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대형 차량을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의 성향이 바뀔 수 있을까? 오랜시간 이렇다 할 신차가 없어 활력을 잃어버렸던 국내 소형차 시장에 르노 클리오가 진입하면서, 점차 활력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그간 국내 소형차 시장은 국내 소비자들의 성향과 베스트셀러 모델의 부제, 제조사들의 소형차 개발에 대한 투자 미비 등으로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도 소형차를 구입하는 것에 대한 뚜렷한 메리트가 없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아 소형차를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올해 5월, 판매를 시작한 르노 클리오는 기아 프라이드의 국내판매가 중단되고, 아베오의 단종설이 나오면서 인기를 잃어가는 소형차 시장에, 새롭게 나타나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국내 판매가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기대치가 높은 탓에 출시 첫 달에 무려 756대가 팔려 나갔다. 지난 6월 클리오 판매량은 549대로 소비자들이 꾸준히 찾는 중이다.
현대차는 클리오 출시당일, 공격적인 가격을 무기로 엑센트 페이스리프트를 발표했다. 해치백 버전에서는 수동변속기를 삭제하고 CVT와 DCT로 대체했다. 6월 한 달간 엑센트는 519대를 판매했다. 클리오의 판매량은 기존에 엑센트와 반반으로 시장을 양분하던 프라이드의 영역을 가져간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큰 차를 좋아한다. 실내공간이 여유롭고, 주행성이 편안하며 무엇보다 남들에게 자신의 부를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조사도 중, 대형차를 좋아한다. 가격별로 제품을 나누는 경우가 많은데, 차체가 큰 세그먼트일수록 많은 옵션을 탑재해 프리미엄을 붙이고, 가격을 더욱 비싸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차가 비싸면 소비자에게 외면 받았다. 하지만 옵션이 적으면, 적은대로 또 ‘깡통차’라며 불평하기 마련이다. 준중형 아반떼가 인기를 얻은 이유는 별거 없다. 가격 대비 적절한 옵션과 성능이다. 그 부분에서 이미 겁을 상실하고 아반떼와 경쟁할 차종은 국내에 없다. 기아 K3는 항상 아반떼보다 기술 적용이 한 발짝 늦거나, 다음 해에 완전히 천지개벽할 만한 개선으로 찍어 눌려서, 대부분 제대로 날개 한 번 펴보지 못한 채 끝이 났다.
클리오의 장점이라면, 기존에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유려한 디자인, 탄탄한 주행성능, 그리고 A/S망이다. 작고 짧은 차체에 유선형으로 이어지는 루프라인은 무척 아름답게 느껴진다. 후면부에서 보이는 디자인은 후미등 위쪽으로 캐릭터라인의 위쪽이 좁고, 아래는 넓어 휀더가 튀어나온 듯한 스포티한 라인을 추구하고 있다. 한눈에 국내에서 자주 보던 차량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챌 수 있다. 스티어링휠 조작성과 서스펜션 세팅은 프랑스 차 특유의 탄탄하면서도 부드러운 쫄깃한 맛이다. 스티어링 휠은 무겁지 않으면서도 내가 돌린 만큼 정확히 차량을 돌려주는 조작성이 좋다. 유지보수와 A/S의 경우에는 전국 각지에 있는 르노삼성의 서비스센터를 이용할 수 있어, 몇 군데 없는 센터에 수리하러 이동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분명 수입차인데, 서비스는 국산차와 별 다르지 않다. 수입차인데 수입차 같지 않은 쉐보레 볼트EV와 카마로가 생각난다.
소비자들의 기대치는 점점 상향평준화 되어가고 있다. 국내 차량 메이커들도 이전보다 더욱 좋은 차를 만들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그 위를 기대하고 더 뛰어난 옵션을 바라본다. 기존까지 국내에선 작은 차를 그저 싸게 많이 판매하기 위한 용도로만 굳어졌다면, 클리오는 이를 뒤집고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작으면서도 디자인, 운전 재미, 활용성, 어느 것 하나 빼먹지 않은 속이 꽉 소형차이다.
소형차 시장은 호황기에 비하면 거의 주저앉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리오는 시장 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내비치며 점차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클리오는 이미 유럽에서 매년 30만 대씩 판매되며 B세그먼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링카다. 중형이상 차량에 목매는, 국내 시장의 체질을 클리오가 개선할 수 있을 것인지, 앞으로의 선전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