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전 탐방]② 매년 2배 성장하는 마법의 휴대폰 제조 생태계..가성비로 인도시장 접수

선전=전준범 기자 2016. 7. 2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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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남부의 선전(深圳)은 정보기술(IT) 분야 세계 최대 제조업 기지 가운데 하나다. 특히 휴대폰 제조 생태계는 놀라울 정도로 잘 구축돼 있다. 휴대폰 제조에 필요한 모든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고 보면 된다. 휴대폰 부품별로 수십~수백개의 업체가 몰려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품질·가격 경쟁으로 이어진다.

중국 선전에 있는 휴대폰 외주생산 업체 HIT의 공장 풍경. 생산직 근로자들이 마이크로맥스, 라바 등 주요 고객사에 보낼 제품을 만들고 있다. / 사진=전준범 기자

선전의 탄탄한 생태계를 토대로 화웨이, ZTE, 오포, 비보 등의 글로벌 휴대폰 제조사가 탄생했다. 자체 브랜드의 휴대폰을 제조하는 업체뿐 아니라 대만 폭스콘처럼 다른 브랜드 제품을 외주생산하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ODM(제조자개발생산) 업체들도 도처에 널려있다. 하이실리콘, 올위너 등 모바일 응용프로세서(AP) 제조사들도 선전에 기반을 두고 있다.

7월 15일 오후 선전 중심가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35km 정도 올라갔다. 40분쯤 달려 도착한 곳은 선전 북부 푸용(褔永) 지역. 이곳에는 2012년 설립된 신생 기업 ‘후아노 인터내셔널 테크놀러지(HIT)’의 휴대폰 생산 공장이 있다. HIT는 회사 문을 열고 불과 3년 만에 연매출 10억위안(약 1706억원)을 기록한 휴대폰 외주생산 업체다. 화웨이 출신의 제임스 리우(James Liu·刘建兵) 사장은 올해 나이가 33세인 청년 창업자다. 리우 사장의 안내로 중국의 휴대폰 외주생산 현장을 직접 들여다 볼 수 있었다.

◆ 앳된 근로자들 10종 이상 휴대폰 동시 조립…“매달 150만대 생산”

2006년 세워져 다른 업체의 생산 시설로도 쓰인 적 있다는 HIT 공장 내부는 의외로 허름했다. 첨단 로봇팔이 즐비한 자동차 공장과 같은 분위기를 상상했지만, 막상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전혀 달랐다. 총 11개의 생산 라인과 6개의 포장 라인에는 직원 수백명이 일렬로 앉아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관리자로 보이는 몇몇 직원이 그 주변을 맴돌면서 생산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은 생산직 직원이 이따금씩 손을 들고 뭔가를 부탁하면 재료를 갖다 주거나 설계도를 보여줬다.

능숙하게 반복 작업을 하는 남녀 직원들은 대체로 앳된 모습이었다. 이번 탐방에 동행한 중국 출신의 박룡길 착한텔레콤 대리는 “선전이 최근 들어 ‘창업의 메카’, ‘부자 도시’ 등의 이미지를 갖게 됐지만 가난한 제조업 종사자들도 여전히 많이 살고 있다”면서 “어린 근로자들 역시 가난한 가정 출신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위) 한 여성 직원이 생산된 단말기의 화질을 점검하고 있다. 이 직원 앞에 붙어있는 유시진 대위(송중기)의 사진이 인상적이다. (아래) 조립이 완성된 제품을 비닐로 포장하고 있는 남성 직원의 모습. / 사진=전준범 기자

HIT의 사업모델은 자체 브랜드를 갖고 있는 휴대폰 제조사들의 요청에 따라 단말기를 조립해 납품하는 것이다. 인도 기업인 마이크로맥스와 인텍스, 라바 등이 주요 고객사다. 이 중 마이크로맥스는 인도 휴대폰 시장 점유율 17%(2016년 1분기 기준)로 삼성전자(005930)에 이어 2위에 올라있는 회사다. 인도시장 점유율 10%인 인텍스가 그 뒤를 따른다. 라바는 5위권 업체다.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에서만 판매되는 중저가 스마트폰 브랜드 ‘블루(BLU)’ 역시 HIT가 만든다.

HIT 공장에서는 매달 150만대 이상의 휴대폰이 생산되고 있다. 생산직 직원 수는 800여명이다. 선전 시내 본사 인력까지 모두 합치면 HIT의 총 직원 수는 약 900명이다. 리우 사장은 “동시다발적으로 10종류 이상의 피처폰·스마트폰 모델을 조립하고 있다”면서 “생산 비중은 6대4 정도로 피처폰을 좀 더 많이 만든다”고 말했다.

