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공간>근대문명·자본의 심장이던 곳.. 냉혹한 화려함 향해 절규

신창섭 기자 2016. 9. 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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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우체국에서 바라본 서울 중구 소공로 신세계백화점 본점(구 미쓰코시 백화점) 전경. 일제강점기 ‘경성의 센터’로 불린 미쓰코시 백화점은 근대자본주의의 상징적 건물로 ‘날개’ 속 주인공이 비상을 꿈꾸는 공간적 배경이 됐다. 신창섭 기자 bluesky@

49 이상 소설 ‘날개’ 배경 경성역·미쓰코시백화점(現 서울역·신세계백화점 본점)

이상의 ‘날개’(‘조광’·1936년 9월)는 그동안 작가의 삶이 여실하게 드러난 사소설의 측면, 현대인의 어두운 내면 의식을 표출한 초현실주의적 측면, 패러독스·아이러니·위트·에피그램 등의 수사적 장치로 가득한 기호학적 글쓰기라는 측면에서 다루어져왔다. (포스트)모더니즘과의 친연성 속에서만 논의돼 온 이상 문학 전반이 그러하듯이 날개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경성’이라는 시대적 공간과의 관련성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기존의 선입관을 벗어놓고 날개를 정독하면, 이 작품이 당대의 그 어떤 작품보다도 기술공학적 엄밀성으로 식민지 도시 경성의 본질과 환영 그리고 절망을 기록한 ‘시대의 혈서(血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날개의 기본 서사는 몸을 파는 아내와 살고 있는 백치 상태의 ‘내’가 외출과 귀가를 반복하는 것이다. 설계도처럼 군더더기 없는 이 작품의 기본 공간은 아내와 내가 살고 있는 방과 다섯 번의 외출로 인해 등장하는 ‘거리’ ‘경성역’ ‘미쓰코시(三越) 백화점’이다. 먼저 모든 이야기는 유곽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33번지의 집에서 시작된다. 나와 아내는 33번지의 죽 어깨를 맞대고 늘어선 18가구 중의 일곱 번째 집에 산다. 흥미로운 것은 내가 굳이 “나는 어디까지든지 내 방이-집이 아니다. 집은 없다-마음에 들었다”고 하여 자신이 사는 곳이 ‘집’이 아닌 ‘방’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강조는 18가구의 집에 개별적인 문이 없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문은 18가구를 대표해 외따로 떨어져 있을 뿐이며, 그마저도 한 번도 닫힌 일이 없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문이란 집을 외부와 구분 짓는 실제적인 사물인 동시에 상징적인 기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아내와 살고 있는 이곳에는 문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곳은 사회와 구별되는 고유한 가치가 존재하는 장소일 수 없으며, 단지 외부의 연장된 공간으로서의 방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 방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금과옥조인 교환의 논리가 철저히 관철되는 또 하나의 작은 사회이다.

장지로 나뉜 그 집의 아랫방에서 아내는 손님들에게 몸을 판다. 나는 윗방에서 한 번도 걷은 일 없는 이부자리에 누워 잠을 자거나 발명을 하거나 논문을 쓰거나 시를 짓는다. 그것은 인간 사회나 생활과는 무관한 ‘절대적인 상태’에 해당한다. 그러나 나는 아내가 머무는 아랫방에 매혹되어 있다. 아내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몸이 단 나는 절대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인간 사회로 조금씩 나오게 된다.

