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조종과 목표추적을 동시에.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2차 대전 때 전투기 파일럿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고안한 장치다. 2004년 BMW 5세대 5시리즈를 신호탄 삼아 자동차로 영역을 넓혔다. 고급차로 시작해 이제 대중차도 다는 추세다. 최근엔 다양한 가격대의 애프터마켓 제품이 쏟아져 나와 헤드업 디스플레이의 대중화를 성큼 앞당기고 있다. 

글 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사진 이병주 기자, 각 제조사

군용 전투기에서 시작해 자동차로

50m. 자동차가 시속 100㎞로 주행할 때 대략 2초 동안 이동하는 거리다. ‘깜빡’ 한 눈 파는 사이 ‘깜놀’할 만큼 순간 이동하는 셈이다. 운전하면서 스마트 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내비게이션 화면을 보기 위해 잠깐 시선 옮길 때의 위험성을 새삼 일깨우는 사실이다. 따라서 자동차 제조사는 운전자의 시선 흩뜨리지 않을 방법을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1946년 창업해 2011년 최종 파산한 스웨덴 자동차 사브(Saab)의 ‘나이트 패널’이 좋은 예다. 어둠 속을 달릴 때 속도계 바늘과 눈금을 제외한 계기판 전체 조명을 끄는 장치다. 당시 어둠 속에서 녹색 빛으로 홀연히 뜬 속도계를 보고 운전하다보면, 지상 위를 낮게 떠서 비행하는 듯 묘한 기분에 빠져들곤 했다. 항공기에 뿌리를 둔 제조사다운 아이디어였다. 



2004년, 다시 한 번 혁신의 물꼬를 텄다. 주역은 이때 BMW가 갓 내놓은 5세대 5시리즈(E60). 부위별로 철판과 알루미늄 섞은 하이브리드 차체, 가변 스티어링 기어비 등 혁신을 아낌없이 담은 수작이었다. 운전자의 시선을 붙든 파격기술 또한 빼놓을 수 없었다. 양산차 가운데 처음 도입한 ‘헤드업 디스플레이(Head-up Display, 이후 HUD)’였다. 

HUD는 2차 대전 때 전투기가 쓰기 시작했다. 투명한 창에 정보를 띄워 조종하면서도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도록 도왔다. 놀랍게도, 7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HUD의 기본개념과 얼개엔 큰 차이가 없다. 디스플레이, 몇 개의 곡면과 한 개의 평면거울, 앞 유리 또는 별도의 투명한 판으로 구성한다. 정보가 수많은 단계를 거쳐 상으로 결실을 맺는 구조다. 

고급차에서 대중차로 영토 확장 중


국산차 가운덴 2012년 기아 K9이 처음으로 HUD를 도입했다. BMW도 2010년에서야 개발한 6만5,000컬러를 써서 모든 색을 표현할 수 있었다. 또한, BMW엔 없는 애니메이션 기능도 담았다. 가령 내비게이션 안내를 위한 화살표가 움직였다. 조립오차도 역대 기아자동차 가운데 최소 수준. 유리 각도가 맞지 않으면 상이 이중으로 맺힐 수 있기 때문이다. 

기아차의 기존 앞 유리 조립 오차는 1~3㎜. 1세대 K9은 0.5㎜ 이하까지 줄였다. 그럼에도 벨기에산 앞 유리를 썼다. 국산으론 HUD가 요구하는 품질을 맞출 수 없었던 탓이다. 발수(앞문), 이중접합, 자외선 차단 등의 기능을 담은 옆과 뒤 유리도 프랑스 ‘생 고뱅(Saint-Gobain)’제였다. 참고로, 최근 데뷔한 제네시스 G90은 모든 유리의 국산화를 마쳤다. 



현재 국내 시장에서 고를 수 있는 HUD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주류는 BMW 5시리즈나 기아 K9처럼 ① 앞 유리에 정보를 띄우는 순정 옵션. ② 별도의 반사판을 쓰기도 한다. 원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소형차가 주로 쓴다. 미니나 푸조·시트로엥, 현대 코나, 르노삼성 QM3 등이 대표적이다. 그밖에 ③ 출고 후 다는 애프터마켓 제품이 있다. 

르노삼성 QM3와 르노 클리오는 T2C 등의 옵션을 갖춘 차종에 한해 출고 후에도 순정 HUD를 사서 달 수 있다. 가격은 장착비와 부가세 포함 28만 원. 1년 또는 2만㎞까지 보증한다. 옵션으로도 고를 수 없는 차종이라고 낙심할 필요 없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검색해 보면, 다양한 가격대와 디자인의 애프터마켓용 HUD가 판매 중이니까. 

가격과 기능 비례, 끝판 왕은 길 안내


지난 몇 년 사이, 국내 시장에서 애프터마켓용 HUD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주요 포털 온라인 쇼핑에서 검색하면 판매처가 5만 개에 육박한다. 제품에 따라 가격과 디자인, 기능, 부피는 천차만별이다. 아마존 같은 해외 쇼핑몰로 눈을 돌리면, 제품은 훨씬 더 다양해진다. 따라서 내비게이션이나 블랙박스 고를 때처럼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게 된다. 

