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따뜻한 아버지
저녁 먹고 영화나 한 편 보려고 갔던 식당에서 가족들이 정스럽게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엿들으려고 한 것은 아닌데 바로 옆에서 큰소리로 얘기해서 듣게 됐다. 각자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아버지는 인터넷 신문을 보고 있었던 것 같고, 아들은 무슨 동영상을 보면서 밥을 먹고 있었던 모양이다. “좀 그만 보고 빨리 먹어” 하는 소리도 들리고, “밥 다 먹을 때까지 한 마디를 안 하고 그거만 하냐”는 소리도 들렸다. “밥 먹으러 왔는데 밥 먹지 그럼 빨리 먹고 가야 해”, “너도 식구들이랑 밥 먹을 때는 그것 좀 그만해라” 뭐 그러고, “오늘 계속 같이 먹었는데” 하자 “남자들은 왜 이래. 왜 밥 먹을 때 밥만 먹어” 하면서 웃는다. 극장 안 팝콘 줄에서 그 가족을 다시 보았다. 나랑 같이 줄 서있는 아버지에게 “빙수까지 먹고 그걸 또 먹어야 해”, “아빠는 영화보다 팝콘이 우선이야, 저러다 또 잔다” 하며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물론 돈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기 전에는 아버지의 권위가 도덕적 가치관을 심어주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갖도록 가르치는 것이 더 핵심인 적도 있긴 했다. 어쨌든 현대사회에서는 아버지의 권위가 경제적 능력과 직결되는 부분이 많다 보니 바쁜 아버지, 즉 아버지의 부재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아버지의 존재감 혹은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그 결과 심리학자 마이클 램의 표현을 빌면 ‘새로운 양육적인 아버지’(a new nurturant father)의 상이 제시되면서 자녀의 삶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의 표본으로 등장했다.
통계를 보면 아버지들은 아이들과의 교류에서 같이 놀아주는 시간을 가장 많이 할애한다. 아이의 입장에서도 가끔 놀아주는 아빠가 더 특별하고 재미있다. 그런데 잘 자란 아이들은 아버지가 숙제도 챙겨주고 밥상머리에서 자신이 오늘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사기를 당할 뻔했는지도 알려주면서 자연스럽게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터득하게 해준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사실은 집에까지 와서 회사 얘기를 하는 것이 고역이라 ‘대화’ 자체가 부담인 아버지도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많이 놀아주고, 시간만 많이 보낸다고 아이들이 아버지를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의 성격에 문제가 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서는 가정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는 성공한 알파남 즉, ‘남자다운’ 아버지를 둔 아들이 더 남자답지도 않고,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경우도 많다. 이혼 가정에서 엄마와 자란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아버지의 물리적 부재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가 제공해주던 경제적·사회적 울타리가 없어져서 그렇다는 연구도 있다. 이혼에 이르기까지 부부간의 불화가 있었을 테니 그렇게 생긴 심리적 여파 또한 크다.
그러면 아버지 노릇은 어떻게 해야 하나. 시대상에 맞는 아버지가 아니라 진정한 아버지의 역할은 무엇일까. 닮고 싶은 아버지는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심리학자들은 따뜻한 아빠를 꼽았다. 특히 성공한 아버지를 둔 자녀 중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고 한 경우, 아버지가 든든한 재정적 울타리가 돼 줘서가 아니라 같이 있는 시간에 나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고 핀잔주지 않고, 내 마음을 읽어주는 아버지라서 그렇다고 대답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안명희 서강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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