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수라' 한재덕 대표 "김성수·최민식·황정민, 내 인생의 영화인"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영화 '부당거래',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베를린', '신세계', '군도:민란의 시대', '대호', '무뢰한', '검사외전', 그리고 '아수라'까지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46)가 만든 영화들의 제목을 훑어보면 벌써부터 스릴감과 쾌감이 전신에 퍼져 나간다.
한 평론가는 '아수라'의 제작사인 사나이픽처스에 대해 '한국에도 워킹타이틀처럼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제작사가 있다면 단연 사나이픽처스'라고 말하기도 했다.
작품에 자신만의 인장을 찍는 행위는 보통 감독의 것이지만, 유독 한재덕 대표가 제작자로 또 PD로 참여한 영화들에서는 강한 수컷의 욕망과 본능이 느껴진다. 국내 최고의 느와르로 꼽히는 작품들이 마치 명품 수집가의 컬렉션처럼 그득하다.
충무로에서 십여 년이 넘도록 최고의 시나리오라 호평 받았지만 영화화되지 못했던 '무뢰한'을 오승욱 감독이 반드시 연출자로 재기하는 모습을 보겠다는 의지로 전도연이라는 톱배우를 캐스팅해 영화로 만든 뚝심을 발휘한 이가 한재덕 대표다.
초기 제작 당시 영화의 잔혹함과 출구를 모르는 절망적인 결말 때문에 김성수 감독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영화화를 반대했지만, 모든 인물이 악과 함께 소멸해버리고 거대한 허무만 남는 그 결말이 좋아서 직접 제작하겠다고 한 사람 또한 그다.
흥행의 측면에서든 비평의 측면에서든 한국 느와르와 스릴러 장르의 역사를 새로 쓰는데 앞장서고 있는 한재덕 대표를 스포츠한국이 만났다. 한두 차례 인터뷰를 고사했던 한 대표는 막상 인터뷰 자리에서 그 누구보다 솔직하고 호탕한 말투로 '아수라'의 제작 과정과 그의 영화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2시간이라는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한재덕이 한다'고 하면 감독, 배우, 투자사 임원 등 누구 한 사람 망설임 없이 모여드는 이유를, 또 그를 향한 엄지손을 치켜드는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됐다.
- '아수라'를 보고 나면 이성과 계산이 만든 영화가 아닌 정신과 감성으로 만든 영화라는 느낌이다.
▲ 김성수 감독님과 정우성, 이정재 사이에 '태양은 없다2' 프로젝트에 대해 꽤 오랫동안 교감이 있었다. 그 와중에 김성수 감독님이 그럼 프로듀서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물으셨고 정재 씨가 나를 감독님께 소개해서 처음 인연을 맺게 됐다. 김 감독님이 '감기'를 찍으실 때 현장에 몇 번 놀러 갔다. 그 후 김 감독님이 '아수라'의 시나리오를 보여주셨다. 그렇게 '아수라'가 시작됐다. 김성수 감독에 대한 순수한 팬심에서 시작됐다. 엊그제 정우성에게 카톡을 보냈다. "우성씨와 감독님 사이에 꼽사리 끼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 당신들의 우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게 해줘 감사하다"라고.
- 김성수 감독의 촬영현장에서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정우성, 황정민을 포함해 모두가 김성수 찬양가를 부르는 건가.
▲ 자연인 김성수도 멋있고 영화감독 김성수도 마력이 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엄청난 마력 같은 거다. 남자답고 배려심이 있고 또 문학과 영상, 음악과 미술에 고루 조예가 깊다. 어떤 표현도 천박하지 않고 과하지 않고 솔직하다. 사실 충무로에 똑똑한 감독님들은 많다. 하지만 김성수 감독 같은 분들은 많지 않다. 마치 고삐리들이 멋진 선배 형을 따르는 것과 비슷한 거다. 기회만 닿는다면 감독님의 차기작도 차차기작도 함께 할 거다. 감독님 표현을 따르자면 계약서 대신 악수로 계약한 셈이다.(웃음)
- 제작자의 미덕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인데 '아수라'는 흥행 면에서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다.
