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80년대 아파트 옆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현대성의 압축 공간이었다

박해천 동양대 디자인학부 교수 2018. 7. 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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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의 호모 아파트쿠스]
1980년대 서울역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 길이 16m, 폭 1m의 움직이는 39계단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자동화된 시선의 쾌감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 조선일보 DB

마천루와 백화점, 두 유형의 건물은 현대의 대도시를 상징하던 기념비답게 독특한 실내 이동 수단을 갖췄다. 마천루가 엘리베이터와 짝을 이루고 있었던 반면, 백화점은 에스컬레이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백화점에서 에스컬레이터가 유별나게 특별 대우를 받았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계단은 건물 내부의 구석 자리에 배정받기 마련인데, 이 기계 계단만큼은 거의 언제나 백화점의 실내 한복판, 명당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는 고객들을 아래 위층으로 실어 나르는 이동 수단일 뿐만 아니라, 층별 매장 공간을 배치하고 고객의 동선을 규율하는 기준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것은 고객이 지치지 않고 쇼핑하도록 돕는 장치였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의 매력이 효율성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왜냐면 그것은 백화점 고객에게 독특한 방식으로 실내를 조망할 수 있는 시선을 제공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에서 표현을 빌리자면,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위에서 내려오지 아니한 상태에서 아래층 매장을 천천히 내려다볼 수 있는 시선, 그리고 밑에서 올라가는 사람들이 밑에서 올라가지 아니한 상태에서 위층 매장을 올려다볼 수 있는 시선이었다.

이 시선은 일제강점기 이후 꽤 오랜 시간 동안 서울 명동 일대에 발목이 묶여 있었다. 사대문 탈출이 본격화된 것은 1980년대 초반의 일이다. 강남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교통 요충지를 중심으로 백화점들이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1979년 압구정 한양쇼핑을 선두로, 반포 뉴코아, 압구정 현대백화점, 삼성동 현대백화점 등이 뒤를 따랐다. 물론 경제성장과 함께 등장한 젊은 중산층 소비자들이 강남 아파트 단지에 대거 몰려든 덕분이기도 했다. 지갑을 열어 한강 이남으로 백화점을 옮길 수 있는 힘은 전적으로 그들에게 있었다.

실제로 대규모 문화 센터와 증권, 부동산, 여행 관련 정보 센터를 구비한 '생활형 백화점'은 이들의 요구에 적극 부응하는 것이기도 했다. 일상 바깥의 소비 공간이 아니라 일상의 질서 내부로 편입된 백화점 모델, 바로 이것이 당시 유통업체들이 강남을 근거지로 삼아 실험하던 다점포 체제의 백화점 모델이었다.

이런 변화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 강남의 친척집에 방문한 꼬마들은 아파트 엘리베이터나 놀이터 기구들을 타고 놀다가 시들해지면, 곧바로 인근 백화점으로 향해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곤 했다. 동네 지하철 역사마다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는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당시 백화점은 실내에서 자동화된 시선의 쾌감을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었다. 강남으로 이주해 한발 앞서 통과의례를 거친 사촌들은 심드렁하게 반응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곳은 45도 각도로 상승 이동하면서 새로운 시선으로 소비의 스펙터클을 체험할 수 있는 현대성의 압축 공간이었다. 대형 할인점의 카트와 무빙워크가 새로운 소비의 시선을 창출해내기 이전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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