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運 가르는 위도·경도..地理라는 '운명'

지구란 별의 땅의 생김새가 원인이라면 복잡다단한 인간 행동은 어떤 결과다. 전국을 뒤덮은 폭염은 위도나 경도의 문제여서 지리학과 무관하지 않다. 무더위에 노동은 고되고, 혹자는 목숨도 잃는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도 엄밀히 따지자면 지리학의 문제다. 최적지를 찾으려는 시도가 최근 한반도의 쟁투다. 책 '지리의 힘'을 쓴 마셜은 "전쟁, 권력, 정치, 사회적 발전 등 우리의 삶은 언제나 우리가 살아가는 땅에 의해 형성됐다"고 선언한다.
물론 '지리 결정론'을 다룬 책은 많다. 지리가 인간 삶을 구성했다는 결정론자들의 해석과 각주는 다양했다. 로버트 마르크스는 '어떻게 세계는 서양이 지배하게 되었는가'에서 풍부한 석탄 매장량에서 영국 산업혁명 원인을 찾았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나와 세계'에서 기온차 혹은 입지 조건이 인간 행동을 규정했다고 봤다. 두 책이 연역적 총론이라면 마셜의 이번 책은 귀납적 각론이다. 중국, 미국, 서유럽, 한국, 일본, 러시아, 라틴아메리카, 중동, 인도, 파키스탄, 심지어 북극까지 '지리 결정론'을 확장해서다. 하름 데 블레이의 '왜 지금 지리학인가'가 4개 지역을 뭉뚱그려 조명한 시선보다도 더 세밀하다.

무력으로 침범하기 어려운 지리였던 미국은 영토를 전략적으로 구입하는 영민함으로 강대국 명성을 얻었다. 북대서양을 건넌 17세기 유럽인들은 이곳이 비옥한 토지임을 알아차렸다. 1500만달러짜리 서명으로 1803년 뉴올리언스 소재 루이지애나를 프랑스로부터 구입했고, 1867년에는 러시아에서 알래스카를 사들였다. 멕시코만의 한 항구도시, 북극으로 이어지는 '눈 한 보따리'를 거액에 샀다는 비아냥과 달리, 마셜은 이를 '신의 한 수'로 비유한다. 루이지애나로 내륙 수로 수송권을 산 것이고, 알래스카에서는 금광까지 발견됐다. '제2 예루살렘'을 만들려던 초기 미국인에게 신의 가호가 숨겨졌던 것일까.
한국은 어떤가. 마셜은 한반도 지리를 연민의 시선으로 본다. '천연 장벽'이 없으니 명(明)과 청(淸)이 밀면 속수무책이었고, 삼면이 바다여서 해상 접근도 쉬워 일본 전함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20세기 들어서는 아예 일본에 '합병'됐다. 한반도 지리는 별로 넓지도, 복잡하지도 않아서 38선이란 인위적인 선 긋기도 가능했다. 한반도 전쟁 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선택 시나리오도 펼친다. 마셜의 냉소적인 자문자답은 폭소를 일으키면서도 씁쓸하다. "한반도라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풀 수 없다."
위도와 경도를 수시로 바꾸며 마셜은 망원경과 현미경을 함께 들이댄다. 부동항의 부재는 러시아의 아킬레스건이지만 가스와 석유는 그들의 강력한 무기라거나, 프랑스 독일보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섬나라 일본은 세계로 진입하지 않고는 생존이 불가능했다거나, 진정한 의미의 사막이 없고 빙하도 북쪽에 국한됐기에 유럽의 발달이 가능했다는 평가와 진단이 내려진다. 아프리카는 유럽이 만든 지정학적 피해자였고, 중동은 인위적 국경선이 분쟁의 씨앗이었으며, 내륙이 텅 비어 정체된 라틴아메리카, 지리적으로 출발부터 달랐던 인도와 파키스탄, 최종적으로는 21세기 경제 및 외교의 각축장이 된 북극까지 마셜은 종횡무진하며 입담, 아니 '글담'을 늘어놓는다.
번역된 제목은 '지리의 힘'이지만 영어 원제는 'Prisoners of Geography'다. 죄악을 확정할 수 없으니 저 'Prisoners'는 죄수가 아닌 포로로 해석됨이 옳겠다. 지구인은 지리라는 감옥에 갇힌 포로다. 인간은 그 안에서 살아야 하며, 도망칠 탈출구도 없다. 지리는 땅(地)을 다스리는(理) 욕망이 아니던가. 지리라는 이름의 불가해한 운명 앞에서 이 책은 당신이 처한 감옥의 위도와 경도를 알려준다. 인류사의 시공간 좌표가 책 한 권에 담겼다면 다소 과장일까.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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