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리더십 탐구]⑬ 김범수 카카오 의장 "경계 사라진 시대, '적시 행동'이 중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사라진 시대가 왔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시대이기도 합니다. 인터넷업계에 지난 20년을 몸담으면서 PC방 활성화, 한게임과 한게임 재팬의 성공, 카카오 설립과 카톡의 성공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중요한 순간들을 돌아보면, 적절한 시기,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행동을 했느냐가 주효했다고 봅니다. 앞으로 스타트업 종사자들도 적절한 때에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이 생사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014년 11월 스타트업 네이션스 서밋)

“청년들이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평생 할 수 있는 일, 업(業)을 찾는 것을 돕고자 합니다. 스타트업캠퍼스를 청년들이 인공지능(AI)이나 4차 산업혁명 같은 미래시대의 업을 찾고,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교육현장으로 만들겠습니다.” (2016년 5월 스타트업캠퍼스 총장 취임식)
흰색 셔츠에 검은 재킷을 편하게 걸쳐 입은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지난 세월이 ‘주마간산’처럼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듯 한번씩 먼산을 바라봤다. 지난 20년동안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들어섰지만, 도전은 값졌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은 작동하지 않는다”고 확신찬 어조로 말할 만큼 후배들에게 ‘도전’을 적극 권유하는 입장이 됐다. 그는 “알파고의 인공지능(AI) 혁명과 4차 산업혁명이 보여주듯 게임의 법칙이 완전히 바뀌었다”고도 말했다.
김 의장은 PC통신 ‘유니텔’과 게임 포털 ‘한게임’에 이어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에 이르기까지 빅 히트작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한국 인터넷 역사의 새 장을 써 왔다. 1966년생인 그는 건대 사대부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 1992년 서울대 대학원 산업공학 석사를 마친 삼성SDS에 입사, 유니텔 프로그램과 유니윈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했다.
1998년 회사를 그만두고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해 2000년 7월 한게임 사장이 됐고, 그 해 네이버컴과 한게임을 합병시키며 네이버컴의 공동대표가 된다. 2001년 NHN으로 회사명이 바뀌면서 2001년 9월부터 2004년 1월까지 NHN 공동대표를 맡았다. 2004년부터 2006년 NHN의 해외사업담당 공동 대표이사, 2007년 8월부터 NHN 미국법인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가 2009년에 접어들어 그는 NHN을 떠나게 된다.
2012년 케이큐브벤처스를 설립하며 돌아온 그는 '카카오'를 설립해 카카오톡을 성공시킨다. 이후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카카오가 합병해 '다음카카오'를 출범시키고 2015년 다음카카오에서 카카오로 사명을 변경하며 김범수 카카오 의장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는 2014년 11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터넷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한게임과 네이버의 합병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렇지만, (한게임과 네이버가) 개별 회사로 남았다면, 이 정도로 컸을까요. 합병 당시 손해 보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서로 약점이 있으니까 합치자는 개념이었지요. 지금 돌이켜 보니,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라이트 타임, 라이트 액션(Right time, Right action·적절한 시기와 행동)이거든요.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됩니다. 인수합병(M&A) 시기를 놓치면, 기업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
◆ 적절한 시기에 M&A가 회사키워…화학적 결합 중요
― 지난 20여년동안 인터넷 업계는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기억 남는 일을 꼽으신다면.
“정말 기억 남는 사건이 5가지 정도 됩니다. 먼저, ‘PC방의 활성화’입니다. 초창기 PC방은 한국 인터넷 활성화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양대 근처에서 PC방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지요.

두 번째는 게임 포털 ‘한게임’을 출시한 것입니다. 한게임은 사용자가 게임을 설치하는 형태(클라이언트 프로그램)지만, 인터넷과 연결되는 최초의 게임입니다. 한게임을 출시할 때 PC방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국 인터넷과 PC방은 이런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한게임의 유료화’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인터넷은 공짜’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유료화는 큰 난관이었습니다. 한게임은 ‘부분유료화’ 모델을 도입합니다. 의미있는 실험이었고 결과적으로 성공도 했습니다.
네 번째는 ‘한게임재팬의 도전’이지요.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서비스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 유수 인터넷 기업 중 자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사례가 극히 드뭅니다. 한게임 재팬은 미국 기업이 아닌 인터넷 기업이 다른 나라에서 성과를 낸, 어떤 면에서보면, 최초가 아닌가 합니다. 한게임재팬은 네이버가 라인을 만든 기반이 됐기에 또 의미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카카오톡을 꼽지 않을 수가 없네요.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카카오톡의 성공 역시 크게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한게임의 폭발적인 성장 비결이 궁금합니다.