이 집을 지배하는 것은 아내이며 아내는 자본의 교환논리를 완벽하게 체화한 일종의 기계이다. 아내는 손님이 많은 날은 나에게 5원짜리 은화를 건넨다. 이것은 자신의 비즈니스를 방해하지 말라는 조건으로 주어지는 일종의 임금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아내에게 5원을 건넨 날 처음으로 내가 아내와 함께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처럼, 아내는 돈을 통해서만 모든 행위와 가치를 결정한다. 나중에는 나 역시 이러한 논리에 익숙해져서 아내와 함께 자고 싶을 때도,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할 때도 몇 푼의 돈을 아내에게 건네고는 한다. 이 집은 오직 돈을 통해서만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내가 처음 외출을 감행한 것은 다름 아닌 내객이나 아내가 돈을 놓고 가게 만드는 그 ‘쾌감이라는 것의 유무를 체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상태에 머물던 내가 인간 사회에 발을 내디딘 이유는 다름 아닌 돈을 둘러싼 쾌감을 알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돈으로만 생각하고 행위하는 아내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나는 돈 5원을 아내 손에 쥐여주고 아내와 함께 잔 이후 “내객들이 내 아내에게 돈 놓고 가는 심리며 내 아내가 내게 돈 놓고 가는 심리의 비밀을 알아낸 것 같다”며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이제 돈의 위력을 알게 된 나는 저금통을 변소에 버린 것을 후회하거나 나에게는 왜 돈이 없느냐며 흐느끼기까지 한다. 나는 외출을 통하여 돈이 만들어내는 쾌감을 알게 된 것이고, 외출을 반복하는 것은 그 쾌감을 더욱 깊이 알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나의 외출은 돈으로부터 비롯된 쾌감을 이해하는 일이자 근대 교환논리의 화신인 아내를 이해(사랑)하는 일이다.

그러하기에 나의 외출이 향하는 곳은 근대 문명의 핵심을 향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외출에서는 경성역 시계를 본 후에 집으로 돌아온다. 근대의 대표적인 운송 수단인 기차는 정확한 시간을 전제로 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조금의 오차라도 생기면 운송 시스템은 마비되고 커다란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차는 정밀한 열차 운행 시간표에 의해 움직이며, 기차역에 걸린 시계는 보통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소속감과 동질감을 주는 가장 신뢰받는 표준 시계로서 기능하고는 하였다. 경성역이 나의 마음을 끌었던 것은 ‘여기 시계가 어느 시계보다도 정확’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외출에서는 아내가 준 돈을 가지고 경성역 티룸(tea room)에 간다. 내가 경성역에서 관심을 갖는 곳은 대합실이나 개찰구가 아닌 티룸이다. 1925년 경성역사의 완공과 함께 2층에는 프랑스식 양식당 그릴과 찻집 티룸이 개업을 했는데, 이곳은 매우 고급스러웠다. 1970년대 일류 호텔들이 생길 때까지도 서울역의 양식당과 티룸은 고급스러운 만남의 장소로 그 명성을 유지할 정도였다고 한다. 나에게 경성역의 시계탑과 티룸은 최첨단의 근대문명을 체험하는 장소로서 모자람이 없다. ‘1920년대는 조선신궁과 조선총독부 건축이 대표하듯이 일제가 식민지 행정 수도 건설의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경성의 공간을 재편하던 때이다. 1925년 용산역사를 압도하는 르네상스풍의 경성역이 신축된 것은 경성이 일본과 대륙을 연결하는 한반도 도시 네트워크의 중심지로서 확고한 지위를 점하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김백영, ‘지배와 공간’, 문학과지성사, 2009, 381쪽) 경성역은 제국 일본의 완성을 알리는 상징물과도 같은 건물인 것이다.

네 번째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내 눈으로는 절대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을 그만 딱 봐버리고 만다. 이로 인해 아내는 나의 멱살을 잡고 심지어 내 위를 덮치면서 내 살을 함부로 물어뜯기까지 한다. 나는 그동안의 외출을 통해서도 아내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 순간 마지막이 될 외출을 감행하고, 그 외출은 경성역을 지나 미쓰코시 백화점의 옥상으로 향한다. ‘본래 백화점은 상품에 대한 소비 욕망을 매개로 하여 인간을 자본주의적 소비의 주체로 호명해 내는 근대 자본주의적 주체화의 핵심적 장치로 자리매김한다.’(하쓰다 도오루, 이태문 옮김, ‘백화점:도시문화의 근대’, 논형, 2003)