▲ 내가 원초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싶어서 만들었다. 이 배우들이 나오는 걸 보고 싶어서 투자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만들고 싶었다. 앞으로 OST도 나오고 또 블루레이와 DVD도 나올 텐데 내가 이 영화에 참여했다는 자체로 무한 행복하고 감사하다. 가문의 영광이고 수억 원의 가치를 얻은 기분이다. 다만 혹시라도 흥행 결과가 미진하더라도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 상처를 조금 덜 받았으면 좋겠다.
- 정우성의 폭발적 연기력이 돋보였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남자의 비굴함과 비루함, 생존 본능, 극도의 분노를 눈빛 연기로 표현해내는 모습에 놀랐다.
▲ 영화에서는 흐름상 편집됐지만 작대기(김원해)와 정우성이 만나기 전 "내가 죽였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 촬영 때 나와 김성수 감독, 동시녹음 기사 세 명이서 눈을 마주치며 동시에 몸을 비비 꼰 적이 있다. 셋이서 동시에 '정우성의 저런 연기를 본 적이 있나'하는 심정이었다. 정우성은 잘생긴 얼굴과 큰 키가 때론 불이익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한도경의 모습은 원래 정우성 안에 있던 것이니 끌어낼 수 있었겠지. 또 페르소나와도 같은 김성수 감독 작품이기에 이 악물고 연기한 것 같다. 몇몇 신에서는 숭고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 이제 여자 영화도 한 번 만들?볼 때가 되지 않았나.
▲ 나도 워킹타이틀 영화 좋아한다. 거기서 나온 디비디도 다 가지고 있다. 소녀 감성도 있다. 그리고 느와르, 액션, 전쟁 영화도 좋아한다. 장르를 가리는 건 아니다. 다만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를 못 만났다.
- 수많은 직업 중 영화 제작자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 매우 간단하다. 장충고 시절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화가도 되고 싶었고 또 축구 선수도 되고 싶었다. 어릴 때는 하고 싶은 것이 많잖나. 하지만 재주는 별로 없는 반에서 55등 하는 그런 아이였다. 집에 돈도 별로 없고 대학은 계속 떨어지고 하다 보니 군대 가기 전 큰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노가다를 뛰었다. 당시 한겨울에도 딱딱한 장갑을 며칠씩 쓰고 그랬는데 지금 현장에서 두꺼비 장갑을 한 번 쓰고 버리는 걸 보면 눈에서 피눈물이 나온다.(웃음) 군대에서 영화하는 일을 직업으로 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대하고 나서 일용직으로 광케이블도 깔고 컴퓨터 배달도 다니고 하며 알바를 했다.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교육원에 들어가서 시나리오 공부를 하다가 처음으로 상업 영화에 입문한 것이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2001)에서 제작부장을 맡으면서다. 당시 작가교육원 동기가 황조윤, 전철홍 등이고 한 기수 후배가 용필름의 임승용이다.
-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이후 피디로서 성공했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
▲ 그런 순간들이 꽤 많았다. '올드보이'로 칸에 처음 갔을 때 상영을 마치고 퇴장하는데 모두 기립한 상태로 우리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더라. 그 때 정정훈 촬영 감독과 함께 '한국 영화 최초로 칸에서 파티를 열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며 어리둥절해 했다. 그 때 흐르던 음악이 '우진의 테마'였는지 '미도의 테마'였는지 아직도 헛갈린다. '부당거래' 또한 짧은 영화인생이지만 어떤 전환점을 마련해준 작품이다. 그 때만 해도 류승완 감독이 어려울 때였고 나도 피디로서 쉽지 않을 때였다. 류승완이라는 대단히 훌륭한, 매력도 있고 자기 삶을 진짜 열심히 사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신이 사람들의 모든 기도를 들어주는 건 아닌데 나의 기도는 대부분 들어주신 셈이다. '범죄와의 전쟁'을 찍을 때는 윤종빈과 하정우의 대단한 우정을 보며 큰 공부가 됐다. 윤종빈이라는 대단히 똑똑한 감독 옆에서 많은 걸 배웠다. 사람운, 감독운이 좋았다. 대단히 행운아다. 내가 주체적으로 한 게 별로 없다. 전부 다 운이다.
