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빌딩 스토리]㉟ 서리풀 꽃동네에서 공연예술문화 메카로..서초동 '예술의 전당'

우고운 기자 2016. 11. 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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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에 세종문화회관이 있다면, 강남엔 예술의 전당이 있다.”

예술의 전당 서울서예박물관 뒤쪽의 국립예술단체연습동 옥상에서 바라본 서초동 일대 전경. /우고운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복합아트센터로 건립된 예술의 전당은 강남 번화가와 다소 떨어진 우면산 귀퉁이에 있다. 오늘날 다양한 공연과 조형 예술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공연예술문화의 중심지다. 연간 관람객만 300만명에 달하는, 사실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메카와도 같은 곳이다.

예술의 전당 건립이 처음 논의된 때는 1981년. 당시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에서 막 벗어나던 때 정부는 문화 발전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만 해도 서울에 있는 공연장은 다목적 공간인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이 전부였다. 정부는 국제적으로 내세울 만한 문화예술 공간을 건립하기 위해 건축가와 설계도를 국제 공모했다.

예술의 전당 전경. /예술의 전당 제공

당초 예술의 전당을 지을 후보지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었다. 처음에는 도심 한가운데에 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해, 경복궁과 남대문을 잇는 4대문 안이 거론됐다. 그중에서도 신문로의 옛 서울고등학교 자리와 장충공원을 중심으로 하는 남산 기슭이 유력 후보지로 떠올랐다. 그러나 비싼 토지 매입비와 생활권과의 접근성 문제 등으로 모두 제외됐다.

이후 지하철 2호선 서초역 주변의 당시 서울시청 예정부지(현재 대법원 부지)와 지금의 예술의 전당이 있는 서초꽃마을 두 곳이 새 후보지로 부상했다. 그러나 당시 서울시청 예정부지는 서울시가 개인 소유자로부터 수용해서 확보하던 곳이라, 용도 변경이 불가능해 서초꽃마을로 낙점됐다.

예술의 전당 건립 공사 현장 모습. /예술의 전당 제공

예술의 전당이 들어선 서초동 700번지 일대는 원래 풀이 무성한 서민 마을이었다. 비닐하우스와 민가가 드문드문 있었다. 서리풀 꽃동네(서초꽃마을)는 원래 서초리 또는 상초리로 불리던 곳이었다. 서리풀이 많은 동네라는 뜻이다. 이 동네는 1963년 경기도 시흥에서 서울시로 편입됐다.

예술의 전당 설계안 공모에는 미국 하버드대학의 건축 프로젝트팀 TAC와 국내 건축의 양대 산맥이던 김중업과 김수근, 그리고 그들의 제자였던 김석철 건축가 등이 참여했다. 이후 다양한 전문가 집단의 심사 끝에 당시만 해도 가장 지명도가 낮았던 30대 건축가 김석철의 설계가 당선됐다.

오페라극장 내부 전경. /예술의 전당 제공

1943년 이북에서 태어나 밀양에서 자란 고(故) 김석철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 건축학과를 나왔다. 이후 건축가 김중업을 찾아가 실전을 익히고 김수근의 사무소에서 일하다 독립해서 사무소를 차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건축을 통해 인류의 문명에 철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판단, 자신만의 건축철학을 완성했다.

당시 복합문화 공간을 지향하던 예술의 전당 프로젝트는 첫 삽도 뜨기 전 공간 활용을 두고 논쟁이 많았다. 공연의 전문성을 위해 오페라 극장과 콘서트홀을 따로 짓자는 의견과, 세종문화회관과 같은 다목적 극장을 짓자는 의견이 팽팽히 대립했다. 이때 김석철 건축가는 “다목적이란 말은 말 그대로 어느 목적에도 적합하지 않다는 말”이라며 공연 예술의 생명인 무대와 객석 구조를 제대로 지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또 그는 예술의 전당을 공연만 보는 곳이 아닌, 시민이 아무 때나 찾을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 싶었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오페라하우스 외관, 비타민 스테이션, 서울서예박물관. /우고운 기자

예술의 전당은 1984년 11월 14일 기공식을 열고 1986년 1단계 개관, 1987년 2단계 개관을 목표로 추진됐다. 그러나 7만평 대지에 3만평에 달하는 복합예술센터를 짓는 일은 예상보다 많은 시간과 사전 조사가 필요했고, 비용에도 부담이 생기면서 공사 기간이 늘어났다. 결국 1992년 12월에 오페라하우스 준공을 끝으로 10년 만에 예술의 전당 5개관을 모두 건립했고 이듬해 2월 전관 개관에 들어갔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의 전당 5개 관은 오페라하우스와 음악당, 서울서예박물관, 한가람미술관,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이다. 오페라와 발레, 무용 등 공연 예술의 메카인 오페라하우스는 오페라극장(2283석)과 CJ토월극장(1004석), 자유소극장(283석)을 갖추고 있다. 국내 첫 음악 전용공간인 음악당은 콘서트홀(2523석)과 IBK챔버홀(600석), 리사이틀홀(354석)이 있는 곳이다. 부채꼴 모양의 외관에 초가지붕 형태로 만들어져 한국적 전통미에 현대적 예술 감각을 더했다.

예술의 전당 음악당과 음악 분수. /예술의 전당 제공

서울서예박물관은 전통문화에서 소외된 서예만을 위한 전시 전문공간이다. 한가람미술관은 종합미술전시관으로, 다양한 기획전과 유물전 등을 열고 블록버스터형 전시, 아트페어형 전시 등 새로운 전시문화를 선보이고 있다. 국내 첫 디자인 전문 미술관인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은 국제적인 디자인 교류의 장으로 쓰이고 있다. 이 밖에 예술의 전당에는 음악 분수와 지하 아케이드인 비타민스테이션 등이 있다.

서울서예박물관 뒤쪽의 국립예술단체연습동 건물 옥상(360도 촬영)에 오르면 서초동 일대가 한눈에 펼쳐진다. 정면으로 현대슈퍼빌, 월드메르디앙 오페라하우스, 서초한신플러스 타운아파트 등과 상업시설이 있다. 왼쪽으로는 방배동 일대가 보이고, 뒤편으로는 우면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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