출은 자연히 많은 스턴트 액션이 수반된다. 그리고 제프 하디는 이 부분에 굉장히 특화된 프로레슬러였다.

제프 하디는 매번 경기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위험한 스턴트 액션을 연출하며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사진=ⓒWWE)

링 포스트에서 뛰어내리는 건 예사였고, 사다리 꼭대기나 10m에 가까운 철골 구조물에서도 자신이 피니시 기술인 스완턴 밤을 거침없이 날렸다. 꽃미남 같은 외모로 위험한 공중 동작과 과격한 하드코어 경기까지 치러내는 이율배반적 모습은 어린이와 여성, 성인 남성까지 모두 아우르며 광범위한 팬덤을 형성했다. 이에 놀란 WWE는 비록 일시적이었으나 언더테이커와 대립을 붙이며 푸시를 기획했다.

안타깝게도 푸시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0년대 초반의 WWE에는 무수한 메인이벤터 자원이 넘쳐났는데, 당시 메인이벤터의 중요한 요건 중 하나는 바로 근육질의 큰 체격이었다. 제프 하디는 그 대열에 합류하기엔 너무 작았다. 게다가 성실하지 못했던 인품도 한몫 거들었다.

폭발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유리천장을 느낀 제프 하디는 프로레슬링에서의 동기부여를 잃었다. 마침 2003년 무렵 그는 열정의 원동력을 잃은 프로레슬링 대신 자신이 평소에 좋아했던 음악과 미술 등 예술 활동에 더욱 치중하게 된다. 페록스와이젠(peroxwhy?gen)이라는 록 밴드를 결성해 뮤지션으로 데뷔했고,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보였던 미술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자연히 프로레슬링은 뒷전이 됐다. WWE 스케줄이 있는 날이면 으레 지각하기 일쑤였다.(심지어 지각 사유 중에는 '키우는 애완견이 나무에서 못 내려와서' 같은 이유도 있었다.) 라커룸에서의 평판도 점차 나빠졌다. 다양한 악재가 겹친 그는 자신의 예술 활동을 위해 더욱 여유 있는 스케줄을 보장하는 TNA로 이적한다. 2004년의 일이었다.

제프 하디는 2008년 WWE PPV 아마게돈에서 첫 월드 챔피언에 등극했다. (사진=ⓒWWE)

■ 인생을 나락으로 빠뜨릴 뻔 한 약물 중독

많은 이들이 제프 하디가 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한 시점도 바로 이 시기부터라고 추측하고 있다. 성공에 대한 한계, 창작에 대한 자유 등 많은 심적 변화를 겪은 것이 주원인이었다. 인생을 나락으로 빠뜨릴 뻔한 악몽은 그렇게 서서히 찾아왔다.

짧은 TNA 생활을 청산한 제프 하디는 2005년 다시 WWE로 돌아왔다. 그는 여전히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선수였고, 결국 WWE 수뇌부는 트리플 H와의 대립을 통해 메인이벤트로 키우는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2008년 WWE의 스토리라인 전반을 관통했던 핵심은 바로 ‘고난의 과정을 거친 언더독 제프 하디가 어떻게 커리어 사상 첫 WWE 월드 챔피언에 등극하느냐’였다. 그해 레슬매니아 24를 앞두고 WWE가 시행하는 웰니스 프로그램에 약물 복용 사실이 적발돼 잠시 푸시 계획이 끊긴 적도 있지만, 제프 하디의 높은 상품성은 식을 줄을 몰랐다. WWE도 잠시 중단했던 계획을 다시 추진시킬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2008년 WWE의 마지막 PPV(Pay-per View)인 아마게돈에서 트리플 H와 에지를 꺾고 사상 첫 WWE 월드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며 꿈을 이루게 된다.

2009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제프 하디는 이후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을 만난다. 계약이 만료된 제프 하디가 WWE의 재계약 제의를 거부하고 탈단했는데, 그 직후 불법 약물 소지 및 복용 혐의가 적발되어 긴급 체포된 것이다.

