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한국을 대표하는 색은 과연 白色일까?.. 앞으로의 숙제

기자 2018. 8. 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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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클라인, 언타이틀 모노크롬, 캔버스에 유채, 92.1×71.8㎝, 1959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소장
세베리노비치 말레비치, 흰색 위의 흰색, 캔버스에 유채, 79.4×79.4㎝, 1918년.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백자 달항아리, 국보 310호,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전준엽이 만난 한국의 美感 - (10) 단색화 유행의 배경

명확한 내용이 없는 추상미술

디자인과 결합하며 살아남아

그중 단색화는 존재의 이유가

표현의 방법에 있는 미술분야

클라인이 회화기법으로 완성

日선불교에 심취해 그림 반영

1970년대 유행한 미니멀리즘

30년 세월 건너 ‘단색화’ 변신

‘白色의 미감’ 연상시키는 이름

조선 백자가 정당화에 한몫도

‘짐노페디’라는 곡이 있다. 음악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유명한 곡이다. 20세기 초 유럽 아방가르드 음악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에릭 사티(1866∼1925)가 작곡했다. 그의 곡 중에서 대중적 지지도가 가장 높다. 짐노페디는 그리스어로 ‘벌거벗은 아이들’이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행했던 아폴론을 위한 축제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티의 곡은 벌거벗은 아이들같이 순수한 분위기다. 그는 수많은 기행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20세기 초 음악가들뿐만 아니라 젊은 화가와 문학가들에게도 멘토 역할을 할 정도로 전위적 예술가였다. 그러나 자신의 음악을 ‘가구 음악’이라고 부르며, 인간 삶의 영역에서 인테리어처럼 배경에 놓이기를 바랐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사티의 음악은 지금도 사랑받는다.

에릭 사티처럼 20세기 혁신적인 예술을 선보이며 당대의 전위에 섰던 예술가들은 모두 예술의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재즈의 음악성을 현대화시켜 가장 미국적 정서를 보여준 조지 거슈윈(1898∼1937), 아메리카 전통 정서를 클래식 어법에 접목한 에런 코플런드(1900∼1990), 원시성과 현대성의 불협화를 통해 새로운 음악어법을 개척한 이고리 스트라빈스키(1882∼1971), 브라질 민족 정서를 서구 음악의 틀에 담아 새로운 현대 음악을 창출한 에이토르 빌라로부스(1887∼1957), 일본의 탐미성을 서구 음악과 결합한 다케미쓰 도루(1930∼1996) 같은 예술가들이 그렇다. 이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있다. 그들이 남긴 음악이 여전히 연주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이름만 역사에 남은 예술가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존 케이지(1912∼1992)다. 백남준과 함께 1960년대 독일 전위 그룹 플럭서스 운동을 주도해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그는 현대음악에서 가장 혁신적인 인물로 통한다. 대표작으로는 ‘4분 33초’가 가장 유명하다. 피아니스트가 4분 33초 동안 피아노 앞에 앉아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고 있다가 퇴장하는 아이디어만 있는 음악이다. 그의 음악은 연주되지 않는다.

케이지는 현대 예술을 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추앙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예술을 정확히 알거나 이해하는 이는 많지 않다. 케이지의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현대 예술을 이해한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위선적 지식주의 틀에서 예술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 미감을 현대화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는 단색화를 ‘가구 그림’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삶이나 일상의 장식품처럼 배경에 머무는 미술로 평가한다면 현대미술을 모르는 저급한 취향이라고 해야 할까. 또는 우리 미감에 대한 무식한 판단이라고 해야 할까. 최근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흐름으로 떠오른 단색화 현상을 보면서 우리는 아직도 사변적 각도에서 지적 허영심으로 예술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단색화는 추상미술이다. 추상미술은 20세기에 태어난 많은 미술 기법 중 팝아트, 개념미술과 함께 금세기까지 생존에 성공한 미술 흐름이다.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추상화는 어떤 그림일까. 서양미술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이야기는 성서, 신화, 영웅담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서 벗어나면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 문을 연 것이 추상화였다.

한 문장으로 시작해 보자. ‘파란 옷을 입은 여인이 과수원에서 사과를 따서 광주리에 담는다’는 문장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 서술형 그림들이다. 인상주의 전까지의 회화였다. 문장을 단어로 나누면 ‘파란 옷을 입은 여인’ ‘과수원’ ‘사과’가 된다. 이 단어만 그리면 이야기는 없어진다. 여인은 인물화, 과수원은 풍경화, 사과는 정물화가 된다. 다시 사과는 ‘사’와 ‘과’로 나눌 수 있다. ‘사’만 그린다고 할 때 작가 마음대로 의미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사’ 뒤에 작가가 생각하는 글자를 붙이면 된다. 사람, 사슴처럼. 이렇게 사물을 빌어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그렸던 것이 표현주의 같은 그림들이다.

다시 ‘사’를 더 나누면 ‘ㅅ’과 ‘ㅏ’가 된다. 이렇게 하면 의미는 없어진다. 내용을 완전히 제거하고 ‘ㅅ’만 그리는 것이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쓰는 방법을 연구하게 된다. 즉 무슨 재료와 어떤 방법으로 ‘ㅅ’을 쓸까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추상화인 셈이다. 내용도 없는 추상미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디자인과의 결합으로 현대적 장식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추상미술은 현대적 감각의 인테리어 개념과 가장 가까이 있는 미술인 셈이다. 추상미술은 추상의 방법으로 이미지를 담아내는 흐름과 표현 방법에다 존재의 이유를 두는 흐름으로 나뉜다. 그중 단색화는 표현의 방법에서 가치를 찾는 편에 서 있다.

