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균의 필모그래피는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인터뷰]

한예지 2018. 11. 28.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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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균 인터뷰 / 사진=스포츠투데이 DB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배우 정해균의 모토는 한결같다. 배우로서의 소임을 다하자는 것이다. 자신의 본분과 목표를 잃지 않으면서도 "제 소임을 다 했고, 사람들이 좋아했다면 그걸로 내 역할이 다 끝난 것"이라며 어떤 것에도 연연하지 않고 초연한 그는 이미 그 자체로 믿음직스러웠다.

최근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종횡무진 활약 중인, 믿고 보는 배우 정해균. 요즘 들어 그를 향한 대중의 재밌는 반응이 시선을 끈다. 대개 그의 '양면성(?)'에 놀라워하거나 충격을 받는 내용들이다. 이를테면 tvN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에서 눈물 많고 마음 여린 홍이 아버지로 나왔던 그가 알고보면 영화 '신과함께'에서 살인지옥을 담당하는 지옥세계 재판장 변성대왕과 동일인물이라는 게 믿겨지느냐는 반응들이다.

뿐만 아니다. 영화 '사도'의 맹인 박수무당 역할, 드라마 '시그널'의 형사, '구해줘' 속 광신도 아빠 등 정해균의 필모그래피를 보며 놀라워하는 반응들이 주를 이룬다. 그동안 켜켜이 쌓아놨던 다양하고 강렬한 그의 캐릭터들이 비로소 배우 정해균과 동일시되는 까닭이다. 또한 이는 끊임없이 연기 변신을 했던 그의 한계없는 연기 내공과 더불어 현재 그의 위치가 대중적인 호감을 얻는 배우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는 반증일테다.

이에 정해균은 쑥스러워하며 "그냥 열심히 연명하다보니 목표했던 것들이 이뤄졌다"고 입을 열었다. 최근작이었던 '백일의 낭군님'은 tvN 월화드라마 역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할만큼 뜨거운 사랑을 받았고, 정해균은 정 많고 사람 좋은 홍이 아버지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과거 하도 '센' 역할들을 주로 해 평범한 아버지 역할을 하고 싶다고 소망하던 그의 바람을 제대로 이뤄준 캐릭터이기도 했다. 물론 이번이 네 번째 아빠 역할이었지만 청춘 시절 난폭했다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나약한 가장, 야욕을 품은 역정, 광신도가 돼 딸을 종교집단에 바치는 등 아버지란 이름으로 다양한 캐릭터의 변주를 보였던 그다. 이제서야 현실 아빠가 됐단 정해균은 "실제로도 이번 역할이 저와 제일 비슷했다. 소심하고 여리고 눈물많은 게 특히 그랬다"고 웃어보였다. 극 중 정해균은 역적의 딸인 남지현을 친딸처럼 아끼며 돌봐줬고, 기억을 잃고 마을에 온 왕 도경수를 집으로 데려와 딸과 이어지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훈훈하면서도 코믹하고, 그러면서도 애잔한 부성애를 드러내며 평범한 아빠의 모습으로 공감을 샀던 그다.

그는 "감독님과 작가님께 감사했다. 그동안 제게 이런 역할을 시키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엄청난 모험일 수 있는데, 오디션도 보지 않고 이야기만 나눴는데 저를 염두하셨다며 같이 해보자고 하셨다. 그게 정말 감사하고 놀랐다"며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인 걸 어떻게 아셨을까 싶기도 했고, 이런 캐릭터를 정말 해보고 싶었는데 꿈이 이뤄진 거였다"고 덧붙였다. 매번 극한 연기를 펼쳐왔던 그가 오히려 평범한 역할을 갈망했다는 것이 의외다. 언제나 주어진 조건에 맞게 연기하는 것이 목표지만, 이런 역할들이 제 취향에 더 맞는다는 정해균이다. 또 극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랑은 확실히 감정 노동이 덜하다고. 그동안 범접할 수 없이 위압감 넘치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던 그지만 실제 그의 성향과 내면은 감성이 풍부하고 섬세한 탓일테다.
정해균 인터뷰 / 사진=스포츠투데이 DB

이번 작품에서 함께 연기한 배우 김선호가 한 인터뷰를 통해 저를 언급하며 "섬세하고 존경하는 배우"라는 표현을 한 것에도 너무 쑥스러워 여태 연락을 못했다는 그였다. 그는 "사실 저희 누나가 그 인터뷰를 보고 제게 연락해줬다. '너를 저렇게 존경하고 좋아하는 배우가 어디있느냐, 꼭 고맙다고 말하라'고 했는데 너무 민망하고 고마워서 사실 연락을 못했다"고 털어놨다. 또한 그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제가 그런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 감사하고 부담도 됐다"고 자신을 낮췄다.