이 사건은 2009년 10월부터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제프 하디는 무려 청문회 일정을 다섯 번이나 연기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2011년 가을이 되어서야 뒤늦게 10일 구금, 벌금 10만 달러 및 보호관찰 30개월 처분이라는 결과가 내려졌다. 하지만 각계각층에서 쏟아지는 비난은 피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제프 하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디를 믿는다’며 러브콜을 보낸 WWE의 제안을 거부하고 다시 TNA와 계약했다. 웰니스 프로그램으로 자체적인 약물 관리 정책을 운영하는 WWE와는 달리 TNA는 별도의 검사를 실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많은 팬과 관계자들이 ‘약물 복용이 자유로운 환경으로 도피했다’는 의견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였다.

이러한 정황을 입증하는 증거는 2011년 3월에 열린 TNA의 PPV ‘빅토리 로드’ 현장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이날 제프 하디는 스팅과 TNA 월드 헤비급 타이틀전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메인이벤트 경기를 앞두고 트레일러 안에서 취한 상태로 쓰러진 채 발견된 것이다. 당시 하디를 발견한 TNA의 직원 브루노 새시는 “하디는 자력으로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부축이 필요했다”고 전했다. 도저히 경기를 치를 수 없는 상태임을 파악한 운영진은 스팅과의 메인이벤트 타이틀전을 1분 만에 종료시켰다.

이날의 돌발 상황은 지금도 TNA 역사상 최악의 사건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덕분에 지금도 많은 팬들은 당시의 제프 하디가 또다시 약물을 복용했을 것이라고 강력히 추측하고 있다.

2010년 첫째 딸, 2015년에 둘째 딸이 태어나면서 제프 하디는 과거보다 한층 인격적으로 성숙해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진=제프 하디 인스타그램)

■ 더 이상의 약물 중독은 없다···“가족의 존재가 날 더욱 강하게 만들어”

방황하던 20~30대를 보낸 제프 하디에게 찾아온 인생의 반전은 바로 가족이었다. 2010년에 첫째 딸이 태어나면서 제프 하디는 헌신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거 뇌진탕과 우울증, 그로 인해 약물을 복용하게 된 과오를 모두 뉘우치며 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태어날 것을 다짐했다.

마침 최근 그의 심리 상태를 엿볼 수 있는 인터뷰가 공개됐다. 제프 하디는 지난 10일(한국 시간) 미 스포츠 전문 매체인 ‘CBS 로컬 스포츠(CBS Local Sports)’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로서의 책임감, 뇌진탕과 우울증으로 인해 약물에 중독됐던 과거에 대한 후회,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창조적인 능력까지 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번에 발매되는 제 밴드의 신보에 ‘Irreversible’이라는 곡이 있어요. 이건 CTE(Chronic traumatic encephalopathy, 만성외상성뇌병증)에 대한 제 두려움을 표현한 곡입니다. 저는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면서 2~3번 정도의 뇌진탕 진단을 받았어요. 아마 실제로는 분명 더 많은 횟수의 뇌진탕이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많은 선수들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CTE가 있었는지를 알아차리게 돼요. 말 그대로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 손상이죠.”

“뇌진탕은 실제로 쉽게 일어나요. 경기를 하다가 머리를 세게 부딪치다 보면 이상한 진동이 오죠. 그리고 나면 ‘오 맙소사, 방금 뇌진탕이었나?’라며 데자뷰를 느끼게 됩니다. 다행히 지금은 머리를 향한 체어샷이 금지됐어요. 감사할만한 일입니다. 우리가 프로레슬링에 입문할 때 체어샷은 무조건 머리를 가격했거든요.”

