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미디어] 'DUGOUT Report' 충암고등학교 고우석

이 친구 보게! 당차디당찬 열아홉 소년의 돌직구에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군더더기 없는 파워 피쳐.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은 충암고등학교의 에이스, 고우석이 <더그아웃 매거진>과 함께했다. 다부진 체격과 150km가 넘는 강속구로 일찌감치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각인!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서울권 최대어로 평가받은 고우석은 여러 구단의 이목을 끌기에 이미 그 실력이 충분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 솔직담백한 말솜씨 역시 강속구처럼 화끈했는데! 자, 지금부터 초집중! 이제부터 그가 구석구석 던지는 돌직구를 받아보자. 팡팡!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김현세

제1구 처음부터 LG 너였다


지명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그냥 몸 만들면서 지내고 있어요. 학교에서 진행하는 훈련은 따로 없어서 쉬고 있죠. 주말에는 친구도 만나고요. 제가 나가서 움직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집에만 있거나, 놀러 나가도 보통 실내에 있는 시간이 많아요. 카페에 있을 때도 있고, 피시방에 가기도 하고요. 롤(리그 오브 레전드)이랑 오버워치 좋아해요. (계급이 높다던데….) 아, 그게…. 친구들이랑 SNS에 장난친 거예요.


SNS로 ‘LG 팬 인증’을 했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아, 그게 중학교 3학년 때일 거예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운동하기 시작했는데요. 야구 시작했을 때부터 LG를 좋아했어요. 고모부가 LG 팬이셔서 자연스레 좋아하게 됐거든요. 제가 사실 야구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야구 자체를 몰랐어요. 명절 때 친척들, 고모부랑 같이 야구를 하면서 좋아하게 됐죠. 야구 시작한 후로 저만 따로 고모 댁에서 살았는데요. 그때 LG 야구만 정말 많이 봤어요.


LG에서 누가 가장 기억에 남던가요?

제일 좋아했던 선수는 이대형(현 kt 위즈) 선배님이었어요. 어렸을 때 정말 좋아했어요. 그런데 중학교 올라가면서 TV 보는 시간도 줄고…. 그래서 하이라이트로 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훈련도 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1회부터 9회까지 쭉 챙겨보기는 어려웠죠. (왜 이대형 선수를 좋아했어요?) 제 어렸을 때 꿈이 달리기 빠르고 그라운드 위에서 잘 뛰어다니는 선수였거든요. 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 말린스) 선수처럼요. 그런데 투수를 전문적으로 하면서 많이 바뀌게 됐죠.


처음에는 투수가 아니었어요?

네. 처음 야구 시작했을 때는 외야수였어요. 그러다 내야로 들어갔고요. 투수를 제대로 하게 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고요. 사실 그때도 ‘투수를 확실히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요. ‘아, 이제 난 투수를 본격적으로 잘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중학교 2학년 여름 때부터였어요.


왜 하필 투수였을까요?

그때부터 제가 봐도 다른 또래 친구들보다 공이 좀 더 빨랐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어깨는 좀 좋았거든요. 사실 저는 그걸 몰랐어요. 그런데 중학교 야구부에서 저를 투수로 키워주려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나는 투수가 더 맞구나’ 싶었고, 이 포지션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됐죠.


몸 만들면서 어떤 부분을 보완하고 있어요?

제가 올겨울에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했는데요. 그때 같이 지냈던 트레이너 선생님이 계세요. 그분이 제 몸 상태도 잘 알고 계시니까, 믿고 따르는 중이에요. 지금은 투수로서 필요한 근육은 키우고, 불필요한 근육은 빼는 쪽으로 운동하고 있어요. (수술 후유증이 없다는 평이 많아요. 본인 생각은 어때요?) 분명 (통증이) 조금 있기는 있어요. 근데 운동장 들어가면 그런 걸 잘 못 느끼죠. 제 성격이 일단 시작하면 무조건 최선을 다해야 돼요. 만약 ‘아, 오늘 최선을 다하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제가 먼저 쉬겠다고 말하고요. 그런 상황 아니면 무조건 최선을 다해야죠. 움직였을 때 불편하면, 쉬거나 가볍게 하겠다고 말하는데요. 말 안 하고 무리하게 참고 하다 운동장에서 안 좋은 모습 보이면 팀 분위기도 나빠지잖아요. 그런 건 확실하게 말씀드리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야구를 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는 뭐예요?

