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시승] 존 쿠퍼의 특별 레시피, MINI JCW를 맛보다

“운전을 잘 하면 경차도 스포츠카를 이길 수 있습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과 독일 경기에서 안정환 해설위원이 한 말이다. MINI가 레이스에서 싸워온 방식도 비슷하다. 1959년, 최초의 MINI 쿠퍼는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애스턴 마틴 DB4가 세운 기록을 갈아엎었고, 각종 레이스 무대를 주름잡았다. 작은 거인이 골리앗을 눕히는 장면은 그야말로 ‘사이다’였다.

글 강준기 기자

사진 MINI

MINI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존 쿠퍼와 알렉 이시고니스

현대자동차 벨로스터 N 출시로, 국내에도 고성능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고 있다. JCW는 MINI의 ‘화끈이’ 버전이자 존 쿠퍼 웍스(John Cooper Works)의 약자. 1923년 영국 서리에서 태어난 존 쿠퍼는 카레이서이면서 자동차 제작자로 이름을 알렸다. 1946년 아버지 찰스 쿠퍼(Charles Cooper)와 함께 ‘쿠퍼 카 컴퍼니’를 세우고 포뮬러 원 머신을 빚어냈다.

최초의 MINI가 태어난 해는 1959년. 터키 출신의 엔지니어 알렉 이시고니스(Alec Issigonis)는 1936년 영국의 자동차 업체 모리스에서 일을 시작했다. 12년 뒤, 첫 번째 작품으로 ‘모리스 마이너’라는 소형차를 제작했다. 작은 차체임에도 넓은 실내공간을 뽐내는 게 특징이었다. 그의 자동차 개발 철학에 매료된 BMC는 “새로운 4인승 소형차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다.

1950년대 당시 영국은 제 2차 중동전쟁의 여파로 석유 수급이 불안했다. 이시고니스는 작고 경제적인 차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성인 4명이 탈 수 있게끔 구동계는 최대한 앞쪽으로 배치하고 객실을 넓게 확보했다. 오리지널 미니의 시작이다. 한편 존 쿠퍼는 절친한 친구 이시고니스의 도면을 보자마자 또 다른 가능성을 엿봤다. JCW가 싹튼 순간이었다.

존 쿠퍼는 알렉 이시고니스와 각종 레이스 무대에서 경쟁자로 만나며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나 MINI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달랐다. 이시고니스는 처음 도면을 그릴 때부터 ‘일상적인 주행에 적합한 차’를 주안점으로 삼았다. 반면 존 쿠퍼는 MINI 고유의 작고 다부진 차체와 낮은 무게중심 등이 자동차 경주에서 통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결국 존 쿠퍼는 1959년 자사의 드라이버인 로이 살바도리(Roy Salvadori)를 최초의 MINI 쿠퍼에 태워 이탈리아 몬테카를로 랠리 무대로 보낸다. 살바도리는 기존의 애스턴 마틴 DB4가 가진 기록을 한 시간이나 앞당기며 존 쿠퍼의 상상을 입증했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 쿠퍼가 MINI를 밑바탕 삼은 GT 모델의 제작을 회사에 제안한다. 물론 이시고니스는 회의적이었다.

랠리에서 단련한 MINI 쿠퍼

당시 BMC 최고경영자였던 조지 해리먼(George Harriman)은 “고성능 MINI 쿠퍼를 1,000대 소량 생산하라”고 결정했다. 심장엔 최고출력 55마력 뿜는 4기통 엔진을 얹었고 최고속도는 시속 130㎞를 뽐냈다. 이후 이시고니스가 개발에 동참하면서 배기량을 1,071cc까지 늘렸다. 7,200rpm까지 맹렬히 회전하며 최고출력 70마력을 냈다. MINI 쿠퍼 S의 시작이다.

1962년, BMC는 몬테카를로 랠리에 곧바로 투입시켰다. 결과는 성공적. 핀란드 출신의 라우노 알토넨(Rauno Aaltonen) 선수와 시너지를 내며 덩치 큰 골리앗들을 가뿐히 제쳤다. 아쉽게도 골인 3㎞를 남긴 지점에서 사고로 이탈했지만, 이듬해 전체 성적 3위로 마감하며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1964년엔 MINI 쿠퍼 S로 도전해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랠리는 차의 빠른 속도뿐 아니라 내구성까지 검증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였다. 1965년 ‘플라잉 핀’ 티모 마키넨(Timo Mäkinen)은 스트라이프 무늬로 치장한 MINI 쿠퍼 S와 함께 몬테카를로 랠리, 1000 레이크 랠리, 알파인 랠리에서 내리 우승하며 금자탑을 쌓았다. 특히 몬테카를로에선 총 237대의 경주차 중 단 35대만 완주했는데, 그중 3대가 MINI 쿠퍼 S였다.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1967년 1000 레이크 랠리다. 티모의 번뜩이는 실력이 빛을 발했다. 당시 티모는 MINI 쿠퍼 S와 함께 오우닌포야 스테이지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면 충격으로 보닛이 열리고 말았다. 앞 창문을 다 막은 까닭에 시야 확보가 전혀 안 됐다. 그는 옆 창문을 열고 머리를 바깥으로 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헬멧이 커 고개를 내밀 수 없었다. 그래서 티모는 차를 옆으로 미끄러트리면서 경기를 이어갔다. 일명 ‘사이드웨이 미니’다. 결과는 우승. 게다가 3년 연속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전설적인 드라이버로 우뚝 선다. 또한 이듬해 랠리 경기에서도 티모 마키넨뿐 아니라 라우노 알토넨, 패디 홉커크가 뛰어난 기량으로 1위부터 3위를 ‘싹쓸이’했다. 그렇게 MINI 쿠퍼는 전설적인 랠리 머신으로 등극했다.

