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순희 국제 유도연맹 명예의 전당 헌액

‘은둔의 나라에서 온 소녀’ 와 ‘살아 있는 전설’의 결승전
1996년 7월 26일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유도 48kg급 결승에 오른 선수는 일본의 다무라 료코와 북한의 계순희였다. 결승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유도 팬들이 예상한 승패는 이미 갈려 있었다.
유도 종주국 일본의 다무라 료코는 이미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키는 1m 46cm로 단신이었지만 민첩하고 순발력이 뛰어났고, 공격과 방어까지 모든 유도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했다. 경기가 시작되면 언제나 선제공격을 하고 경기 내내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상대를 몰아붙였다. 16살 때부터 국제 대회에 출전해 이미 84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가장 확실한 금메달 후보로 다무라 료코를 꼽았다. 일본이 만약 금메달 1개에 그친다면 그 선수가 바로 다무라 료코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그에 비해 은둔의 나라 북한에서 온 16살 소녀 계순희에겐 결승에 오른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경험도 부족한데, 처음 출전한 국제 대회에서 은메달만 따도 잘한 것이라는 시각이 컸다. 시작도 하기 전에 모든 이가 계순희의 패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세계를 들어 메친 작은 소녀’, ‘은둔의 나라에서 온 작은 거인’ 찬사
드디어 결승전. 예상대로 다무라 료코는 선제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계순희는 끌려다니지 않았다. 되치기로 다무라를 흔들었고, 힘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다무라를 압도해 나갔다.
다무라는 자신의 특기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기합 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계순희는 발뒤축 걸기로 효과를 따내고 상대 지도까지 얻어내 결국 우세승을 거뒀다. 예상치 못했던 패배에 다무라는 고개를 숙였고, 그를 응원하던 일본 팬의 응원은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반면 계순희에겐 ‘세계를 들어 메친 작은 소녀’. ‘은둔의 나라에서 온 작은 거인’이라는 갖가지 찬사가 쏟아졌다. 그리고 남북한을 통틀어 우리를 감동을 준 것은 담대하고 침착한 그의 인터뷰였다.

우승 직후 인터뷰는 짧았지만, 후에 계순희는 역사에 치욕을 남긴 일본에 질 수 없었다면서 당시를 회상했다. "일부 사람들이 '계순희가 결승에 오른 것만도 큰일을 해낸 거다.'라며 아직 시합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내가 질 것만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다무라 료코도 인간이다, 그녀에게도 빈틈이 있고 인간은 실수한다'는 생각과 함께 은근히 오기가 생겼어요. 어쩌면 주위의 그런 말들이 저를 더 자극했는지도 모릅니다.”
계순희, 북한 유도에 주어진 1장의 와일드카드로 출전
당시 북한은 애틀랜타 올림픽 출전을 고민하다 뒤늦게 참가를 결정했던 상황이었다. 국제유도연맹은 출전권을 확보하지 못한 북한에 와일드카드 1장을 줬고, 북한의 모든 유도 선수를 제치고 그 카드를 받아 쥔 선수는 뜻밖에도 당시 평양 개선중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이던 16살의 계순희였다. 계순희의 아버지는 출판사 직원이었고, 어머니는 광복고등중학교 선생님이었다.
외동딸로 태어난 계순희는 10살 때 모란봉 체육학교에서 처음으로 유도를 시작했고 곧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키 1m 57cm인 계순희는 벤치프레스 80kg을 들어 올리고 두둑한 배짱에 정신력이 강한 선수로 성장해 나갔다. 애틀랜타 올림픽 직전인 1996년 4월에는 우리의 전국체육대회 격인 만경대상체육대회 유도 무제한급 경기에서 자신보다 20kg이나 더 나가는 선수까지 제압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북한 유도에서 단 한 명만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면 그 선수는 당연히 계순희였다.
애틀랜타 올림픽 우승으로 북한 유도 영웅으로 등장


애틀랜타 올림픽 우승으로 북한의 영웅이 된 계순희는 이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여자 유도 52kg급에서 동메달을 따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57kg급으로 나가 은메달을 차지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성화봉송주자로 나와 성화대에 점화하는 최종주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또 2년마다 열리는 세계 유도선수권대회에서는 2001년 뮌헨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2003년 오사카 대회, 2005년 카이로 대회, 2007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까지 4회 연속 정상에 오르는 위업을 남겼다. 북한의 조선 중앙텔레비전은 계순희의 성장 과정을 그린 4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도 했다.

북한 유도를 세계에 알린 작은 거인 계순희는 2006년 유도 선수 출신인 김철 감독과 결혼한 뒤, 2010년 은퇴하고 현재 유도 유망주를 키우는 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계순희, 국제유도연맹 명예의 전당에 가입
계순희는 북한 여자유도 선수를 이끌고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는 세계 유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계순희는 대회 전 열린 갈라쇼에서 남쪽의 조민선과 함께 국제 유도 명예의 전당 인증서를 받았다.

김인수기자 (andrei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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