처음에 (부모님을) 계속 졸랐어요. 정말 하고 싶다고…. 처음에 야구를 접한 그 순간부터 계속 졸랐죠. 3학년 가을 때부터요. 뭔가, 확 오는 게 있었거든요.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는 느낌? 제가 어렸을 때부터 운동하는 걸 유독 좋아했어요. 여러 종목을 두루 해봤는데요. 모두 재미있긴 한데, 평생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거든요. 그런데 야구는 달랐죠. 처음 했을 때 ‘이거는 정말 하고 싶다’,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또 당시에 제가 그렇게 잘했던 것도 아니에요. 뭐든 자기가 잘해야 재미있잖아요. 근데 저는 못했어요. 못하니까 오히려 더 해보고 싶더라고요. 저는 처음 접하는 운동도 못했던 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어느 정도 평균은 다 했는데, 유독 야구만 못했어요. 그래서 야구를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했죠. 부모님은 처음에 반대하셨지만요.


강화 석모도 출신의 소년은 그렇게도 야구가 하고 싶었다. 야구를 만나기 전까지 부모님을 졸라본 적조차 없던 소년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부모님을 집요하게 설득한 결과, 마침내 야구부에 발을 들이게 된 고우석. ‘한번 해봐라’라는 마음으로 그를 내보냈던 부모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환경에서 적응하기 쉽지 않을 거라 우려했지만 소년은 어느새 야구에 푹 빠져있었다.

제2구 무조건 이겨야겠다


와일드카드 2차전 봤나요? 그런 경기에 선발로 등판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그럼요. 봤죠. 음, 제가 류제국 선배님이었다면요? ‘무조건 이겨야겠다’는 생각뿐일 것 같아요. 제가 마운드 위에 있을 때는 생각을 많이 담아서 던지려고 하지 않아요. 위기 때도 마찬가지고요. 공에 마음을 담아 던지긴 하죠. 그런데 그 마음가짐도 간단해요. ‘무조건 저 타자를 잡아야 한다’는 거예요. 사실 제가 평소에도 생각을 복잡하게 하는 편은 아니거든요.


그러면 평소 성격은 어때요?

직설적이에요. 돌려서 말하지 않고요. 있는 그대로 말하거든요. 주변 이야길 들어보면 제가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라고들 해요. 중요한 말만 직설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죠. 그리 까다로운 성격이 아니라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고요.


좋아하는 음식은 뭐예요?

특별히 좋아하는 건 찌개류고요. 저는 부대찌개 좋아해요. 그리고 초밥도요. 방금도 막 먹고 왔거든요. (군침) 제가 라면이나 분식류는 잘 안 먹는데요. 아무래도 운동을 해야 하니까 조절하게 되는 것 같아요.


스스로 체계적으로 관리해온 것 같아요. 식단이라든지요.

(라면이나 분식류는) 진짜 가끔 먹었던 것 같아요. 늦게 일어나거나 급할 때만 가끔 먹었고요. 그렇지 않을 때는 잘 안 먹었죠.


얼마 전 잠실야구장에 팬들한테 인사하러 간 걸 봤어요. 그때 입은 정장 핏이 좋던데요?

올해 처음 장만한 건데요. 그전에 결혼식 때 먼저 입어봤거든요. 아직은 조금 어색하더라고요. 그날 팬분들이 뜨겁게 성원해 주셔서 정말 감동이었어요.


선수단 인사는 따로 했나요?

메디컬 테스트 때 잠깐 뵌 게 다예요. 전부 다 뵙지는 않았고요. 아직 정식으로 인사하지는 않았지만, 얼른 뵙고 싶습니다. 그때 가면 ‘아, 이제 시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팬 입장에서 바라본 선수들을 보는 게 신기할 것도 같아요.) 고등학교 때부터 그런 생각은 사라졌어요. 당장 옆에 있던 선배들이 프로에 가니까요. 점점 가깝게 다가온 거죠. 그 후로는 야구 볼 때 팬심으로 본 적은 없었어요. ‘이 팀은 어떤 야구를 하는구나’하는 관점에서 자주 봤고요. 어떤 팀을 가게 될지 모르니까 여러 팀을 주의 깊게 봤죠. 팀마다 어떤 야구를 하는지, 현재 어떤 상황이고, 리빌딩을 하고 있는지 등에 주목했는데요. 그런 관점으로 봤기 때문에 신기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인사하게 되면 누구와의 만남이 가장 기대되나요?

이상훈 코치님이요. 진짜 멋있으시잖아요. 정규시즌 최종전 때 시구도 정말…. (엄지 척)


시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친구 윤성빈 선수(부산고등학교, 롯데 자이언츠 1차 지명)도 시구를 했잖아요. 본인은 그런 욕심 안 생기던가요?