MINI는 스트리트 서킷 레이스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1968년 니콜라우스 안드레아스 라우다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힐 클라임 레이스에 처음 출전해 2위에 올랐고, 2주 뒤엔 우승컵을 차지했다. 이 승리 이후 라우다는 세 번의 F1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컵을 따냈다. 또 다른 F1 챔피언인 그래엄 힐, 재키 스튜어트, 존 서티스, 조헨 린트, 제임스 헌트도 커리어를 MINI로 시작해 좋은 성적을 일궜다.

1994년, BMW가 영국의 로버 그룹을 품은 뒤 MINI는 존 쿠퍼의 아들 마이크 쿠퍼와 함께 새로운 가능성을 엿봤다. 마이크는 새로운 MINI를 통해 과거 레이스 무대에서 쌓은 영광을 재현하려는 꿈이 있었다. 존 쿠퍼의 가족기업인 ‘존 쿠퍼 게러지’는 신 모델 튜닝에 주요 역할을 담당했고, 2007년 결국 MINI와 JCW가 한 지붕 식구로 완전히 통합했다.

인제 스피디움에서 경험한 JCW 시리즈

이처럼 JCW는 모터스포츠에 뿌리를 둔 고성능 브랜드. 때마침 진가를 확인할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29일 오전,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을 방문해 최신 JCW 3형제를 시승했다. 이른 아침 현장에 도착하니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와 퍽 달랐다. 알록달록 컬러풀한 MINI들이 반길 줄 알았는데, 짙은 색깔 옷 입은 JCW들이 ‘그르렁’거리며 아드레날린을 자극했다.

첫 번째 선수 소개부터. ‘중심’ MINI JCW 3도어 해치다. 표정부터 동생들과 다르다. 범퍼엔 안개등 대신 숨구멍을 군데군데 뚫었고 빨간색 라인과 존 쿠퍼 웍스 엠블럼으로 포인트를 새겼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3.874×1,727×1,414㎜. 공차중량은 1.3t(톤)이 채 안 되는 1,295㎏이다. 앞 차축을 최대한 앞으로 보낸 모습이 남다른 존재감을 뽐낸다.

압권은 뒤쪽에서 45°로 바라볼 때. 네 발에 끼운 18인치 알로이 휠과 서슬 퍼런 브렘보 브레이크 캘리퍼가 시선을 잡아 끈다. 지붕과 사이드미러의 색깔을 다르게 입혔고, JCW 전용 리어 스포일러도 눈에 띈다. 특히 부분변경을 치르며 테일램프를 유니언 잭 스타일로 바꿔 흥미롭다. 범퍼엔 벌집 패턴이 빼곡히 자리했고 머플러는 중앙으로 두 가닥 뽑아냈다.

이러한 겉모습도 예고편에 불과하다. 실내는 오롯이 운전재미를 위해 빚어냈다. JCW 전용 시트는 몸을 감싸는 느낌부터 다르다. 두툼한 스티어링 휠 사이로 보이는 아날로그 타코미터, 한 손에 움켜쥐는 기어레버, 동그란 디스플레이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새빨간 시동버튼과 각종 버튼은 운전자를 ‘전투기 조종사’로 빙의하게 만든다. MINI는 버튼을 누르는 사소한 행동까지 독특한 경험으로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작지만 주변 시야도 쾌적하다.

안팎 감상을 끝내고 곧바로 시승에 들어갔다. 오늘 행사는 짐카나와 드래그 레이스, 서킷 주행 등 3가지로 나눈다. 짐카나에선 MINI JCW, 드래그 레이스에선 컨트리맨 JCW를 운전할 수 있었고, 트랙에선 클럽맨 JCW가 참가자를 반겼다. 먼저 내가 속한 A조는 짐카나 경기에 뛰어들었다. 곳곳에 자리한 파일런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가야 하는 ‘미니 서킷’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

인원이 많아 서둘러 운전대를 잡았다. JCW의 심장엔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터보 엔진이 들어갔다. 5,200rpm에서 최고출력 231마력을 내며, 1,250rpm부터 4,800rpm까지 최대토크 32.7㎏‧m을 줄기차게 토한다. 최고속도는 시속 246㎞. 0→시속 100㎞ 가속은 6.1초에 끊는다. 절대수치는 특별해보이지 않지만, 작은 차체를 요리하기에 충분한 실력을 뽐낸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 첫 번째 코너로 향했다. JCW의 진가가 이 짧은 순간에 집중됐다. 고회전으로 갈수록 맹렬한 엔진 사운드가 귀를 자극하고, 뒤쪽에선 머플러가 요란스레 콩을 볶아댄다. 1.3t이 안 되는 차체와 단단한 하체가 맞물려 짜릿한 가속 감각을 전한다. 주행모드를 다이내믹으로 바꾸면 모니터가 붉게 물 들며 흥을 돋운다.

