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국가적 난맥상과 전문가의 책무

기자 2016. 9. 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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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구 고려대 교수·경영학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청와대 민정수석의 적임 여부, 연이은 법조계의 부패, 청문회 무용론, 청와대와 언론의 대결 구도라는 의혹, 그리고 난무하는 음모론 등이 지금 이 시점에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머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난맥상의 원인 제공자로서 리더들에게만 손가락질하면 되는 것일까. 어쩌면 질문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사회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결정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보좌해야 할 그 많고 많은 똑똑한 전문가는 다 어디 갔을까?

최근 몇몇 대기업을 중심으로 극소수의 오너가 의사결정을 독점해 온 문화를 바꾸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사회 경제의 변화가 너무나 복합적이고 빠르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최고경영자 일인의 판단으로는 상황에 능동적으로, 그리고 적절하게 대처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까닭이다. 서구의 글로벌 기업처럼 전문경영인들로 구성된 최고경영자 팀의 역할을 좀 더 강화하려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자 팀이라는 제도가 한국에서 제대로 정착돼 운영되려면 전문경영인의 역할이 분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얼마 전 외국 출장을 다녀오면서 비행기 안에서 본 ‘아이 인 더 스카이’라는 영화가 머릿속에 오랫동안 논쟁적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생명을 희생하면서 수십 명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테러리스트의 거처를 폭격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를 살리기 위해 폭격을 중지함으로써 불특정 다수의 목숨을 위협에 빠뜨릴 것인가 하는 딜레마 상황을 그리고 있다. 아이도 살리고 테러도 막을 수 있도록 폭격 장소를 적절하게 바꿔 아이의 생명에 대한 위협의 정도(부차적 피해)를 계속 낮춰 보라는 상사의 지시에 따라가는 전문가의 고민도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이다. 전문가는 결국 상사의 지속적이며 강압적인 지시에 복종하면서도 부차적 피해의 정도를 45%로 낮출 수 있다며 덧붙인다. ‘이 수치는 단지 추정치일 뿐’이라고….

지금 한국 사회는 자신의 생각을 바꿔가면서 힘 있는 사람의 뜻(또는 독단)에 맞는 논리를 제공하는 전문가들로 넘쳐난다. 그 결과는 별로 희망적이지 못하다. 그렇다면 전문가가 리더의 의견에 동조하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유명한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의 실험 관찰처럼 집단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본심을 감추고 집단(또는 리더나 이너서클)의 생각에 동조하는 척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한 뇌의 활동을 분석한 그레고리 번스 등의 연구가 지적하는 바처럼 다수의 의견에 복종하는 현상이 고립의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 하는 의식적 의사결정이기보다는, 세상에 대한 왜곡된 지각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태도와 행동에 관한 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서양과는 달리 태도가 형성될 때 이미 다른 사람의 기대가 포함되지만, 서양 사람은 자신만의 태도가 확실하고 따라서 태도가 행동으로 옮겨질 때 타인의 기대나 의견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자신의 태도 속에 타인의 생각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상사의 의견에 어쩔 수 없이 따른다기보다는 상사의 뜻과 자신의 뜻이 같다고 믿게 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상사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또는 이너서클로부터 고립되지 않기 위해 세상을 보는 인식이나 관점이 왜곡되는 사람은 전문가라 할 수 없다. 전문가는 단순히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독립적인 가치관과 분명한 윤리의식을 지니고 타인(또는 전체 사회)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미래의 리더가 될 사람은 젊었을 때부터 자기 분야의 전문지식을 쌓으면서 동시에 주체적 인간으로서, 그리고 남을 도우려는 이타주의적 가치관과 일관성 있는 윤리의식을 함양하라고 말한다. 심지어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특히 SNS 등에 젊은 치기로 비도덕적인 글을 남기지 말라는 부탁도 끊임없이 해 왔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당부가 지난 몇 년간의 청문회 풍경으로 인해, 또는 자신의 생각을 바꿔가면서 리더에게 맹목적으로 동조하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어처구니없거나 쓸데없는 노파심으로 비칠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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