아, 저는 그런 욕심 없어요. (절레절레) 그때 던진 공이 넘어가서…. 성빈이한테도 뭐하는 거냐고 얘기했거든요. 아, 너무 웃겼어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웃겨요. 그거로 엄청 놀렸죠.


언젠가 시구할 날이 온다면 꼭 넘기지 않길 바라요. 그런데 고우석 선수는 본인이 LG에 갈 거라고 예상했어요?

아뇨. 제 주변 사람들은 가게 될 거라고 많이 얘기해줬는데요. 정작 저는 단정하고 있지 않았어요. 솔직히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도 제가 원하는 팀에 가게 돼서 정말 좋았죠.

바라던 팀에 가는 기분은 어땠을까요. 지명받은 날 축하파티도 했나요?

파티라기보다는…. 가족이랑 같이 케이크 먹었어요. 그날 축하한다는 연락도 많이 왔고요. 기분 진짜 좋았죠.


올해 LG에 지명받은 11명의 선수 중 첫 번째예요. 사람들의 기대가 부담되지는 않았어요?

음, 네. 부담은 없어요. 일단 입단하게 되면 그 순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다 같은 동기일 뿐이니까요. 청소년대표팀에 같이 발탁된 (손)주영이랑 친한데요. (김)성협이도 있고요. 그리고 (전)준호도 친하죠. 준호네 학교(청원고)랑 연습 게임을 자주 했거든요. 모두 친하다 보니까 저희끼리 입단 순번은 의식 안 하게 되죠.


이제 시작이잖아요. 첫인상이 그만큼 중요할 텐데요. 어떤 선수로 각인되고 싶어요?

최선을 다하는 선수요. ‘얘는 뭘 해도 항상 최선을 다하는구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데서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서도 느낄 수 있는 그런 거요. 그런 노력이 쌓이면 언젠가는 밖으로 나오게 돼 있잖아요. 그게 다 내공이 되기도 하고요.


고종사촌인 유재유 선수가 한 해 먼저 입단했어요. 지명 이후 뭐라고 조언해줬나요?

간단하게 얘기해줬어요. “잘해라”라고요. 사실 자주 보는 형이라서요. 특별한 조언보다는 간단하게만 해줬죠. 평소에 얘기해주는 게 많으니까요. 지금은 일정 차이가 많이 나다보니까 잘 못 보는데요. 이제 더 자주 볼 수 있겠죠? (프로 가서 만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럼요. 같이 1군에서 활약하게 된다면, 그게 최고죠.


유재유 선수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함께 나왔어요. 같은 야구부에 속해있으면서 껄끄러웠던 적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고우석 선수한테 따끔하게 하기도 했나요?

아뇨. 그렇지는 않았어요. 일부러 보이는 곳에서는 신경 안 쓰는 척했죠. (눈치도 보이고 그랬을 텐데요.) 형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저한테 잘해주는 모습 보이면 동기들이 싫어하는 걸 아니까요. 안 보이는 데서는 잘해주더라도 보이는 곳에서는 무관심한 척도 하곤 했죠.

제3구 나 이런 사람이야


지금까지 본인의 플레이스타일 한번 평가해볼까요?

저는 도망가지 않고 계속해서 승부하는 스타일이에요. 상대를 꼬셔내는(?) 것보다는 힘 대 힘으로 붙어서 이기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아요.


충암고는 어떤 스타일의 야구를 하나요?

충암고는 전통적으로 점수를 최대한 안 주고 한 점 뽑아내는 야구를 해요. 그래서 작전도 많고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타격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인데요. 물론 강했던 해도 있지만, 옛날 기록부터 살펴보면 대체로 약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아요. 팀 컬러가 어떻게든 막아내는 야구랄까요.


1-0으로 이기는 스타일이라면 투수들이 너무 피 말릴 것 같은데요.

근데 저는 한 점 차 승부에서 더 발전하는 것 같아요. 한계에 부딪혔을 때요. 집중력도 높아지고요. 충암고에 있으면서 그런 경기가 워낙 많았어요. 경기 스타일이 대체로 그러니까요. 그런 팀 컬러, 게임 분위기 속에서 뛰었던 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던 것 같아요. 정신력을 많이 다스릴 수 있던 계기이기도 했고요.


여태 모든 보직을 다 겪어봤겠지만, 어떤 게 잘 맞았어요?

