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 "유부남인지 모르고 임신했다" 폭로한 이봉조는 누구? 60년대 대표 작곡가

장혜원 2018. 12. 2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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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현미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때 작곡가 고(故) 이봉조의 내연녀였다고 고백한 가운데 고인에 대한 누리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3월 방송된 TV조선 교양 프로그램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 현미는 이봉조와의 관계에 대해 "당시 임신 8개월에 그(이봉조)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게 되어 본처에게 보냈다"며 "이후 그가 심장마비로 떠나자 큰집에서 합장을 원한다고 전해 흔쾌히 승낙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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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고(故) 이봉조(맨 위 사진 왼쪽)와 부인인 가수 현미(〃 〃 〃 오른쪽). 사진=TV조선 '마이웨이' 캡처


가수 현미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때 작곡가 고(故) 이봉조의 내연녀였다고 고백한 가운데 고인에 대한 누리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봉조(1931~87)는 재즈 색소폰 연주자이자 작사·작곡가다. 경남 남해 출신이며 한양대 건축학과 4학년 재학 중 미 8군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당시 재즈 색소폰 연주와 공연을 했는데, 뛰어난 실력을 인정 받아 전국을 무대로도 연주를 시작했다.

서울시청 토목과 공무원으로 일하면서도 미8군 무대에서 재즈 색소폰 연주를 계속했으며, 당시 색소포니스트 엄토미의 제자로 인정 받아 공무원을 그만두고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됐다. 

이봉조는 이후 윤복희와 현미, 최희준, 정훈희 등 실력파 가수를 발굴했다.

1960년대에는 영화음악 및 연주 감독으로 데뷔했고, TBS(동양방송)와 KBS의 악단 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특히 최희준이 부른 영화 '맨발의 청춘'(1964)의 주제곡으로 작곡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영화 화면을 보고 녹음실에서 색소폰으로 몇번 ‘빠앙빠앙’ 불다가 주제곡을 완성해다는 일화로 천재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70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국제가요제에 참가하여 '밤안개'로 입상했고, 71년 이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받았다.

개신교 신자로서 색스폰 연주곡 CCM 음반도 다수 발매했다. 본부인과 슬하에 4남매를, 현미와 사이에 2남을 각각 뒀다.

과거 미8군 무대의 아이돌이었던 현미는 62년 밤안개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봉조는 이 곡의 가사를 썼다.

이후 현미는 '보고싶은 얼굴'과 '떠날 때는 말없이' 등 수많은 곡을 히트시키며 전성기를 달렸다.

현미와 이봉조는 미8군 공연을 함께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현미는 이봉조의 프로포즈를 받았고, 이 같은 소식이 공개돼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현미에게 고백할 당시 이봉조는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다.

이봉조가 슬하에 딸을 둘 둔 유부남이었단 사실을 알게 현미는 임신 7개월 무렵이었다고 한다.

지난 3월 방송된 TV조선 교양 프로그램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 현미는 이봉조와의 관계에 대해 "당시 임신 8개월에 그(이봉조)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게 되어 본처에게 보냈다"며 "이후 그가 심장마비로 떠나자 큰집에서 합장을 원한다고 전해 흔쾌히 승낙했다"고 밝혔다.

이어 "저는 20년 동안 정말 행복하게 살았지만, 그 여인(본처)은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며 "같은 여자로서 참 안쓰럽더라"고 덧붙였다.

장혜원 온라인 뉴스 기자 hoduj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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