- 평소 박찬욱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자주 표현해왔는데.
▲ 박찬욱 감독님은 정말 우유부단하시다. 좋은 감독은 우유부단 해야 한다. 모든 스태프, 배우들에게 다 물어보신다. '넌 이걸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그 모든 말에 다 귀 기울이시고 가장 좋은 걸 선택하신다. 멋있게 결단하고 되돌아서 후회하는 것보다 그게 훨씬 낫다. 정말 열심히 하는 분이다. '올드보이'의 촬영을 마치고 개봉까지 45일이 걸렸는데 잠을 거의 안주무시더라. 그 때 감독님 옆에서 운전을 하며 늘 모시고 다녔는데 많은 걸 배웠다. 디비디 믹싱할 때 '감독님 인생의 영화는 무엇입니까'하고 여쭈니 '한국 영화에서는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야'라 하시더라. 당시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많은 걸 배웠다. 내 모든 지나간 작품들이 전부 스승이다. '올드보이'의 정정훈 촬영감독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촬영을 같이 할 정도고 조상경, 오달수, 류성희 모두 지금 각 분야에서 레전드가 돼 있지 않나.
- 함께 한 배우 중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은.
▲ '부당거래'라는 작품으로 황정민과 감히 겸상을 하게 됐다.(웃음) 그 이후 '신세계', '남자가 사랑할때' , '검사외전', '아수라'까지 총 다섯 작품을 함께 했다. 정말 좋아하는 배우다. 그 때 '작품 끝나면 친구합시다'라고 약속했는데 여전히 서로 존대한다. 정민씨 뿐만 아니라 (최)민식이 형, 류승범도 마찬가지고 모두가 내게 스승이다. 그 분들의 훌륭한 연기를 구경하면서 잘 살았다. 그러니 참 행복하다. 전도연이라는 위대한 배우와 함께 한 것도 얼마나 기쁜가. 감개무량까지는 아니지만 전도연 덕분에 10년 만에 칸에 갔을 때 좀 쭈뼛거려졌지만 '아, 왔구나'라는 기분도 다시 느껴봤다.
- ‘아수라’의 각종 공개 행사나 '무한도전'에서 드러난 것처럼 주연 배우들끼리 서로 좋아 어쩔 줄 모르는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이들과 제작진의 사이 또한 끈끈해 보인다.
▲ 언론배급시사회 이후 단 하루도 안 빠지고 김성수 감독을 포함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주지훈, 정만식과 계속 함께 모여 술을 마셨다. 그런데 또 보고 싶다. 이 정도의 끈끈함은 처음이다. '아수라'로 토론토 영화제에 갔을 때 김성수 감독님과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온타리오 호수에 가서 해 뜨는 걸 봤다. 그 순간 함께 영화를 했다는 게 내 인생의 빛나는 한 순간으로 느껴졌다. 사람이 노후 준비를 할 때 경제력도 중요하지만 추억할 일들이 많은 게 더 좋지않나. '아수라'처럼 더 좇?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또 올까. 그런 게 노력한다고 되는 걸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지금 당장 죽어도 좋을듯한' 또는 '유리창 2만장을 단숨에 깰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미안하다. 고급스러운 표현을 하는 것에 두드러기가 있다. '아수라'를 만든 사람들과 보내는 며칠이 한 시간 같고 그냥 너무 좋다. 시간 가는게 싫고 이들과 헤어지는 게 너무 싫다. '범죄와의 전쟁' 때도 남자들 판이었지만 이렇게 자주 모이고 날 새는 정도는 아니었다.
- 영화 인생을 통 털어 가장 기뻤던 순간은.
▲ 최민식 형이 '범죄와의 전쟁'으로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너무 신이 나서 난동을 부리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내 영화 중 '올드보이' 이후 8년 만이었다. 다음해 황정민이 '신세계'로 청룡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황정민이 수상자로 불렸을 때 현장에서 정말 '으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민식이 형이 황정민에게 상을 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됐다. 그 때 기분은 의자를 물어 뜯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내 배우가 주연상을, 감독상을 받을 때 미칠 것 같다. 전도연 배우가 작년에 여우주연상 4개를 받을 때도 너무 행복했다.