고객사에 단말기를 납품한 뒤 HIT에 남는 마진율은 제품 1대당 3~5%로 매우 적다. 말 그대로 ‘적게 남기는 대신 싸게 많이 판매하는’ 전략이다. 이날 공장에서 한창 생산 중이던 한 휴대폰 모델의 경우 공급 가격이 10달러에 불과하지만 1년에 500만대씩 팔리는 효자 제품이다.

인도 휴대폰 제조사들을 빠르게 고객사로 확보하면서 HIT는 지난해 10억위안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2014년 매출의 2배에 해당한다. 리우 사장은 “2016년 매출은 전년 대비 또 2배가 뛰어 20억위안(약 3407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면서 “2012년 회사 출범 이후 매년 매출이 거의 2배씩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리우 사장은 당장 자체 브랜드를 론칭하기보다는 더 많은 브랜드의 외주생산권을 따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또 고가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생산 시장에 굳이 뛰어들 생각도 없다고 전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폭스콘과 같은 대형 외주생산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우 사장은 “선전에는 HIT와 비슷한 규모의 휴대폰 외주생산 업체들이 10여개 정도 더 있다”면서 “우선 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나중에 자체 브랜드를 갖고 아프리카 휴대폰 시장에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위)HIT 공장 직원들이 휴대폰을 조립하고 있다. (아래)2012년 HIT를 창업한 제임스 리우 사장이 인도 마이크로맥스에 납품할 스마트폰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전준범 기자

◆ 탄탄한 휴대폰 제조 생태계…부동산·인건비 상승은 잠재적 걸림돌

HIT를 포함한 선전의 휴대폰 제조사들이 내놓는 제품의 경쟁력은 단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다. 허름한 공장과 어린 근로자, 여러 종류의 제품 동시 조립 등 HIT의 생산 환경만 보고 휴대폰의 퀄리티가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오산이다. 선전 곳곳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만들어지는 양질의 부품을 빠르게 수급해 조립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제품 퀄리티 측면에서 고객사의 만족도가 꽤 높은 편이다.

리우 사장은 “안정적인 직장인 화웨이에서 근무하다가 창업을 결심한 계기도 선전의 탄탄한 휴대폰 제조 인프라가 주는 믿음 때문이었다”면서 “휴대폰에 들어가는 각 부품 제조업체들이 오랜 시간 치열한 경쟁을 통해 각자의 기술력을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또 “기술력이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돼 있으니 그중 가장 저렴한 부품사와 계약해 물건을 받으면 된다”고 덧붙였다.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 중 하나인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이 지역에 많다는 점도 외주생산 업체들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조건이다. 화웨이의 반도체 자회사인 하이실리콘과 ZTE가 설립한 ZTE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의 타이젠 운영체제(OS)가 처음 탑재된 중저가폰 ‘Z1’에 AP를 공급한 스프레드트럼과 올위너, 락칩 등 모바일 AP 제조업체들도 선전에 있다.

전문가들은 구글 안드로이드 OS도 선전 내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늘어나는 데 기여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스마트폰 1대당 약 2~5달러의 로열티를 구글에 지급하기만 하면 애플(iOS)이나 삼성전자(타이젠)처럼 자체 OS가 없어도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을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선전 시내의 풍경. 고층 빌딩이 끊임없이 건설되고 있다. / 사진=전준범 기자

그러나 최근 들어 급등하고 있는 선전의 부동산 가격이 이 지역 기업들에 잠재적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올해 4월 선전의 집값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 이상 올랐다. 이는 중국내 주요 도시들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번 탐방에서 현지 안내를 맡은 송안창(38)씨는 “선전에서 농부가 땅을 사려면 당나라 때부터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면서 “주변의 둥관(東莞) 지역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는 기업도 일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인건비 상승 문제도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선전 근로자들의 평균 월급은 지난해 3000위안(약 51만원)에서 현재 5000위안(약 85만원) 수준까지 올라갔다. 물론 외곽의 공장지대는 사정이 조금 다르지만 이 추세대로라면 생산직 근로자들의 임금도 머지않아 치솟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의 관영 영자신문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5월 “중국 IT 기업들이 선전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박종일 착한텔레콤 대표는 “선전도 중국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급속한 발전에 따른 여러 가지 부작용을 겪고 있다”면서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으로 공장을 옮기는 기업이 늘고 있긴 하지만, 선전은 여전히 최고의 휴대폰 제조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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