“한게임은 세계의 어떤 게임 모델을 참조한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게임은 클라이언트 서버에 웅장한 사운드와 그래픽 화면이 굉장히 뛰어나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식으로 게임을 개발했습니다.
그런데 한게임의 한 직원이 ‘지금 시대가 인터넷 시대인데, 좀 달라야 하지 않겠냐’고 질문했고 저 역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내에서 격론이 붙었습니다.
미국의 ‘포고(Pogo)’라는 게임은 자바 기반으로 별도의 게임파일을 설치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픽과 사운드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아워게임(Ourgame)’은 온라인 게임을 컴퓨터에 설치해 내 컴퓨터에서만 구동하게 돼 있어 진정한 웹게임이라고 할 수 없었지요.
한게임의 경우, 그래픽과 음향은 클라이언트 서버 기반으로 처리하되 게임 자체는 웹에서 구동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어요. 즉, 원클릭으로 인터넷에서 게임을 시작해 즐길 수 있게 만들면서도 압도적인 그래픽과 음향도 자랑하는 방식이었지요. 이런 방식의 게임은 어쩌면 한게임이 세계 최초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윈도우 기반으로 인터넷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은 한게임이 처음으로 알려져 있어요.”
―한게임 유료화 과정이 궁금합니다.

“게임을 클라이언트 기반으로 만드느냐, 웹 기반으로 만드느냐에 이어 다시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유료와 무료 사이의 갈등이죠. 당시 인터넷은 유료 모델이 없었습니다. 무료를 택해서 광고를 할거냐, 유료를 택해서 소수의 이용자를 유지할 것이냐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사실 제가 일본에 한게임 저팬 하려고 한 50번 정도 왔다갔다 했는데 처음 비즈니스석 탄 날이 좀 감동적이었어요. ‘아 비즈니스석이 이런 기분이구나’ 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게임에도 프리미엄 서비스와 아닌 게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부분 유료화(프리미엄 서비스)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이제 부분 유료화는 PC용 온라인게임은 물론, 스마트폰용 모바일게임이나 각종 애플리케이션(앱) 대부분에 적용할 정도로 흔해졌지요.”
―2000년 7월 네이컴이 한게임커뮤니케이션과 원큐, 서치솔루션 등을 합병합니다. 한게임과 네이버컴의 합병은 훗날 ‘역사적’이라고 평가받을 만큼 성공적이었지요.
“네이버컴의 이해진 대표, 서처솔루션의 이준호 박사와 저 사이에 합의가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야후 1등이었지만, 2등인 다음이 맹추격하면서 순위가 뒤집어지는 시점이었죠. 네이버는 4등, 5등 할 때였습니다. ‘1등 아니면 의미없다’는 데 세 사람이 공감을 했습니다. 한게임은 트래픽이, 이준호 박사는 기술이 있었고 이해진 의장은 네이버란 사이트가 있었습니다. 이 3개를 합치면 할만하다고 판단해서 합쳤습니다.
당시 역할도 나눠져 있었습니다. 이해진 의장이나 이준호 박사는 엔지니어 스타일이라 나서는 걸 싫어해서 제가 (합병법인인 NHN의 CEO도 맡고) 전반적으로 나섰죠. 네이버도 돈 잘 벌고 한게임도 잘 나갔습니다. 한게임은 일본에서도 꽤 성공을 거뒀는데, 한게임재팬은 메신저기업 라인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네이버컴과 한게임이 인수합병을 주도하고 NHN 시절에는 중국 포털업체 아워게임을 인수합니다. 또 카카오를 창업해서는 국내 대표적인 포털인 다음을 인수했습니다.
“‘라이트 타임, 라이트 액션(Right Time, Right Action)’이거든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행동을 할 때 사업의 성패가 갈립니다. 타이밍을 놓치면 의미가 없어집니다. 인수합병도 늦으면 생사의 기로에 섭니다.
그런데, 인수합병은 사실 위험한 전략이라 95%는 실패합니다. 5%만 성공해요. 아주 큰 업체가 조그만 기업을 인수하는 건 좀 다르지만, 네이버컴과 한게임의 인수합병처럼 거의 대등한 규모 합병은 실패했을 때 회사가 망해버릴 수도 있는 선택이죠.