이번 짐카나는 복잡한 슬라럼 구간이 주인공이었다. 선회 반경이 커 차의 비틀림 강성과 접지력을 시험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다만 앞바퀴 굴림(FF) 특성상 하중 이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선회 반경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 없었다. 코스를 통과할수록 유독 독특한 움직임을 보였는데, 코너 안쪽 뒷바퀴가 공중으로 살짝 뜨는 까닭이다.

이런 특성 덕분에 언더스티어가 없었고 코너를 짜릿하게 공략할 수 있었다. 돌덩이 같은 비틀림 강성을 알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또한 앞바퀴와 앞 범퍼 사이의 간격이 극단적으로 짧아 조종감각이 매우 뚜렷했다. 스티어링 휠을 살짝 움직여도 앞머리가 곧장 반응하며 코너 안쪽으로 예리하게 찔러 넣는다.

체감 상 3~400마력 대 출력을 지닌 뒷바퀴 굴림(FR) 스포츠카보다 훨씬 재미있다. 나의 의도와 죽이 척척 맞으니 코스를 통과할 때마다 신이 난다. 이어진 드래그 레이스. 이번엔 컨트리맨 JCW로 옮겼다. 베이스는 2세대 컨트리맨. 구형과 비교해 성장 폭이 남다르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229×1,822×1,577㎜. 이전보다 199㎜ 길고 33㎜ 넓으며 13㎜ 높다.

표정도 사뭇 다르다. 둥글둥글했던 보닛과 범퍼, 눈두덩이에 군살을 훌쩍 덜어냈다. 그래서 JCW 옷이 더 잘 어울린다. MINI JCW처럼 범퍼에 안개등 대신 공기구멍을 크게 뚫었고, 양쪽에 날카로운 칼집을 저몄다. 네 발엔 19인치 JCW 경합금 휠과 스포츠 서스펜션, 브렘보 브레이크로 치장했다. 짜릿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부모에게 최고의 대안이다.

보닛 속엔 MINI JCW와 같은 가솔린 터보 심장이 자리했다. 큰 덩치 때문에 제 성능을 못 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0→시속 100㎞ 가속을 6.5초에 끊는다. 비결은 상시 사륜구동 ALL4 시스템. MINI가 드래그 레이스에 컨트리맨 JCW를 투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게중심이 높은 SUV는 가속 시 앞머리가 뜨는 현상이 있는데, 컨트리맨 JCW는 네 발이 노면을 악착같이 움켜쥐며 속도에 살을 붙인다. 기어단수를 높일 때마다 들리는 ‘그르렁’ 배기음도 포인트.

오늘 행사의 하이라이트, 트랙주행 코스로 옮겼다. 컨트리맨 JCW와 클럽맨 JCW가 각각 5대씩 피트로드에 줄맞춰 기다렸다. 부랴부랴 뛰어가 클럽맨의 문을 열었다. 표정은 MINI JCW와 비슷한데, 닥스훈트처럼 옆태가 길쭉하다. 혜택은 뒷좌석이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5개의 풀 사이즈 시트를 갖췄는데, 실제로 5명이 앉기 충분하다. 그러나 운전석에 앉으면 널찍한 뒷좌석은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JCW 스포츠 시트와 두툼한 스티어링 휠이 운전욕구를 자극한다.

주행 중에도 길쭉한 차체를 의식할 필요 없었다. 짐카나에서 경험한 움직임이 클럽맨 JCW에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가령 코너 안쪽으로 들어갈 때 뒷바퀴가 ‘스르륵’ 바깥으로 빠지며 차를 안쪽으로 밀어 넣는 느낌이 독특하다. 옆 동네 ‘핫해치’ 메르세데스-AMG A 45 4매틱은 코너 진입 시 앞바퀴에 구동력이 몰리며 다소 둔한 움직임을 만드는데, JCW의 ALL4는 후륜구동처럼 짜릿하다. 이날 시승한 3대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모델도 클럽맨 JCW였다.

JCW. 단순히 몇 가지 아이템으로 치장한 가지치기 버전은 아니었다. 존 쿠퍼가 알렉 이고시니스의 도면을 보고 느낀 가능성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작고 다부진 차체에서 오는 또렷한 조종감각은 숫자가 전부가 아님을 입증했다. 누구보다 빠르고 싶다면, 각종 전자장비로 버무린 고출력 스포츠카보다 본질적 운전재미를 추구한 JCW가 정답이 아닐까?

<제원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