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감사하다는 학생 편지, 읽지 못해 아쉬워"
영어 교사 생활 10년차
TV와 컴퓨터 연결, 판서 대신 자판으로
애니메이션·팝 이용.. 아이들 흥미 끌며 수업
잔소리하는 평범한 선생님
"교사가 장애인이란 사실 어릴수록 빨리 적응해
장애 교사에 대한 인식.. 조사, 연구하고 싶어요"
올해로 교직 생활 10년 차를 맞은 최유림(33)씨는 국내 첫 시각장애인 교사다. 지난 2007년 임용고시에 합격해 교사가 됐다. 그는 선천성 시신경위축망막증으로 명암 정도를 구별할 수 있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현재 충남 온양여자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가 가르치는 과목은 영어다. 지난 14일 충남 아산역 근처 카페에서 만난 그는 시각장애인용 흰 지팡이조차 없이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혼자 왔느냐고 묻자 그는 활짝 웃으며 "항상 혼자 다닌다"며 "지팡이 없이도 다닐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지난 2007년 천안 두정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천안 불당중학교를 거쳐 지난해 세 번째 학교인 온양여중으로 자리를 옮겼다. 새 학교에 발령받을 때마다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학교 지리를 외우는 것이다. 학교를 옮기면 2~3일가량 시간을 내 천안 대흥동 집에서 학교까지 동선과, 학교 내 교무실과 교실 위치, 화장실, 급식실 등 생활에 필요한 동선을 익힌다. 이때 서울의 한국시각장애복지관 복지사가 나와 그를 도와준다. 그는 "교실을 화장실인 줄 알고 잘못 들어갈까 동료 교사들이 걱정하지만 10년간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교사가 됐을 때 "선생님이 됐다는 벅찬 마음에 이것저것 많이 시도했다"고 말했다. 수업을 시작하면 외국 노래를 들려주고 따라 부르는 식으로 아이들 흥미를 끌었다. 비틀스 같은 올드팝 대신 아이들이 관심있어할 만한 저스틴 비버나 비욘세 같은 요즘 가수의 노래를 들려줬다. 영어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당시 영어 과목은 수준별 분반 수업을 했는데 내가 가르치던 중급반에서 상급반으로 몇 명을 올려보내려 했더니 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며 "상급반에서는 외국 노래 따라 부르기 같은 수업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판서를 할 수 없는 그는 TV와 컴퓨터를 연결해 자판을 치면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요즘은 1·2학년들에게 영어 기초 문법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지금은 체벌이 아예 금지됐지만 예전에는 학생들에게 매를 든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정말 말 안 듣는 아이들이었는데 키로 허벅지 위치를 가늠해 체벌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담임을 맡은 적도 있었다. 담임을 맡고 싶다는 의견을 학교에 적극적으로 표현한 결과였다. 하지만 사흘 만에 다른 교사로 교체됐다. 그는 "당시 교장 선생님이 걱정이 많으셨다"며 "학부모들이 시각장애 담임을 꺼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저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서비스를 받는 학생과 학부모가 이의를 제기하면 고려할 수밖에 없어요. 담임을 계속할 수 없어 조금 속상하긴 했지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 시설을 이용할 때 불편함은 없을까. 그는 "처음 부임한 학교에서 계단 앞 같은 곳에 점자 보도블록을 설치해주었지만 사실 별로 필요가 없다"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거의 없다시피 한 우리나라에 30년 이상 살면서 단련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전 학교에서 4층에 교무실이 있었을 때 다른 교사들은 늘 엘리베이터를 타고 교무실에 갔지만 그는 계단을 이용했다. "운동하려고 계단으로 걸어 올라갔던 건데 다른 교사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앞이 안 보이는 내가 계단으로 가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면 의아하게 생각할 것 같았다"며 웃었다.
그는 지난 2013년부터 단국대 특수교육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논문으로 쓸 생각이다. 장애 교사를 일반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조사해서 연구 결과를 내놓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은 어릴수록 교사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에 금세 적응한다"고 말했다. 학기 초반 그를 장애인으로 대하던 학생들도 몇주만 지나면 다른 선생님과 똑같이 대하는 걸 느낀다고 했다. 그는 "학기 말에 감사하다는 손편지를 써오는 학생들이 더러 있는데 그 편지를 직접 읽지 못하는 것"을 유일하게 안타까운 점으로 꼽았다. "저는 그냥 평범한 선생님이에요. 잔소리 많이 하고 조용히 시키고 가끔 화도 내고 시험 범위에 맞춰 진도 나가려고 애쓰는 교사일 뿐이죠."
☞ 'Why?' 조선일보 土日 섹션 보기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살면서 그렇게 화난 모습 처음 봐”… 트럼프, 호르무즈 안 돕는 유럽에 분노
- SK텔레콤, ‘찾아가는 서비스’ 확대…현장 소통 강화
- ‘케데헌’ 강제중단 논란에 오스카 “시간 제한돼 어쩔 수 없었다...개선할 부분”
- [단독] 3년차 평검사 “보완수사권 제한, 상식적인 발상인가”
- 중국 식품업체 ‘표백 닭발’, 국내 유통은? 식약처 “수입 허용 안 돼”
- ATM 수수료 노린 ‘반복 인출’… 대법 “기계 조작 넘어 ‘직원’ 속인 것”
- 코인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뭐길래...극한 갈등에 제동 걸린 코인 기본법
- 배우 이재룡, 음주운전 혐의로 檢 송치...‘술타기’ 의혹도 인정
- “BTS 콘서트 앞두고 바가지요금과 전쟁”… 이번엔 폭리 잡히나
- 30분 걸리던 심사 10초 만에…하나은행, AI로 기업신용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