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칼럼] 미리 고른 2019년의 사자성어
‘임중도원(任重道遠)’. 전국 대학교수들이 연말에 고른 2018년의 사자성어다. 교수신문이 그렇게 발표했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문재인정부에 대한 응원과 질책이 담긴 선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회적 공감을 빚어내기엔 역부족이다. 왜 그런가. 문맥의 문제부터 여간 껄끄럽지 않아서다.

임중도원은 그다음에 나온다. 증자는 이어 ‘인이위기임(仁以爲己任) 불역중호(不亦重乎)’라고 했다. ‘인(仁)을 자기 임무로 삼으니 무겁지 않은가’로 풀이된다. 증자는 결국 인을 강조한 것이다. 전체 문맥이 이런 만큼 공감을 위해선 지난해 정치·정책에서 인의 덕목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한가.
정부는 말보다 마차를 앞세우면 안 된다는 전문가 간언도 뿌리치고 폭주를 거듭했다. 일자리를 비롯한 참담한 경제지표가 그 소산이다. 자업자득이다. 그런데도 “정부 정책 기조는 조금도 후퇴하지 않았다”(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고 한다. 독선과 오기만 넘친다. 탈원전, 부동산 등의 정책 오류도 수정될 기미가 없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의혹’도 가관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최근 페이스북에 ‘노 서렌더(No Surrender)’ 노래를 링크했다. ‘굴복은 없다’고 한 셈이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민노총 구호가 연상된다. 공자의 인, 증자의 인에 가까운가. 이런 행태를 격려해야 하나. 이런 마당에 임중도원을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나.
사실 저잣거리엔 가슴에 와 닿는 후보감이 즐비했다. 편의점 업주들은 ‘동족방뇨(凍足放尿)’를 골랐을 것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이니, 촌철살인 측면에서도 압권이다. ‘장자’에 나오는 ‘고목사회(枯木死灰)’도 있다. 외형은 고목, 마음은 죽은 재로 생기가 없다는 뜻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조사에 구직자들이 1위로 고른 사자성어다. 역시 ‘장자’에 있는 ‘노이무공(勞而無功·애만 쓰고 보람은 없다)’도 그럴싸하다. 자영업자가 1위로 택했다.
굳이 ‘논어’를 뒤진다 해도 후보감은 많았다. 자로편의 ‘욕속부달(欲速不達)’부터 그렇다. ‘서두르면 도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도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매어 쓰지는 못 한다’고 했다. 선진편의 ‘과유불급(過猶不及)’도 있다. 시의적절하지 않나. 왜 이런 대안들을 다 밀치고 임중도원이 튀어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국내 일반대학 전임교원만 해도 7만명을 웃도는 교수사회부터 300여명이 골랐다는 임중도원에 얼마나 공감할지 의문이다.
새해가 밝았다. 2019년 사자성어로는 무엇이 적절할까. 1년 후를 내다볼 수 없으니 난제다. 그렇더라도 희망을 담아 미리 골라볼 수는 있다. 더 나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망양보뢰(亡羊補牢)’가 어떤가 싶다. ‘전국책’의 사자성어로, ‘양을 잃고서 우리를 고친다’는 뜻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과 같다.
두 가지 뉘앙스가 있다. 하나는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니 부정적이다. 하지만 전국시대 초나라 장신(莊辛)이 이 말을 한 원래 취지는 긍정적이다. 그는 자신의 간언을 외면하다 곤궁한 처지에 빠진 양왕에게 “빨리 뉘우치고 수습하면 늦지 않다”고 했다. ‘늦지 않다’에 방점을 둔 것이다.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으면 새 길은 얼마든지 뚫릴 수 있다. 급선무는 경제다. 각성과 쇄신이 필요하다. 망양보뢰의 자세로 정책 기조를 크게 손봐야 한다. 긍정의 힘이 춤추게 해야 한다. 아무쪼록 ‘동족방뇨’ 같은 성어를 새해에 또 보게 되면 민생에도, 국정동력에도 큰 금이 간다는 점을 거듭 명심할 일이다.
이승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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