결국 인수합병도 중요하지만, 인수합병 후 두 회사가 얼마나 시너지를 내고 화학적 결합을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이해진 의장이랑 호흡이 맞았고, 둘다 잘 했던 거 같습니다. 카카오와 다음도 화학적 결합이 되어야 합니다.
중국의 포털업체 아워게임의 인수는 만만치 않았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한국 회사와 중국 회사가 화학적 결합을 이룬다는 것이 쉽지도 않고요. 당시 인수주체인 NHN은 중국 사업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거든요. 김정호 대표(당시 NHN차이나 대표, 현 베어베터 대표)가 중국에서 고군분투 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만만치 않았고 결과적으로 중국에서 나오게 됐습니다.”

―지금 중국 시장의 크기나 성장 속도를 보면, 10년 전부터 중국에 진출하겠다고 전략을 짠 것 자체는 맞지 않았나 합니다.
“그렇죠. 그래서 실행이 (전략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거죠. 원래 전략은 아워게임 인수한 후 한게임의 모델로 가려는 거였습니다. 한게임 모델은 인터넷과 게임이 결합된 모델이거든요. 전 세계에 이런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아워게임 측도 한게임처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렇다면, 인수하겠다’였습니다. 중국 인력을 계속 설득해가면서 이런 모델을 실행했던게 힘들었고 예상치 못한 문제도 좀 많았어요.”
―미국, 중국, 일본 등 규모가 큰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요.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는 글로벌 비즈니스의 핵심은 ‘서비스를 잘 이해하는 사람과 현장을 이해하는 사람, 두사람의 교집합이 얼마나 크냐’가 핵심인 것 같습니다. 그 교집합이 성공 임계점을 넘을 때까지 커지지 않으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카카오는 한국의 대표적인 메신저이지만, 동남아 시장에도 진출시켜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역시 가장 어려운 부문은 동남아 현장 경험이 많은 인력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글로벌 경험이 많다’는 점도 모바일 사업에선 다른 이야기가 되니까요.”
◆ VC, 기업가, 시장의 공통분모 클수록 시너지 커진다
―2007년 돌연 네이버를 떠나게 됩니다. 마지막 회식 자리에서 배가 항구에 있을 때 안전하다. 그러나 그건 더 이상 배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2007년 8월부터 2008년 6월까지 NHN 비상임이사로 재직하다 2009년 회사를 떠나 미국으로 갔다.)
“제 입장에서는 한 10년 정도(한게임과 네이버컴 합병 후 사업기간) 하고 나니, 새로운 것도 더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고민이 밀려와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이해진 의장과) 사이가 안 좋아졌을 것이라는 그런 이야기는 좀 그렇습니다. 제가 나오고 한게임 쪽 인력들이 많이 나온 건 사실입니다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창업의 요람입니다. 비결이 따로 있나요? 카카오 경영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창업과 관련해서는 제가 NHN을 나와서 미국으로 간 후 거기서 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 실리콘밸리에 머물렀고 실리콘밸리의 선순환 구조을 보게 됐습니다. 벤처캐피탈(VC)이 있고, 기업가들이 있고, 시장이 있죠. 이 세가지가 결합된 공통 분모가 크면 클수록 시너지 효과가 발생합니다. 스타트업도 힘을 받고 관심을 받고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더라구요.

그래서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것이 케이큐브벤처스라는 벤처캐피탈(VC)을 만든 것입니다. ‘여기는 수익률 이런 거 많이 따지지 말고, 좋은 팀이면 투자해줘라’라고 했습니다. 2014년 기준으로 2년 만에 36곳(2016년 현재 69곳)을 투자를 했습니다. 엄청난 거죠. 잘 투자했다고 격려도 많이 해줬습니다.
진실한 VC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다행히 장병규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파트너도 좋은 투자를 많이 하는 등 분위기가 좀 좋아졌습니다. 정부도 ‘매칭펀드’를 만들어서 스타트업에 투자를 많이 하고요.
두번째는 창업이 활성화하려면 시장이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벤처가 성공해서 기업공개(IPO)까지 가기 힘든 거 아시잖습니까. 확률도 낮고 주변 지인의 도움(자본)을 받아서도 회사가 망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아요. 벤처가 자립하기 어려운 것은 기본적으로 시장을 찾지 못해서인 것 같아요. 벤처기업한테는 자본이 좀 해결되면, 그 다음에 시장이 필요합니다.