셋 다 해봤는데요. 지금까지 중간에 나와서 던졌을 때 경기력이 그렇게 좋았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선발로 나가서 끝까지 던졌을 때가 오히려 좋았어요. 사실 보직 신경은 별로 안 쓰는데요. 보니까 선발로 나갔을 때 성적이 제일 좋더라고요. 결과적으로는요. 이기든 지든 따지고 봤을 때 선발로 나간 날이 성적은 조금 더 괜찮았죠. 마음가짐은 다 똑같았는데도요.


고척스카이돔 공식 1호 완봉승의 주인공이더라고요?

네. 지난 청룡기 때 얘긴데요. 그날 컨디션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 기록 남기게 돼서 정말 영광이죠. (감격)


벌써 굵직한 타이틀을 갖고 있는데요? 프로 무대에서 욕심나는 타이틀은 없나요?

네. 직접적으로 타이틀 욕심은 없어요. 제가 잘하면 다 따라오지 않을까요? 잘하면 다 뒤따라올 거로 생각해요. 그게 탈삼진이 됐든 승리가 됐든지요.


프로에서 만나보고 싶은 선수가 있나요?

한 타자보다 한 팀 전체를 승부해보고 싶은데요. 1군에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니까요. 한 타자만 승부하고 내려가기에는 좀 아쉽잖아요. (웃음) 팀마다 특성이 다르고 다들 훌륭하신 분들이고요. 모든 팀 다 붙어보고 싶어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구종은 뭐 던지고 있어요?

직구,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이요. 제일 자신 있는 건 직구랑 슬라이더예요. 직구는 최고 151km 나오는데요. 평균 구속은 컨디션 좋을 때 최고 구속이랑 1~2km 정도 차이나요. 몸이 좀 무겁거나 그럴 때는 145~7km 정도 나오고요.


어렸을 때부터 빠른 공의 장점을 잘 살렸어요.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은 뭘까요?

뭐랄까요. 타자와 승부할 때 버리는 공도 있어야 하고, 타자를 꼬실(?) 줄도 알아야 하는데요.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제가 유리한 상황에서 상대를 더 불리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 상황에서도 붙으려고 하니까 도리어 맞은 적도 꽤 있거든요. 그래서 학교에서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근데 제 생각은 좀 달라요. 물론 그러기도 해야겠지만,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장점을 극대화해서 단점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 성격이 쓸데없는 볼 던지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제4구 10년 뒤가 기대되는 열아홉 소년


지금까지 야구 인생을 돌아봤을 때 가장 아쉬웠던 적은 언제예요?

올해죠. 1년 내내 좀 아쉬웠어요. 수술하기 전까지 선수들끼리 뭉치면서 팀 성적도 높은 곳을 바라보기도 했는데요. 다친 후로 많이 계획이 틀어진 것 같아요. (학교 에이스잖아요. 미안함도 컸을 텐데요.) 그렇죠. 많이 미안했어요. 당시에 감독님은 “수술도 했는데 일찍 합류한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해주셨는데요. 재활은 원래 6개월 넘게 걸리는 거였어요. 제대로 컨디션 회복해서 최상의 공울 던지는 것까지는 1년 정도 걸리는 거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3~4개월 만에 회복했죠. 회복 속도도 남들보다 조금 빨랐던 것 같고, 정신력으로 버텼죠.


재활할 때 힘들진 않았어요?

많이 힘들었어요. 처음에 아픈 것도 참고 했는데요. 지금까지 잠깐이나마 야구공을 내려놨던 적이 없었거든요. 빨리 야구 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때 재활하면서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났고요. 같이 힘겨워하셨으니까요. 그리고 유성원, 이상원 트레이너 선생님도 많이 도와주셨는데요. 덕분에 빨리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기뻤던 때는 언제였어요?

많았죠. 그런데 우승을 해봤으면 좀 더 기뻤을 텐데…. (고무룩) 대표팀 뽑힌 것도 기뻤고요. 제가 2학년 때 못 가고, 3학년 때 처음 가봤는데요. 가기 전까지만 해도 2학년 때 못 간 거에 대해서 아쉽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한 번 가보니까 ‘아, 2학년 때도 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정말 좋았거든요.


아시아청소년대표팀에 발탁돼서 대만전에 등판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때 오심 논란이 있던데, 아쉬워하는 표정이 잡혔어요.

제가 승부욕이 좀 강해요. 1루에서 (이)정후가 태그를 했는데, 세이프가 됐을 때는 아무 얘길 안 했어요. ‘이게 왜 세이프지?’라고만 생각했고요. 갑자기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지니까, 들어가서 할 얘기도 없고…. 아무 생각 없이 망연자실했죠. 게다가 우는 친구들도 몇 보이니까, 저도 많이 서럽더라고요.