HUD 고르기의 시작은 ‘예산’이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저렴한 제품은 2만~3만 원대로도 살 수 있다. ‘OBD(On-board diagnostics)’ 단자와 연결해 주행속도와 1분 당 엔진회전수(rpm), 수온, 전압 등의 기본적 정보만 띄운다. 제품 디자인과 정보 표시하는 화면 구성과 밝기 등도 살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설치 위치와 편의성도 확인해야 한다. 



대부분 애프터마켓용 HUD는 대시보드 위에 얹어 쓴다. 이때 대시보드 위쪽에 굴곡이 많은 경우 제품 크기가 작을수록 안정적으로 달 수 있으니 유의하자. DIY로 매립을 하는 오너들도 있다. 과거엔 보다 뚜렷한 상을 맺기 위해 앞 유리 안쪽에 필름을 붙이거나 투명한 판을 더한 HUD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엔 앞 유리에 바로 정보를 띄우는 경우가 많다. 

애프터마켓 HUD의 가격은 대개 기능에 비례한다. 20만~30만 원대 제품은 스마트 폰과 블루투스 연동을 통해 내비게이션 길 안내까지 소화한다. ‘OBD-Ⅱ’ 단자 갖춘 2008년 이후 차종은 한층 구체적인 정보를 보여준다. 가령 순간연료소모량, 연료잔량, DPF(디젤 미립자 필터) 포집량 등 깨알 같은 정보 중 화면 크기에 맞춰 몇 개를 골라 띄울 수 있다.  

단자연결 후 필러 안에 전선 감추면 끝

실제로 애프터마켓용 HUD를 달고 체험해봤다. 대상은 2014년형 닛산 큐브. HUD와 전혀 인연이 닿지 않았던 차종이다. 게다가 앞 유리가 수직에 가깝게 곧추서 있어 정보를 또렷이 맺기에도 퍽 불리한 조건이다. 제품은 불스원 ‘스마트 HUD 프로’로 정했다. 우선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들었고, 자동차 용품 전문기업의 실력이 궁금하기도 했다. 



설명만 꼼꼼히 읽으면 누구나 쉽게 달 수 있다. 스티어링 휠 왼쪽 아래편 커버를 열어 OBD-Ⅱ 케이블과 전원 선을 연결하고, A필러 안쪽 내장재를 뜯어낸 뒤 전선을 감췄다. 설치하는데 15분 안팎이면 충분했다. HUD 본체는 A필러, 앞 유리가 만나는 모서리에 최대한 가깝게 달았다. 그래야 전선도 최소한만 드러나고, 전방시야도 방해하지 않는 까닭이다.  

아이폰에 불스원의 스마트 HUD 프로와 현대엠엔소프트의 ‘맵피(Mappy)’ 애플리케이션을 각각 설치했다. 첫 번째 앱은 각종 기능제어, 두 번째 앱은 내비게이션 연동해 쓸 때 필요하다. 안드로이드폰은 각각 ‘허드원(HUDONE)’과 ‘T맵’ 또는 ‘원내비’ 앱을 이용한다. 전원을 켜고 휴대폰을 연결하자 앞 유리 왼쪽 아래에 손바닥만 한 총천연색 화면이 뜬다. 

스마트 HUD 프로는 OBD-Ⅱ 단자 갖춘 차종과 별매품인 전용 케이블로 연결할 경우 최대 36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스마트 폰 앱 설정을 통해 이 가운데 화면이 허용하는 최대치인 4개를 띄웠다. 상은 살짝 겹쳐서 뜬다. 하지만 원인은 제품이 아닌, 큐브의 유별난 앞 유리 각도. 다행히 운전하면서 곁눈질로 확인하는 시인성은 흠잡을 데 없다. 

시선 이리저리 옮길 필요 없어 안전해



낮에도 화면은 기대 이상 밝고 선명하다. 운전자 시선에서 화면이 도로 위에 머물러 자연스럽게 명도 낮추는 효과를 내는 덕분이다. LCD 휘도(특정방향에서 본 광원의 단위면적 당 밝기)를 기존 제품보다 7배 높인 결과이기도 하다. HUD의 존재는 야간운전 때 더 크게 다가왔다. 적당한 밝기의 화면이 간접조명 효과도 내고, 정보도 한층 쉽게 볼 수 있다.  

HUD와 더불어 운전습관도 변했다. 이전엔 운전하면서 내비게이션 지도를 확인하느라 수시로 센터페시아의 모니터를 기웃거렸다. 물론 기본적으로 음성안내도 나오지만, 다음 교차로까지 남은 거리나 유지해야할 차선 같은 정보는 화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HUD가 실시간으로 알려주니까. 그래서 마음도 한층 더 여유롭다. 



매립형 내비게이션처럼 귀찮게 메모리 카드 빼거나 서비스센터 찾아 업데이트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 폰의 앱만 최신 상태를 유지하면 된다. 순정 내비게이션마저 없어 스마트 폰을 대용으로 썼다면 그야말로 ‘신세계’다. 결정적인 갈림길에서 갑자기 걸려온 전화 때문에 지도 화면이 가려 당황할 필요가 없으니까. 화면도 취향에 따라 두 모드 중 고를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고속도로 사망사고 원인의 절반이 전방주시 태만이다. HUD는 이런 위험을 줄일 안전장비다. 최근 실제 풍경과 정보를 앞 유리 전체에 띄우는 ‘증강현실’ HUD가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나노기술로 완성한 투명 디스플레이 덕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거창한 HUD를 기다릴 필요 없다. 애프터마켓용 제품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