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창은 포졸용 아닌 '특수 병기'였다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 / 최형국 지음 / 인물과사상사
칼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조선 후기 병서인 ‘무예도보통지’에는 칼날의 형태에 따라 양날은 검(劍), 외날은 도(刀)로 구분하지만 후세에 이것이 혼용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금속제련 기술이 부족했던 고대 전투에는 베는 기법보다 날카로운 검 끝으로 찌르는 기법이 활용됐다. 제련 기술이 발달하고 칼날의 휨에 따라 베는 기법이 진화하면서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반드시 외날 도가 제작됐다. 그러나 조선시대 사극(史劇)에는 정규군이나 장수끼리 칼을 맞대고 겨루는 장면에서 삼국시대에나 사용됐을 법한 검이나 심지어 고분에서나 발굴되는 형태인 환두대도가 등장한다.
환도(環刀)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칼집에 고리를 걸어 몸에 차고 다니는 도검이다. ‘띠돈’으로 부르는 조선시대 환도의 고리는 360도 자유롭게 돌아가는 게 특성이다. 일본도는 띠돈 없이 허리띠에 끼워서 패용했고, 중국 도검은 띠돈이 있지만 180도만 회전해 칼을 패용하는 자료만 봐도 삼국의 구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 사극에선 칼을 손에 쥐고 다닌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의 동상도 칼을 손에 쥐고 땅을 짚고 있다. 또 장군이 입고 있는 건 어깨에 한 겹이 더해진 중국식 견박형 갑옷이다. 갑옷은 시기마다 형태와 재질이 달라 갑옷만 보고 어느 나라, 어느 시기의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 장군의 동상은 제대로 고증된 게 없다.
사극이라도 TV드라마는 작가의 상상력이 많이 가미된다. 하지만 고증이 가능한 무기, 갑옷, 전투 등의 장면에서 잘못된 모습이 반복되면 대중들은 그것이 맞는 줄 안다. 요즘은 한류의 인기로 드라마들이 중국이나 일본 등으로 소개되는 데, 그쪽의 전문가들이 본다면 웃을 일이다. 심지어 고증이 생명인 다큐멘터리조차 다를 게 없어 고증오류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 책의 저자는 전통무예를 수련하다가 무예(武藝)와 무인(武人)의 삶에 대한 궁금증 탓에 뒤늦게 대학에서 무예사와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오류가 거슬렸을 법하다. 국방일보에 이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2014년에는 ‘TV역사물의 고증한계와 그 대안’이라는 논문을 펴냈다. 저자는 “사극 속에서 반복되는 군사사와 무예사 오류를 지적하고 대안을 찾아보고자 책을 썼다”고 밝힌다.
조선시대 사극에서 가장 흔해 보이는 무기가 창처럼 길고 끝에 가지가 3개 달린 당파(삼지창)다. 병사나 수군, 심지어 포졸들도 당파를 들고 다는 모습이 익숙하다. 당파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명나라 군대를 통해 들어온 당시로선 신무기였다. 하지만 사극에선 조선 태조나 세조 시대를 불문하고 당파가 등장한다. 일제강점기에 광복군이 K2 소총을 쓰는 꼴이다. 또 당파는 구조상 적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양쪽으로 휜 창날을 사용해 장창을 비롯한 적의 긴 무기를 찍어 누르는 특수병기였다. 병사나 포졸이 들고 다닐 정도로 보편적인 무기가 아니며, 요즘으로 치면 특공대원이나 사용하는 병기였다. 당파로 적의 장창을 제압하면 다른 병사가 적을 베거나 찔렀다.
또 사극에서 흔히 나오는 게 장수나 병사가 말을 탄 채 칼 한 자루만 들고 돌진해 적들을 베는 장면이다. 하지만 그런 식의 전투는 불가능하고 바로 상대에게 제압된다. 말을 탄다면 기병이고, 기병의 병기는 활이나 마상편곤(馬上鞭棍)이라 해서 일종의 쇠 도리깨와 같은 긴 타격식 무기였다. 적은 장창으로 기병의 말을 공격하는 것이 우선이어서 겨우 환도를 가지고는 자신도 말도 보호할 수 없다.
책은 ‘오와 열’이 생명인 전투가 난장판처럼 그려지는 것, 활과 화살에 대한 잘못된 고증, 외국산 경마용 말과 안장이 조선시대에 등장하는 오류 등 사극의 총체적인 잘못된 고증에 대해 지적하고, 사극을 위한 상설 자문회의와 아카이브 구축, 조연출의 전문화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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