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시간여행] [48] 봄마다 청와대 개방.. 수만명이 관람.. 만삭 관람객, 경내에서 아기 낳기도

김명환 전 사료연구실장 2016. 12. 14.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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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4월의 청와대 개방을 보도한 신문 사진. 시민들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 본관 앞까지 돌아보고 있다(경향신문 1961년 4월 26일자).

1955년 어느 봄날, 청와대의 전신인 경무대에 아침부터 남녀노소 군중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대통령 관저 정원을 일반 국민에게 최초로 공개한 것이다. 이승만 정부가 정한 공개일은 하필이면 4월 19일이었다. 첫날 정오까지 몰려든 인원이 6만명이나 됐다. 수백가지 봄꽃보다는 대통령이 사는 곳을 구경하러 전국에서 모여든 인파였다. 이 대통령은 오전 11시쯤 관저 안에서 군중을 향해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기도 했다. 경무대 측은 19일 오전 3시간만 공개할 계획이었지만, 사람이 너무 몰리자 하루 늘려 20일 오전까지 계속 공개했다. (조선일보 1955년 4월 20일자)

북악산 기슭에 자리 잡은 최고 권력자의 처소는 초기엔 오늘날보다 더 국민과 가까운 공간이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1948년 9월 말부터 "민의에 귀 기울이겠다"며 매주 목요일 경무대에서 일반 국민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1955년부터 경무대 개방은 연례행사가 됐다. 봄마다 2~3일씩 정원을 열었다. 1959년 봄 5일간 방문객이 20만명이나 됐다. 갓 쓴 할아버지에서 두메산골 소년까지 방방곡곡에서 온 국민이 평생 잊지 못할 봄나들이를 했다. 1957년 4월 28일엔 만삭 임신부가 경무대를 찾아 벚꽃 구경을 하던 중 갑자기 산기를 느껴 녹지원 부근 뜨락에서 아기를 낳는 일까지 있었다. 대통령 비서들의 도움을 받으며 태어난 아기는 '경무대 베이비'란 별명을 얻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듬해 새해 벽두 그 아기와 부모를 경무대로 초청해 기념촬영을 했다.

4·19 혁명으로 독재정권을 쓰러뜨리고 들어선 제2공화국 청와대의 문턱은 더 낮아졌다. 봄꽃 만발한 1961년 4월엔 10일부터 월말까지 매주 월·수·금요일 청와대를 공개했다. 그때마다 효자동행 전차와 버스들은 초만원을 이뤘다. 관람객은 물러간 독재와 들어선 민주의 발길을 더듬었다.

5.16 쿠데타로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박정희 정권도 청와대 개방이라는 전통마저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한일회담 반대 시위가 격화됐던 1964년을 제외하고 1963년부터 거의 매년 봄 5~6일씩 청와대 뜰이 개방됐다. 시민들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 근처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1966년 4월 21일 박정희 대통령은 점심 식사 하러 가다가 "와! 대통령이다" 하며 몰려든 어린이 방문객들과 본관 앞에서 마주치자 "공부 잘하니?" 하고 웃음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 개방의 시대는 1967년 봄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1968년 북한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코앞까지 침투한 '1·21 사태' 이후 청와대 내부는 물론이고 주변까지 철통같이 봉쇄됐다. 민주화 이후엔 대통령마다 청와대 앞길에 대한 통제를 조금씩 완화했다. 하지만, 수만명 시민이 청와대 안뜰로 봄나들이를 갔던 1960년대까지의 개방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오늘날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파헤치는 과정에서도 국민과 철저히 차단된 박근혜 정권의 '밀실 청와대'가 빚은 부조리와 부작용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참에 불통의 상징이 된 청와대는 박물관으로 바꿔 국민에게 개방하고, 대통령 집무실은 정부종합청사로 옮기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굳이 백악관 같은 외국의 사례를 들 것도 없다.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산기슭의 구중궁궐 같은 대통령 집무실이 21세기 대한민국에 과연 어울리는 것인지 생각해 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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