본인은 눈물이 많은 편이에요?

보통인 것 같아요. 많이 울지는 않고요. 그런데 그날은 눈물이 좀 났어요. (야구 하면서 운 적이 또 있었어요?) 몇 번 있어요. 항상 질 때죠.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중학교 3학년 때 소년체전인데요. 준비를 정말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1차전에 져버렸어요. 휘문중학교랑 붙었는데, 너무 억울하더라고요. 그날 많이 슬펐죠. 많이 준비한 만큼 실력이 안 나왔으니까요. 좀 이겨서 올라가다 졌으면 모르겠는데, 아무것도 못 해보고 1차전부터 져버렸으니까….


앞으로는 웃을 날만 가득하길 바라요. 그런데 성인대표팀에 대한 꿈도 있을 것 같아요.

국제 대회를 하면 다 나가고 싶어요. 청소년대표로 태극마크 달았을 때도 감흥이 남달랐어요. 정말 좋았거든요. 그리고 국제 경기에서 나오는 그 승부욕은 또 다르더라고요. 국가대항전으로 붙는 거니까. ‘무조건 이겨야겠다’, ‘꼭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죠. 원래도 그런 생각이 강한데 더 강해지는 무언가가 있더라고요. 실제로 시합도 더 재밌고요.


롤모델이 있나요?

선수를 정하는 것보다 제 나름대로 생각해놓은 게 있는데요. 팬들 기억 속에 ‘은퇴할 때 정말 떠나보내기 싫은’ 선수가 되는 거예요. (지금 LG에 그런 선수가 있다면 누굴까요?) 박용택, 이병규(9번) 선배님일 것 같아요. LG 트윈스의 프랜차이즈이자 레전드시잖아요. 어느 팀을 가든 한 팀에서 오래 뛰면서 팬들의 사랑을 받는 건 모든 선수의 로망이죠. 물론 저 또한 국내에서 꾸준히 뛰는 목표도 있지만, 해외도 한번 나가고 싶어요.

그렇다면 10년 뒤의 모습은 어떨까요?

아마 야구를 하고 있겠죠?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요. 음, 제가 스물아홉이니까…. (고민) 해외 나가서 야구 하고 있지 않을까요?


이제 몇 달 뒤 졸업이에요. 가장 먼저 뭘 하고 싶나요?

제일 하고 싶은 거요? 야구 하고 싶어요. 정말요. 단지 바람이 있다면 아마추어에서 조금 더 하고 싶어요. 그래도 어렸을 때가 가장 순수하니까요. (벌써 졸업한 것 같은데요?) 아, 지금 학교를 안 나가고 있으니까요. (웃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졌을 때 너무 아쉬웠어요. 지면 끝나는 거니까…. 고등학교 시절 마지막 야구잖아요. 졌을 때 너무 허탈해서 아무 말도 못 하겠더라고요. 언젠가 야구대제전에서 못다 한 한을….


프로 선수가 되는 데 도움 준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아요.

이제 준비를 많이 해온 만큼 프로에 가서 하루하루 매일 발전하는 모습 보일 수 있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정말 모든 분께 감사드리고요. 아, 그리고 제가 초등학교 때였을 거예요. 그때 1억씩 나눠드린다고 한 적이 있는데요. (웃음) 고모부가 그걸 기억하시더라고요. 그 약속도 지킬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계약금은 어떻게 사용할 계획이에요?) 부모님 드리고, 기부도 하면 좋을 것 같고요. 친구들한테도 쏴야 돼요. 애들이 먹고 싶은 거로 저녁 한 번 살 생각입니다.


LG 팬들에게 돌직구 한마디!

잘하는 모습 보여드리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것보다 야구장에서 매일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데에서까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자신감과 자만심은 분명 다르다. 그의 공이 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 있게’ 던지니까. “저는 도망가지 않고 계속해서 승부하는 스타일이에요.” 어쩌면 양날의 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주관은 여전히 뚜렷하다. 고우석은 실력으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며 가치를 증명한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기에 그는 결코 자신을 높여 말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니까. 잠실벌의 ‘차세대 에이스’는 오히려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 소리 없이 자신을 보완해나간다. 세간의 주목을 받은 열아홉 소년이 택한 것은 자만 대신 겸손과 배려였다. 고우석, 이름 석 자 기억해둘 만하지 않나.


            더그아웃 매거진 11월호(67호) 표지

위 기사는 대단한미디어에서 발행하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6년 11월호(67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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