스스로를 "귀가 얇고 심약하고 소심하다"고 낮춰 말하지만 정해균은 이처럼 마음이 여리고 따뜻한 사람이다. 그의 감수성을 쏙 빼닮은 열두살 아들 일화도 꽤 재밌고 사랑스럽다. "어느날 없어지거나 희석될 수 있을텐데 아직 이런 감성을 갖고 있어 다행"이라는 정해균은 "아들이 '사도'를 볼 때도 영조와 사도의 이야기를 다 이해하고 감정이 이입돼 결말 부분 소지섭이 춤을 추는 신에서 펑펑 울더라. 근데 제가 무당으로 나온 건 전혀 못 알아보더라. '저 사람 누구지?'라 그러더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정해균 아들은 '신과함께-죄와 벌'을 볼 때도 극 중 수홍(김동욱)이 꿈 속에서 모친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신에서도 꺼이꺼이 울더란다. 물론 정해균 또한 완성된 영화를 보며 볼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니 '붕어빵 부자'다. 정해균은 아들의 이같은 감성을 지켜주고 싶은 아빠이자, 여러가지 일을 두고도 부담없이 친구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부모가 되길 바랐다.

그러면서 이번 '신과함께'는 또 아들이 저를 못 알아볼까봐 미리 배역을 알려줬다고 귀띔해 웃음을 더했다. 실제 정해균은 변성대왕 역할로 충격적인 비주얼을 선보였다. 뱀을 늘어뜨린 듯한 거대한 머리와 시체처럼 허옇고 푸르죽죽한 피부 가죽, 섬칫함을 자아내는 지옥 세계 대왕 비주얼을 완성했다. 그는 "처음에 김용화 감독님이 '선배님 진짜 죄송합니다'라고 하더라. 제 얼굴이 아니게 나올 것 같다고 해서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특수분장을 했는데 진짜 못알아보겠더라"고 웃어보였다. 덕분에 그는 의상과 분장의 힘을 빌어 더욱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겸허히 이를 받아들였다. 또한 그는 "처음에 대본을 받았을 땐 비주얼에 대한 지문도 많았고 기존의 대본들과 다르더라. 어떤 식으로 구현될지 전혀 상상이 안 됐다. 사실 이해도 안 됐다. 그런데 저는 짧게 나오는 배역인데도 김용화 감독님이 정말 오랫동안 설명을 해줬고, 그때 정말 감동 받았다. 그 성의와 마인드가 좋더라"고 했다.

정해균은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보다 배우로서 주어진 역할에 소임을 다하고, 관객들이 즐겁게 봐줬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배우였다. 하지만 차곡차곡 성실하게 쌓아놓은 필모그래피는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이젠 대중의 뇌리에도 톡톡히 제 이름과 이미지를 각인시킨 정해균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일상은 평범하다. 그는 "저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데 여전히 사람들이 못 알아보신다"고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늘 주변과 친구들에 자신이 초심을 잃고 발런스가 무너지고 함정에 빠지게 될 때는 꼭 말해달라고 얘기한단다. 그만큼 중심을 잡기 위해 스스로 겸손하고 더욱 철저히 자신을 다잡는 그였다. "손에 뭘 쥐면 안 놓고 더 많이 쥐려 하지 않나. 이에 대한 경계를 하려 한다"는 그의 바람은 하나였다. "함께 일하는 다른 이들에 폐끼치지 않고, 누가 되지 않는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이미 그 목표를 성실히 해나가는 그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정해균 인터뷰 / 사진=스포츠투데이 DB

한예지 기자 ent@stoo.com
사진=팽현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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