- 지금까지 전부 감독, 배우들에 대한 칭찬뿐이었다. 그럼 한 대표가 작품에서 채우는 부분은 뭔가. 스스로 생각하는 프로듀서로서의 장점은.
▲ 일단 남이 부탁한 일을 내일보다 더 열심히 하는 편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예산이 40억이었고 예비비 더하기 2억을 증액해 44억 2900만원이 들어갔다. 정말 미친듯 열심히 했고 윤종빈 감독이 찍고 싶어하는 장면을 다 찍게 해주려고 했다. 재촬영도 3번이나 했다. 그게 프로듀서의 일이다. 윤 감독이 보기에 '한 피디는 돌쇠처럼 일하니 좋구나' 했을 거다. '부당거래'도 32억 원에 찍었는데 정말 그 정도로는 찍을 수 없는 영화였다. 정정훈 촬영감독, 김상범 편집감독에게 찾아가서 대본도 안보여주며 "내가 오랜만에 독립영화 한 편 하는데 이거 안하면 당신들 내 친구 아냐"라고 통사정을 했다. 평소 개런티의 절반만 받고 해달라 부탁했다. 그들이 감독이 누구냐고 물을 때 끝까지 류승완인 걸 숨기려고 했었다.(웃음)
- 프로듀서로서 평소 지키는 원칙이 있다면.
▲ 우리 편이 다치는 건 절대 못참는다. 어떤 식으로든 응징을 해줘야 한다.(웃음) 절대 남의 등은 안 밟으려 하고 치사한 짓은 안 하려 한다. 남의 돈으로 찍는 게 영화니 돈은 벌어야 한다.
- 최근 몇 해 부쩍 영화지면을 가장 많이 장식한 제작사 중 하나가 사나이픽처스다. 한국 영화산업의 측면에서 사나이픽처스의 위치가 어느 정도라 보나.
▲ 나는 경주마 같은 사람이라 옆을 못본다. 그저 내 영화 무사히 찍고 개봉하는 게 전부다. 우리 스태프 챙기기도 바쁘고. 평소 농담처럼 우리 회사가 한국 제작사 중 7위라 이야기한다. 그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닌가.
- 자신의 영화 인생 중 가장 중요한 3명만 꼽는다면.
▲ 3명은 너무 힘들다. 황정민, 최민식, 류승완, 윤종빈, 김성수 그 외에도 여러 명이 있다. 내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황정민 배우와는 우정을 나눈 사이다.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최고의 배우이고 친구다. 마치 내 속을 꺼내 보여주고 싶을 만큼 그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가 더 잘 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다. 2010년 '부당거래' 때 제대로 만났는데 그렇게 오래 된 사이는 아니다. 예전에 한 번 투자가 너무 안돼서 담배 연기도 잘 안 빠지는 사무실에 내 방에 앉아서 담배만 2갑인가 피우고 있었는데 정민 씨가 느닷없이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더라. 사무실 건물 1층에서 소주를 사면서 '자기야, 힘내'하고 제작자의 어려움을 고민해주는데 정말 울컥했다. '신세계' 때는 민식이 형, 황 배우가 모여서 '재덕이 영화하는데 출연료 같이 깎자'고 이야기까지 나눈 사람이다. 그런 순간들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나는 심하게 말하면 은혜를 입은 놈이다. 10년 뒤, 20년 뒤에도 좋은 제작자와 배우 사이로 만나고 싶다. 그의 훌륭한 필모그래피에 누가 되는 영화는 절대 안만들 거다.
- 제작자로서 가장 보람되는 순간은.
▲ 영화 잘 만들었다는 소리 들을 때 가장 기분 좋다.
-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는.
▲ 제대로 된 청불영화 몇 편을 더 만들고 싶다. 정우성 배우와 꼭 한 번 다시 하고 싶고 '아수라' 배우들 그대로 다시 한 번 영화를 만들고 싶다. 아직 '아수라'라는 늪에서 헤어나오기 힘들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사진=이규연기자 fit@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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