카카오가 이 부분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플랫폼을 만들어서 시장을 키우자’라는 게 카카오의 주된 철학 방향이자, 기업방향이죠. 카카오가 또 잘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사례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바일 게임 시장도 커졌고 이모티콘 시장도 생겼지요. 그런 시장을 만들어내는 게 의미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창업이 활성화하려면, ‘기업가 정신’을 고양시켜주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카카오는 어떻게 탄생됐나요?
“미국에 있을 때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고 즐기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보고 거의 빠져들게 됐습니다. 한국에 돌아왔는데, 무려 2년 동안 스마트폰이 출시되지 않더군요. (애플의 아이폰은 미국에선 2007년, 한국에선 2009년에 출시된다.)
당시 아이위랩이라는 개발사를 만들어 여러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이 회사는 카카오톡을 출시한 후 사명을 카카오로 변경한다.) 스마트폰이 마침내 국내에 출시됐을 때, 전세계 10만 개 앱(당시 기준)이 이미 나와 있는데, 과연 어떤 앱을 만들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팀원들에게 던지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결국 TV에서 PC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오는큰 흐름이 있더라구요. TV 시대에는 방송(broadcasting)을 통해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했고요, PC 시대에는 검색을 통해 정보를 탐색하는 영역이 가장 컸습니다.
그렇다면, 스마트폰 시대에는 무엇을 하느냐는 원론적인 질문을 주고받았는데, 아주 단순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결국 ‘스마트폰 기기는 커뮤니케이션이다’라는 답에 주목하게 된 거죠. 커뮤니케이션 길목에 있는 기기가 바로 스마트폰이었습니다.

그 길목을 잡기 위해서 따져봤더니 3개 앱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일대일 커뮤니케이션에 특화한 ‘카카오톡’, 그룹 커뮤니케이션에 특화한 ‘카카오아지트’, 공공 커뮤니케이션에 특화한 ‘카카오수다’. 4명씩 팀을 짜서 3개월 정도 동시에 이 3가지 앱을 만들었습니다. ‘고민하지 말고 커뮤니케이션 영역을 갖다가 전방위적으로 출시한 다음, 어떤 게 성공하나 보자’는 전략이었구요.
딱 2개월 지났는데, 카카오톡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팀원들을 다시 설득해 결단을 할 수 밖에 없었죠. 20명 되는 조직이 3개 앱을 동시에 성공시키는 건 어렵기 때문에, 나머지 2팀에겐 밤새워 만든 앱을 뒤로 하고 카카오톡에 매달리도록 했어요. 다른 2팀도 카카오톡으로 가는 게 맞다고 흔쾌히 동의해줬고 20명 전원이 카카오톡에 매달리게 됩니다. 그 후로는 모든 비즈니스맨들이 꿈꾸는 아름다운 그래프를 그리게 됩니다(웃음).”
◆ 온오프라인 경계가 무너진 시대, 시장은 무궁무진… 규제 등 막힌 지점 풀어줘야
―카카오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대한민국에서 나름대로 스마트폰에서 가장 인기있는 앱을 내놓게 되면서 직원들과 고민을 하고 토론하게 됩니다. ‘우리의 목표는 뭐냐, 목적은 뭐냐’라는 말을 할 때, 제 개인적인 고민을 섞어서 ‘플랫폼’이란 말을 키워드로 삼습니다.
결국 비즈니스라는 건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 모든 게 굉장히 편안한, 비즈니스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환경이 됩니다. 그러면 이제 ‘생태계의 경제’를 두고 도전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애플과 구글이 만들어놓은 모바일 생태계 경제에 나름 의미있는 도전을 하는 거지요. ‘무엇을 어떻게 팔까’라는 질문을 ‘누구를 어떻게 참여시키고, 어떻게 연결할까’로 바꾸는 순간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카카오 게임’이라는 플랫폼이 좋은 사례입니다. 한때 1~100위 성장하는 게임 중 70개가 카카오게임이라는 플랫폼에서 돌아가기도 했어요. 모바일과 캐주얼 게임 장르를 접목해 모바일 게임 시장을 단숨에 20배 이상 키웠습니다. 카카오 게임 플랫폼을 통해 성장한 게임이 투자도 받고 기업공개도 하고 그랬지요. 앞서 언급했듯이 카카오라는 플랫폼을 통해서 수많은 벤처들이 자립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자는 게 카카오의 비전입니다.”