“뇌진탕으로 은퇴한 대니얼 브라이언을 보면 우울하고 슬퍼져요. 그가 얼마나 프로레슬링을 사랑했는지 아시잖아요. 저 같은 경우 (뇌진탕으로 인한)가장 큰 우울증은 2009년 무렵에 찾아왔습니다. 그때 전 이미 바이코딘(마약성 진통제의 한 종류)에 중독된 상태였어요. 덕분에 곤경에 빠졌고 구속되기도 했죠. 하지만 다행히 전 CTE 관련 증상도, 자살 충동도 없어요. 약물로 인해 죽는 것보다 차라리 구속되는 게 낫죠. 이제는 더 이상 약물 비슷한 것조차 사용할 일이 없습니다.” 

“2010년 제 첫 딸이 태어났을 때 ‘Rudy'라는 곡을 썼어요. 하지만 지난 새해 이브에 둘째 딸이 태어났고, 저는 두 딸을 위한 노래로 그 곡을 다시 다듬었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곡이 페록스와이젠의 ’Spawn of Me'입니다. 제가 지난 6년간 약물 문제에 있어서 정말 깨끗하다고 자부하는 이유는 바로 이 두 딸의 존재가 저를 더욱 강인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에요.”

지난 7월 TNA에서 방영된 파이널 딜리션은 제프 하디와 브로큰 매트의 형제간 대결을 담고 있다. (ⓒTNA)

■ B급 컬트무비와 프로레슬링의 만남, TNA 파이널 딜리션(Final Deletion)

아버지가 되고 가장의 책임이라는 의무감으로 각성한 제프 하디는 2011년 가을 무렵부터 180도 변모한 태도를 보였다. 이전과 다르게 본업인 프로레슬링에 성실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제프 하디는 현재 형제인 매트 하디와 함께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비록 그 무대가 WWE가 아닌 TNA이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하지만 프로레슬링 마니아들은 올 한해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최고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하디 형제의 ‘파이널 딜리션(Final Deletion)’ 이벤트를 기억할 것이다.

파이널 딜리션의 핵심은 바로 프로레슬링과 B급 컬트무비의 결합이다. 비록 엔터테인먼트를 표방하지만, 표면적으로 라이브 컴뱃 스포츠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기존 프로레슬링이 가진 사고를 정면으로 비트는 일종의 블랙 코미디다.

지난 7월 첫 방영된 TNA 파이널 딜리션은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형 매트 하디와 갈등을 겪던 제프 하디가 점차 이에 동화되어가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하디 형제는 각자의 이름도 ‘브로큰 매트’와 ‘브로큰 브라더 니로’로 변경했다. 이들은 기존에 갖고 있던 익스트림 이미지를 폐기처분하고, 대신 그 자리에 사이코패스 같은 광적인 콘셉트의 캐릭터와 편집 연출 능력을 앞세운 경기 스타일을 끼워 넣었다. 20년 가까이 이어온 자신들의 한결같은 기믹을 통째로 뒤흔드는 대변신이었다.

하디 형제는 파이널 딜리션에서 흡사 미치광이에 가까운 모습으로 경기에 나선다. 그런데 그 경기는 링이 설치된 경기장에서 열리지 않는다. 집안, 뒷마당, 호숫가 등 다양한 야외 장소에서 미리 촬영된 장면을 보여주는데, 경기 내용이 압권이다. 영상 속에서 이들은 막싸움이라 불릴 정도로 엉성한 액션을 주고받는가 하면, 서로 폭죽을 쏘거나 불꽃을 터뜨리며 이를 작은 조각배로 막아내는 우스운 연출을 보여준다. 심지어 싸우는 도중 변신을 하는 황당한 설정까지 난무한다. 

파이널 딜리션은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사이에서 후자에 확실하게 방점을 찍었다. 컬트무비와 백야드 레슬링(외국에서 10대 아이들이 집 뒷마당에 매트나 간이 링을 설치하고 프로레슬링 기술을 연습하거나 흉내 내는 것을 지칭)에서 영감을 받았고, 프로레슬링의 영역이라기보다는 한편의 B급 영화 내지는 특수 촬영물에 가깝다. 경기장의 관객들은 미리 제작된 이 영상을 현장에서 보며 실소를 터뜨리지만, 기발한 발상과 아이디어에는 감탄을 연발한다.

