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의 대중예술 사랑과 돈의 변주] (10) 여성들, 자기 능력으로 일·사랑에 성공하는 '캔디렐라'에 열광하다
[경향신문] ㆍ운명 개척하는 ‘캔디’ 등장

강한 자존심과 의지, 직업적인 능력을 갖춘 젊은 여성 캐릭터가 한국 대중예술사에 나타난 것은 김수현 등의 작품이 인기를 모은 1970년대 후반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드디어 우리나라 여성 대중들이 신데렐라 스토리에 매료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여성 대중들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계층상승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두 현상은 일맥상통한다.
여성들이 계층상승·애정·자존의 욕망을 표출하는 현상은 1950년대 대중예술부터 두드러졌다. 하지만 1950년대의 자유 바람과 성욕·물욕의 분출, 1960년대의 가정 내 권력의 안정적 확보 욕망 등은 여전히 ‘여성적’이라 치부되는 영역에 머문 것이었다. 그에 비해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것은 성공과 계층상승을 위해 실력을 쌓고 노력을 기울여 자존심 있는 한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진정한 사랑도 성취하고 싶다는 욕망이다. 이건 여태껏 남성 인물의 전유물이었다. 손쉽게 허영·방종이라고 치부할 수 없으며, 여성에게는 신선한 것이었다. 김수현이 창출한 새로운 여성 인물의 부상, 그리고 사랑·결혼을 통해 계층상승을 이루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등장이란, 이런 흐름 속에 위치해 있다.
■‘캔디렐라’ 유행시킨 <캔디 캔디>
그러나 이 시대의 신데렐라 현상은 매우 제한적이고 과도기적이다. 나이가 어린 10대 소녀 수용자에 국한된 현상이었고, 무엇보다도 그 작품이 한국 작품이 아니라 외국 작품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일본 만화 <캔디 캔디>(미즈키 교코 작, 이가라시 유미코 그림) 돌풍이다. 1975년에 일본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버전이 MBC에서 1977년과 1983년에 방영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캔디 캔디>야말로 이후 우리나라 대중예술의 신데렐라 스토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이라고 단언할 만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TV 드라마에 신데렐라 스토리가 넘쳐날 때 ‘캔디렐라’ 같은 신조어가 등장한 것이 그 방증이다. 고아원 출신의 성실하고 발랄한 소녀 캔디가 부잣집 하녀와 양녀 신분을 오가며 온갖 고생을 하다가 자신의 오랜 후원자인 귀족 남자와 진정한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가 큰 줄기다. 이런 서사는 당시 한국 순정만화에서는 흔치 않은 새로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전 한국 순정만화의 주된 내용은 부모 잃은 소녀의 가족 복원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캔디 캔디>는 가족이 아닌 연애 이야기가 중심이다.
새로운 요소는 또 있다. 캔디형 신데렐라를 의미하는 ‘캔디렐라’라는 조어는 캔디가 설화 속 신데렐라와는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설화 속 신데렐라·콩쥐는 핍박 앞에서는 눈물만 흘리다 하늘의 도움을 받는다. 이와 달리 캔디는 ‘외로워도 슬퍼도’ 눈물을 참으려 애쓰는 씩씩한 말괄량이, 도전적이고 자기성취 욕구가 강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는 기존의 관행도 거스른다. 순종적 태도와도 거리가 멀다. 그는 이런 추진력으로 성장하며, 어렵사리 간호사가 되는 데 성공한다.
■운명을 개척해가는 여성에 매력 느껴
이런 작품의 폭발적 인기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의 사회심리 변화를 보여주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수용자들은 무력하게 울면서 하늘과 가족의 보호를 기다리는 여자에게 싫증 내는 대신, 악조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며 성공하는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캔디의 말괄량이 같은 씩씩한 성격이야말로 온갖 귀족 도련님들을 매료시키는 요소이지 않은가. 이 시대의 소녀들은 보호해줄 부모가 아니라, 자립심과 성취욕 강한 말괄량이 여자를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애인을 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립, 사랑·결혼, 계층상승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혹은 이루어야 한다는) 희망이 여자들에게도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캔디 캔디>의 희망적 서사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10대 소녀들에게나 먹히는 내용이었을 수 있다. 게다가 외국 작품이었고, 더더구나 작품 배경은 일본도 아닌 미국·영국이다. 과연 동아시아의 한국을 배경으로, 1980년대의 한국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한국의 시골 고아원 출신 말괄량이가 엄청난 집안의 가정부를 거쳐 양녀가 되고, 명문학교를 다니는 그 집안 아들들이 모두 그 말괄량이를 사랑한다? 게다가 후원자의 도움이 끊겼는데도, 돈 없는 고아 소녀가 간호사가 되는 데 성공한다? 아무리 허구라 해도 지나치게 개연성이 없다.
황미나의 만화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서울문화사, 1986)는 고아 출신으로 부잣집 양녀가 된 여주인공을 설정하고서도 이런 서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1970~1980년대 한국이 배경이다. 주인공들은 (캔디와는 달리) 가족과 징글징글한 상처를 주고받으며 성공·성장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질척대는데, 한국 상황에서는 이것이 더 리얼리스틱하다.
키다리아저씨 같은 구원자도 없다. 예쁘고 젊은 여자에게 사심 없이 호의를 베푸는 부자, 이건 한국에서는 너무 낯설다. 여주인공 신애에게는 신데렐라가 될 기회도 있었다. 애인이 함께 미국으로 가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한 한국에서 죽을힘을 다해 권투로 먹고사는 오빠가 눈에 밟혀 떠나지 못한다. 어떻게 혼자 잘살 수 있단 말인가. 배신했다는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래저래 1980년대 한국에서 신데렐라 되기는 참 난망이다.

그러나 1980년대 한국 순정만화가 보여주는 욕망은 <캔디 캔디>와 또 달랐다. 씩씩하고 귀여운 여주인공의 고난극복 이야기이긴 한데, 신데렐라 스토리는 아니다. 한국의 작가·수용자의 선택은 여주인공이 정치와 혁명의 한복판을 헤쳐 나가는 대하서사물이었다. 황미나의 <이오니아의 푸른 별>(1981), <불새의 늪>(1984), 김혜린의 <북해의 별>(1983),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1986~1995) 등이 대표적이다. 여자들은 혁명가, 무사, 정치인으로서 역사를 헤쳐 나간다.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해서는 이런 서사를 꿈꿀 수조차 없으니, 배경은 멀찌감치 몇 백년 전 서양과 중동으로 옮겨갔다.

캔디 열풍으로 보건대 이 시대 여성 청소년에게 신데렐라 욕망의 성장은 분명히 확인된다. 그러나 직업세계와 역사 속에서 주인공이 됨으로써 주체성·자존감을 획득하고 싶은 욕망이, 좀 더 선명하고 예리하게 그 모습을 보여준다.
그게 선행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멋진 왕자님과 성공적으로 결합한다 한들 그 여자는 결코 행복한 인간이 될 수 없으리란 것을, 기성세대들의 실패가 바로 그 대목이었을 것임을 이들은 감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영미 | 대중예술평론가·성공회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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