―2020년에는 인터넷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2020년이라... 대한민국 IT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새로운 시도에 제약이 많다는 점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분리돼 있었습니다. 모바일의 시대에선 그 경계가 없어지거든요. 스마트폰만 가지고 다니면, 온오프라인이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나 새로운 시장이 창출될 거라는 거죠.
대한민국에선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교집합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면, 뭔가가 막혀있는 거죠. 그게 문제가 빨리 풀리지 않으면, 글로벌 기업들이 새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큽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나요?

“요즘 ‘내가 가진 프레임(틀)을 깰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아는 사람들 한두명 거쳐 (만나고 싶은) 사람과 연결하는 것입니다. 책을 읽다가 참신한 생각이 있으면, 만나서 이야기 들으려고 노력해요. 이런게 요즘 가장 좋은 거 같습니다. 사람은 계속 프레임에 갇히거든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걸 깰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한데. 그건 결국 새로운 환경, 새로운 자극인 거 같아요.”
< PC방 귀퉁이에서 이룬 한게임 회원 1000만 돌파>
1992년 삼성SDS에 입사한 김범수 의장은 과장 시절 PC통신 서비스 ‘유니텔’의 기획과 개발을 총괄했다. 1997년 후발주자인 유니텔이 PC통신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유니텔의 ‘OX 퀴즈’에는 7만명이 몰렸다. 막연하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김 의장은 사업 아이템을 온라인 게임으로 정했다.
그는 1998년 6월 서울 행당동 한양대 앞에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인 ‘미션 넘버원’을 차렸고 3개월 후 삼성SDS를 그만뒀다. 한양대 PC방 한 쪽에 창업 사무실이 마련됐다.
김 의장은 “아무래도 PC방은 시끄러워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며 대치동 휘문고등학교 근처 빌딩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최초 법인명은 ‘미션엔터테인먼트’. 인터넷과 게임을 접목해 즐거움을 주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거창한 비전과 달리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게임 개발은 더뎠다.
사업부장을 맡았던 남궁훈 이시장은 문 대표가 개발한 PC방 관리 프로그램(미션데스크)을 전국 PC방에 팔러 다녔다. 회사 운영 자금이라도 벌어볼 요량이었다. 이 PC방 관리프로그램은 훗날 미디어웹이라는 PC방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회사로 발전하게 된다. 게임 개발은 서울 광진구 테크노마트의 게임지원센터에 입주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회사 이름도 한게임커뮤니케이션으로 바꿨다.
1999년 12월 마침내 최초의 게임포털 한게임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PC방 생리를 잘 알았던 김 의장이 PC방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마케팅을 했다. PC방 업주들에게 관리 프로그램을 무료로 깔아주는 대신 한게임 아이콘을 PC 초기 화면에 띄워달라고 했다.
서비스 3개월 만에 100만명이 넘어섰다. 가입자가 몰려들고 서버 용량이 계속 늘어나자, 개발팀에서 가입 신청을 아예 막아버리자는 의견을 낼 정도였다. 이미지를 다 없애고 PC통신처럼 화면을 만들어 부하를 줄였다.
한게임의 성공 비결 중 잘 알려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남궁훈 당시 한게임 사업부장이 문태식 당시 부사장에게 게임 아이콘을 클릭하면 웹에서 바로 구동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2000년대 초만해도 온라인 게임은 자료실에서 설치 파일을 다운받아 내 컴퓨터에서 설치해 구동하는 방식이었다.
남 사업부장의 논리는 “웹 비즈니스는 트래픽이 중요한 데, 사용자 컴퓨터에서 게임을 실행해버리면 어떡하느냐”는 것이었다. 개발팀은 자바 환경이 아닌 윈도 환경에서 웹으로만 게임을 구현한 사례가 없어 당황했다.
김범수 의장은 클라이언트 서버 기반 게임과 인터넷 기반 게임의 장점을 결합해 인터넷에서 게임을 즐기면서도 화려한 그래픽과 사운드를 즐길 수 있도록 한게임을 설계한다.
그는 “모순을 해결하는 일종의 ‘트리즈’ 해법이었던 셈”이라면서 “이것이 한게임의 숨겨진 첫 번째 성공 스토리”라고까지 평가했다.
한게임의 회원 수는 하루에 10만명씩 늘어났고 1000만명을 돌파하는 시점, 한게임 출범 5개월 만인 2000년 4월 네이버컴과의 합병을 발표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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