결국 파이널 딜리션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은 두 형제는 지난 10월 열린 TNA 최대의 PPV ‘바운드 포 글로리’에서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리고 이 각본은 마니아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등에 업고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이후 하디 형제는 '브로큰 하디즈'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그팀을 결성한 뒤 디케이와 대립하고 있다.  (ⓒTNA)

■ 익숙한 과거보다 신선한 도전을···창조적 자유 원하는 불혹의 프로레슬러

기존의 발상을 뒤엎은 이 각본에 마니아들이 열광했다. TNA에 대한 언급 자체를 일절 금하고 있는 WWE에서조차도 TNA 파이널 딜리션 경기를 모든 수뇌부들이 지켜봤다. 그리고 이와 동일한 콘셉트를 차용해 와이어트 패밀리와 뉴 데이의 태그팀 대립에 일회성으로 녹여내기도 했다.

이는 굉장히 의미 있는 혁신이었다. 사실 현재 TNA는 재정난과 단체 소유권 문제로 법정 분쟁에 휘말려 위태로운 상황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프 하디는 이러한 점을 강조하며 TNA에 머물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난 6월까지만 하더라도 “은퇴는 WWE에서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파이널 딜리션이 그에게는 또 다른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 셈이다. 

“모든 것은 파이널 딜리션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놀라운 것들을 해냈죠. 지난 바운드 포 글로리에서는 제 밴드의 ‘Obsolete’을 입장곡으로 쓰기도 했고, 직접 퍼포먼스도 구성했습니다. 오는 15일에는 ‘토탈 논스톱 딜리션’이 공개될 텐데요. 제 형제 매트 하디의 집에서 촬영을 마쳤습니다. 정말 재밌는 레슬링 쇼가 될 거예요. 보장합니다.”

“오는 2월 TNA와의 계약이 만료되지만 WWE로 돌아갈 생각은 없어요. WWE 팬들에겐 미안하지만 한번 상상해보세요. 과연 월요일 밤의 러(RAW)에서 파이널 딜리션이 열릴 수 있을까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이 콘셉트가 잘못된 방향일 수도 있죠. 하지만 이런 창조적인 자유를 다른 곳에서는 구현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전형적인 모습의 과거로 돌아가는 것보다, 새롭고 신선한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이곳에 머물고 싶어요.”

제프 하디는 CTE에 대한 두려움과 우울증, 이로 인한 약물 중독이라는 인생의 풍파를 겪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족을 얻었다. 두 딸에 대한 책임감은 그를 성실한 사람으로 재창조했다. 또한 가끔씩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넘쳐나는 창작욕 때문에 근무태만을 야기했던 과거와도 결별했다. 다행히 예술에 대한 열망을 프로레슬링이라는 매개로 녹여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아직도 제프 하디를 기억하는 많은 팬들이 여전히 그의 WWE 복귀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팬들의 열망만큼 중요한 건 바로 본인이 가진 삶에 대한 애착과 진정성이다. 현재 제프 하디는 어두웠던 과거와 세상 유혹들을 모두 청산하고 한 사람의 아버지이자 예술가로, 그리고 프로레슬러로서 자신의 생에 충실하고 있다. 그는 이제야 서서히 ‘불혹’의 의미를 깨달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물론 WWE의 링에서 스완턴을 날리는 제프 하디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자신의 열정과 진심을 전부 쏟아낼 수 있는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삶의 강한 의지를 느끼게 한다. 프로레슬러 제프 하디가 아닌, 불혹의 제프 하디를 응원하고 싶은 이유다.

[사진] ⓒWWE/ⓒTNA/제프 하디 인스타그램
조형규 기자 (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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