따라서 백화점으로 향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심장을 향하는 것이기도 하다. 날개의 내가 분명하게 의식하지 못하면서 미쓰코시 백화점의 옥상으로까지 향한 것은 아내의 분노가 큰 것에 비례하여 아주 간절하게 아내와 근대를 이해하고자 한 무의식적 욕망이 발현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미쓰코시 백화점은 제국의 풍요로움과 선진 문명의 힘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일본의 미쓰이(三井) 재벌은 1926년 경성부청사가 현재의 서울시청 자리로 옮겨가자 그 공터에 백화점을 신축하여 1930년 10월에 개장하였다. 근처에 조지야(丁子屋) 백화점, 미나카이(三中井) 백화점, 히라다(平田) 백화점이 있었지만 대지 730평, 연건평 2300평, 종업원 360명을 거느린 조선과 만주 일대의 최대 백화점인 미쓰코시 백화점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미쓰코시 백화점은 고급백화점으로서 고객은 거의 일본인이었으며 친일파가 주류인 조선의 상류층들이 출입하였다. 미쓰코시 백화점이 취급하던 상품은 당시 최고급이었고, 커피 한 잔에 25전 하던 식당 겸 커피숍은 신사인 척하는 이들의 단골처이기도 했다. 백화점 옥상에는 르 코르뷔지에가 고대건축 역사에서 복사해온 옥상정원을 설치해 놓았다.

그 당시 가장 높은 건물 중의 하나였던 미쓰코시 백화점은 나에게 서울의 근대자본주의가 작동하는 핵심을 바라볼 수 있는 조망적 시선을 선사하기도 한다. ‘경성의 센터’로 자리매김한 미쓰코시 백화점 일대는 식민지 조선에 왜식 또는 서양식 유행의 첫 바람을 일으키는 곳으로 혼부라(本ぶら·도쿄(東京)의 번화가인 긴자(銀座)를 어슬렁어슬렁(ぶらぶら) 거니는 긴부라(銀ぶら)를 패러디해서 경성의 번화가인 혼마치(本町) 거리를 구경다니는 것을 지칭한 말)로 넘쳐나던 경성의 심장과 같은 곳이었다.

경성의 가장 높은 곳(백화점의 고도는 근대화의 고도를 의미하기도 한다)에서 바라본 경성 사람들의 삶은 “피곤한 생활이 똑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허비적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에 엉켜서 헤어나지들을 못한다”고 표현되는, 고단하고 소외된 것이다. 나는 이번에도 다시 한 번 아내를 혹은 근대를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한다. 이 순간 뚜우 하고 정오의 사이렌이 울린다. 본래 근대란 시계에 의해 통제받는 사회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시간이 정교할수록 근대화의 정도는 더욱 큰 것이다. 사이렌은 시계탑과는 달리 자발적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모든 이에게 시간을 공지한다는 면에서 더욱 폭력적인 근대의 시간공지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이렌의 소리와 더불어 경성의 중심은 ‘현란을 극한 정오’를 맞이하게 된다. 이 순간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귀가’가 아닌 ‘비상’을 꿈꾼다. 그것은 너무도 간절하게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라는 외침 아니 절규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비상에의 외침이 의미하는 것은 나에게 혹은 이상에게 무엇이었을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상이 도쿄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소설이 날개였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이 발표되고 한 달여가 지나 이상은 식민지 본국의 수도인 도쿄로 간다. 그것은 미쓰코시 경성점이 아닌 미쓰코시 본점을 향한 것이기도 하면서, ‘인공의 날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술을 통한 자기 구원의 길이기도 하다. 이상의 짧았던 일본 체류와 그가 남긴 몇 편의 글, 그리고 그의 허망하기까지 한 죽음은 두 가지 시도에서 그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음을 알려준다. 이상의 날개는 경성역과 미쓰코시라는 두 개의 고유명사만으로 이제 막 근대 도시로 발돋움하던 경성의 화려함과 치사함, 나아가 냉혹한 자본의 질서 등을 형상화했다는 측면에서도, 결코 잊히지 않는 한국 근대문학의 날개이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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