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번호 17번' 안영학의 15년 축구인생

김지영 2018. 7. 31. 18: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2018 러시아 FIFA 월드컵이 열리기 2주 전, 런던에서 또 하나의 세계적인 축구 대회가 열렸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2018 CONIFA(독립축구연맹) 대회는 미승인 국가, 소수민족, 공동체 등의 대표팀이 축구 실력을 겨루는 세계 축구 대회이다.

재일 조선인으로서 일본과 한국, 북한 세 나라의 대표팀으로 활동했던 안영학 축구선수도 'United Koreans In Japan(일본의 통일 코리안들)' 팀의 선수이자 감독으로 참가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EBS1TV 지식채널e '17번 선수' - 08월 01일 24시45분 방송

2018 러시아 FIFA 월드컵이 열리기 2주 전, 런던에서 또 하나의 세계적인 축구 대회가 열렸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2018 CONIFA(독립축구연맹) 대회는 미승인 국가, 소수민족, 공동체 등의 대표팀이 축구 실력을 겨루는 세계 축구 대회이다. 이번 대회에는

재일 조선인으로서 일본과 한국, 북한 세 나라의 대표팀으로 활동했던 안영학 축구선수도 'United Koreans In Japan(일본의 통일 코리안들)' 팀의 선수이자 감독으로 참가했다. '지식채널e'에서는 축구를 통해 한국, 일본, 북한 세 나라를 이은 축구 선수 안영학 선수의 15년 축구 인생을 담은 '17번 선수' 편을 방송한다.

1978년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3세 안영학. 그의 선수 경력은 남다르다. 안영학 선수는 2002년 J리그 알비렉스 니가타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일본에서도 유능한 축구 선수로 손꼽힐 만큼 눈에 띄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2006년, J리그에서 활약하던 그에게 K리그 영입 제의가 들어왔다. 그러나 일본도, 한국도, 어느 국적도 아닌 그가 K리그 선수가 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일본과 한국을 오가려면 두 개의 신분증명서가 있어야 한다.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그가 '조선'적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국적을 한국으로 선택하는 순간, 이는 남북한이 분단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까지 그는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

수차례의 과정 끝에 그는 '조선'국적 최초로 K리그에 입단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부산 아이파크와 수원삼성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동하며 2006, 2007년 K리그 올스타에 연달아 선정될 만큼 좋은 활약을 펼쳤다. 이후, 안영학 선수는 북한으로부터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 영입 제의를 받는다. 당시 그는 K리그 활동과 북한 대표팀의 월드컵 조별리그 준비를 함께 병행했다. 그는 2002년 월드컵때 부터 품어왔던 좌우명 "꿈은 이루어진다"를 마침내 이루었다. 북한 대표팀이 남한 대표팀과 나란히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한국, 일본, 북한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조선'적의 축구 선수 안영학은 축구를 통해 일본과 한국, 북한 세 나라의 다리를 모두 건넜다. 축구를 통해 국경을 넘나든 그에게 '나라'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일본, 한국, 북한으로 나라는 바뀌어도 어디서든 17번으로 뛴 축구 선수 안영학 에게 등번호 17번은 어떤 의미일까? 지식채널ⓔ '17번 선수' 편은 EBS1에서 방송된다.

김지영기자 kjy@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