단색화는 최근 우리 미술계에서 붙인 이름이다. ‘모노크로미즘’이라는 원래 명칭의 우리말 버전인 셈이다. 단색주의는 20세기 초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추상 절대주의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 흐름을 주도했던 카지미르 세베리노비치 말레비치(1878∼1935)가 흰 캔버스 위에 흰 사각형을 그려놓은 작품을 ‘흰색 위의 흰색’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해 순수 추상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이를 회화 기법으로 완성한 이는 이브 클라인(1928∼1962)이다. 현대미술 사상 가장 전위적인 행보를 보여주었던 요절한 천재다. 그래서 ‘20세기 미술 최고의 아이디어 뱅크’라고 불리기도 한다.

기이한 풍습이나 충격적인 일을 ‘몬도가네’라고 한다. 1962년 이탈리아의 갈리에로 자코메티 감독이 세계 각처의 엽기적인 풍습을 촬영해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 유명해진 말이다. 클라인의 작품은 이 영화에도 등장할 정도로 혁신적이었다. 벌거벗은 여성의 온몸에 페인트를 듬뿍 칠한 후 바닥에 놓인 캔버스 위로 질질 끌고 다니는 엽기적인 방법으로 작품을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1960년에는 ‘공간 속의 남자, 허공에 놓인 화가’라는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벌여 화제가 됐다. 클라인은 새가 날개를 펼치고 나는 것처럼 두 팔을 벌리고 자신의 집 2층 창문에서 두 번씩이나 뛰어내렸다. 유도로 단련된 능숙한 낙법 기술 덕분에 ‘투신 퍼포먼스’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붓을 사용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해 20세기 중반 이후 서양미술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를테면 촛불의 그을음을 이용해 캔버스에 추상화를 그리거나, 물감을 듬뿍 머금은 스펀지를 캔버스에 붙이는 방법 또는 캔버스 자체를 물감을 풀어놓은 풀에 덤벙 집어넣었다가 꺼내는 기발한 발상으로 그림을 ‘만들었다.’ 심지어 화염방사기를 사용해 그림을 만들기도 했는데, 단색화의 대표작가 중 한 사람의 기법으로 알려진 불로 태우는 방법의 회화도 클라인의 아이디어와 흡사하다.

클라인은 일본에 매료돼 상당 기간 살기도 했다. 동양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일본 선불교에 심취했고, 이런 정신적 다이어트 사상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어 모노크롬 회화를 창안했다. 한 가지 색채만으로 화면 전체를 칠하는 모노크로미즘은 1960년대 유럽과 미국, 일본을 휩쓴 미니멀리즘의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됐다. 클라인은 단색주의 회화를 위해 물감도 만들었다. 직접 실험해 만든 ‘인터내셔널 클라인 블루’라는 이름의 짙은 푸른색인데, 공식 색채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다.

현재 우리 미술계에서 유행하는 단색화에는 일본의 선불교에서 유래한 일본적 미감이 짙다. 이런 미감은 ‘젠 스타일’로 불리며 현대 디자인의 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전통 미감과 궁합이 잘 맞는 모노크로미즘 회화는 일본에서 유행했고, 1970년대 우리 현대미술계의 한 흐름을 형성했다.

표현 방법에 초점을 맞춘 추상 회화였던 만큼 당시에는 ‘방법론적 미술’로 불렸다. 방법에 치중한 미술이니 이미지나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인테리어처럼 장식적 기능이 두드러지는 미술이기에 ‘가구 회화’라고 불러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30년 전에 유행했던 추상미술이 왜 이 시대 우리 미감을 현대화시킨 미술이 됐을까. 1990년대 들어 우리 미술 시장의 영향력 있는 컬렉터이자 굴지의 미술관 관장이 “미니멀리즘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돌며 화단에 미니멀리즘에 대한 열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해당 미술관은 기획전과 상설전을 통해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을 비롯해 현대미술의 최신 트렌드를 국내에 소개했다. 이후 대형 화랑들은 앞다퉈 미니멀리즘 작가의 전시회를 열었고, 흘러간 유행가가 리바이벌돼 히트하듯 미니멀리즘 작가들의 작품이 미술 시장에서 새로운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1970년대 방법론적 회화로 불리던 미니멀리즘 회화는 30년의 세월을 건너와 ‘단색화’라는 새 이름을 얻고, 한국 전통 미감을 현대화시킨 미술이 된 것이다.

단색화는 우리 미감의 한 축으로 평가되는 백색의 미감을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조선 후기에 형성된 소박하고 고졸한 미감인 백색미는 일본인 미술평론가이자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가 조선 백자를 두고 평가한 아름다움이다. 이후 한국적 아름다움을 얘기할 때 조선 백자는 단골 메뉴가 됐다. 그래서인지 단색화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업적 모티브를 조선 백자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백색의 미감이 우리 고유의 정서를 대표하는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한민족=백의민족’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를 정당화시키는 데 조선 백자가 있다. 특히 현대에도 사랑받는 보름달 같은 풍성한 미감의 달항아리는 백색미에 대한 관념을 더욱 공고히 해준다. 우리 민족은 과연 백색을 좋아할까. 이런 이유로 백색이 한국적 미감을 형성하는 바탕이 됐을까. 밝은색을 사랑하는 것은 확실하나 그게 꼭 흰색인지는 앞으로 풀어내야 할 숙제다.

(문화일보 7월 24일자 22면 9 회 참조)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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